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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 - 더럽혀진 성역 - Old story - 4

레이븐울프 2016. 4. 9. 19:17

혼 - 더럽혀진 성역 - Old story - 4

장르: 퇴마, 판타지

연령제한: 15세

글쓴이: 너구리햄스



 


 


   <혼의 Ep3입니다. Ep1, Ep2를 안보신 분들은 이해가 힘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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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름달이 뜬 새벽녘, 미츠는 자신이 아끼는 옷과 여분의 자금과 식량정도만 간단히 챙긴 후에 외출복을 입고 허리춤에는 채찍을 차고 조용히 건물을 나서 가옥의 후문을 향해 나아갔다. 창을 들고 후문을 지키고 있는 고양이 수인이 귀를 쫑긋하더니 미츠를 보곤 놀랬다는 듯이 말했다.



  "협력자님!"


  "쉬~"



  미츠가 조용히 하라는 듯이 말하자 고양이는 야옹하며 가만히 있었고 미츠는 부드러운 눈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야옹님, 제가 특별한 일로 나가봐야할거 같은데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신가옹…."


  "군부에서 오신 분들과의 일입니다. 츠이시 가문을 위한 일이니 길을 비켜주세요."


  "……."



  고양이는 고민하며 가만히 있었는데 미츠가 그때 고양이 턱을 긁어주자 가릉가릉 거리며 기분좋은 소리를 내었고 미츠가 고양이 엉덩이를 몇번 팡팡하고 때려주자 얼굴이 새빨게져서는 문을 열어주었다.



  "야아옹~ 밤길 어두우니 조심해서 다녀오세옹…."


  "고마워요 야옹님."



  미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후문으로 나갔고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휴~ 개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숲으로 무사히 들어간 미츠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달리기 시작했고 최대한 빨리 성역을 벗어나기로 작정했다. 자신이 이곳에 있어봤자 니텐을 시험들게 할뿐이고 케이미츠의 행복에 금이 가는 원인이 될수도 있다면 사라져주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은 츠이시 가문의 입장에선 명백한 탈주 협력자이기 때문에 추격자가 붙을것이고 잡혔다간 목숨을 잃게 될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 츠이시 니텐과 함께했던 생활들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고 싸우는 방법도 알게 해줬으며 자신에게 가장 맞는 무기가 무엇인지도 알게해주었다. 절대로 간단히는 자신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미츠는 자신의 허리춤의 채찍을 보며 지긋이 미소를 지었고 계속해서 나아가기 시작했지만 앞에 퇴마도를 땅에 박은채 검의 손잡이를 잡고 서있는 츠이시 니텐을 마주하며 멈추어 설 수 밖에 없었다.



  "……."



  미츠는 잠시 말없이 가만히 서있었고 니텐은 가만히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미츠를 응시했다.



  "어디 가는거야?"


  "그것보다 네가 어떻게?"


  "어디 가는 거냐구."


  "네가 어떻게 여기 있냐니까."



  계획에 너무나도 큰 문제가 생긴 미츠가 성가시다는 듯이 되물었고 니텐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네 침소에 갔는데 너가 없길래."


  "어머, 새신랑 되실분이 이 늦은 시간에 제 침소라니요?"


  "너가 보고싶었고 널 안고 싶었다."



  니텐의 말에 미츠는 피식하고 웃더니 대답했다.



  "그러지말고 며칠 뒤에 결혼하고 나서 우리 케이미츠 허리가 부러지도록 안아주지 그래?"


  "너가 아니면 안돼. 근데 지금 넌 날 떠나려고 하잖아."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니텐에게 미츠가 여유롭게 대답했다.



  "내가 있어봤자. 일이 더 복잡해질 뿐이야. 난 잊어."


  "절대로 널 잊을 순 없어."


  "그건 네 사정이고, 길 좀 비켜줄래? 나 좀 지나가야 하거든."



  미츠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듯이 말했고 니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널 보낼 순 없어. 이건 널 위해서도 그런거야. 우리 가문의 추격자들이 붙으면 넌 분명히 살해당한다는걸 너도 알잖아?"


