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 더럽혀진 성역 - 4
장르: 연애, 순정, 퇴마, 판타지
글쓴이: 너구리햄스
<혼의 Ep4입니다. Ep1, Ep2를 안보신 분들은 이해가 힘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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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나 혼자는 무리잖아.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이라구? 물론 일단 요괴란게 진짜로 있다는 전제하에 되는 이야기지만…솔직히 이 상황쯤 되면 장난