  "그건 내 사정이고, 길 좀 비켜줄래? 나 좀 지나가야 하거든."


  "……."



  니텐은 그대로 길을 비키지 않았다. 다만 무겁게 입을 열뿐.



  "케이미츠를 그렇게 아껴?"


  "내 동생은 갑자기 왜."


  "너가 케이미츠에게 왜 그렇게 집착하고 아끼는줄 알아?"


  "……."



  미츠는 표정을 약간 찡그린채 그를 보았고 니텐은 크게 말하기 시작했다.



  "면역자들은 말이야! 무슨 이유에선지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서로 뭉치게 되어있어! 그래서 보통 면역자들은 서로 친한 친구거나 부부사이로 같은 소속과 공동체에 모여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 그 호감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고 말이야."


  "말하고자 하는게 뭔데."



  미츠가 쏘아말하자 니텐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키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네가 케이미츠를 아끼는 것도 그것 때문이라고. 면역자끼리의 호감때문이란 말이야! 네가 네 동생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고 희생하고 생각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지 네가 순수한 의도에서 그 아이를 위해 그러는게 아니란 말이다! 차별받는 불쌍한 조선 아이니까? 나라를 잃은 아이니까? 조금의 연정과 인심으로라도 그 아이를 품어준다? 네 자신은 굶고 희생하면서 까지? 그런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친동생도 아닌 조센징한테?"


  "조센징…? 너 말다했어?"



  미츠가 차가운 시선으로 공격적으로 말함에도 불구하고 니텐은 계속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너가 그 애를 아끼는건 말이야. 우리 가문 저주의 영향으로 요괴들이 몰려오고 사람들이 물러가는 거랑 똑같은거야. 그런거라고. 알겠어? 만약 네가 면역자가 아니었다면 넌 진작에 그 아이에게 침을 뱉으며 네 살길 찾아 떠났을 거란 말이야! 근데 왜!! 그런 애를 위해서라고 말하며 떠나려고 하는건데!!"


  "……."



  미츠는 기가 차다는 듯이 어깨를 한번 들썩이고는 자신의 이마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고마워, 너와는 더 이상 대화할 가치가 없다는 걸 오늘 이 자리에서야 깨달았어. 덕분에 남아있던 마지막 미련마저 시원하게 박살나서 발걸음이 더 가벼워질거 같아."



  그리고 미츠는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니텐은 말없이 퇴마도를 땅에서 뽑아들며 공격자세로 치켜들뿐.



  "지나가지 못해."


  "무력으로 막겠다는 건가."



  미츠가 자신의 허리춤에선 채찍을 꺼내들려고 했으나 그 잠시의 틈도 주지않고 니텐은 엄청난 속도로 미츠에게 파고들었다. 아무리 몇년간 단련된 협력자라고 할지라도 평생을 수련해온 자의 선제공격은 그녀를 잠깐의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지도록 하였다. 검으로 직접 베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충격으로 그녀를 제압한 니텐은 미츠를 내리깔고 그위에 앉았다.



  "역시, 빠르구나."



  바닥에 쓰러져 누운채 헝크러진 머리를 한 미츠, 유난히 그녀의 오른쪽 눈밑의 흉터가 돋이는 그 상태에서 니텐이 다시 말했다.



  "떠나지 마라, 미츠."


  "무력으로 제압한 사람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이까?"



  미츠는 가만히 있을뿐이었고 니텐은 이를 아득하고 깨물더니 미츠의 상의를 찢고 그녀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너가, 너가 날 떠나려고 했기 때문이야, 강제로라도 널 내껄로 만들겠어."



  그러며 미츠의 하반신을 바라보는 니텐에게 미츠는 점점 흐려지고 초점이 없는 눈으로 미소짓더니 말했다.



  "…똑같아."



  그 말을 들은 니텐은 시선을 미츠의 얼굴로 옮겼다.



  "뭐라고?"


  "똑같아…넌."



  미츠는 실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날, 그때의 그 짐승들하고 넌 다를게 하나도 없어."


  "……."



  니텐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미츠는 초점없는 눈으로 계속말했다.



  "그 인간들 만도 못하다고, 인간만도 못한 녀석들은 죽어도 된다고 했던 그것들과 너도 지금 같아진 거야."


  "아니야…난 달라……그런 녀석들하곤……."


  "아닌거 같아?"



  미츠는 니텐을 공허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찢겨진 상의를 양손으로 움켜잡으며 말했다.



  "내 생각엔 똑같은 거 같은데."


  "그게…그러니까……."



  니텐은 살짝 떨면서 미츠에게서 물러났고 고개를 가로젓더니 말했다.



  "미, 미안해 미츠. 그러니까……나 순간적으로…미, 미안!! 정말…이야……. 널 떠나보내기 싫어서…그래서……."


  "……."



  미츠는 찢겨진 상의를 추스르며 가만히 일어섰고 높게 떠 있는 보름달의 빛을 가득 받은채 말했다.



  "나 말이지 엄청나게 더럽혀진 여자라고? 알아? 널 만나기전부터 이미 내 몸은 더럽혀졌었어. 네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말이야."


  "……."


  "이런 몸에 너의 흔적 하나 더 남기는거 정돈 별 문제가 아닐수도 있어. 하지만 말이지 케이미츠를 생각해서라도 이래선 안되는거야."


  "……."



  부들부들 떨며 공황상태가 온 츠이시 니텐에게 카이 미츠는 천천히 다가가서 귓속말을 했다.



  "그것도 성역에서 말이지. 성역에서 더럽혀진 여자를 범했다간 이 성역도 언젠가 더럽혀져 버릴지도 모른다구? 안그래요 퇴마사씨?"



  그 말을 끝으로 니텐은 털썩하고 주저앉아 버렸고 검도 손에서 놓고는 얼빠진 표정을 지은채 가만히 굳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미츠는 뒤돌아서서 이제는 방해물이 없는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의 앞에서 조금의 미련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는 곧장 길을 걸어가기만 했다. 어쩌면 이대로 검에 찔릴지도 모른다. 츠이시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성격에 최소 하나둘씩의 결함이 있기에 그들이 공황에 빠지게 되면 어떤 행동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츠는 뒤돌아 보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차가운 바람이 분다. 함께 여행할때 이럴때면 니텐이 감싸주거나 가려주곤 했었다. 힘들때 지칠때 모두 그가 함께 있어주었다. 목숨이 위험할때 찰나의 순간, 모두 그가 막아주고 지켜주었다. 그런 그에게 언젠가부터 마음이 가기 시작했고 조금씩 사랑하게 되었다. 솔직히는 케이미츠가 없을때 둘만의 좋은 시간들도 몇번 보낸적이 있었다. 다만 육체적인 의미에서의 좋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런게 더 좋았었다. 그와 함께 숙영하고 사냥을 하며 자연을 느끼고 얘기를 하는 매 순간이 좋았고 어쩔줄을 몰랐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여자가 되기에 자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너무나 깨끗하지 못했다. 츠이시 가문의 정말 드문 남자 퇴마사라서가 아니다. 그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미안했다. 자신의 처음이 언제 어떻게 깨져버렸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겐 과분하다 느꼈었다.


  한편으론 향금이…케이미츠가 니텐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였다. 면역자끼리의 호감? 그런건 알아서 되라고 해라. 미츠는 그저 케이미츠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녀를 위해 살아왔었기에, 자신이 더럽혀져도 그녀만은 순수하게 남아있을 수 있게. 그녀만은 언제나 세상의 밝은 면만을 보고 살수있게 해주고 싶었었다. 다른 면으론 츠이시 가문의 일본남자와 조선여자가 결혼함으로서 작은 곳부터 천천히 조선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함께 소통하고 어울리는 사회를 보고 싶기도 했다.



  "……."



  라고 자신을 설득하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심정은 좋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 이 만남 덕분에 그녀는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한때 정말로 좋아했었고 미련이 남고 애착이 갔던 사람을 이제 내려놓기로 결심한 지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혼(魂) - 더럽혀진 성역 - Old story - 5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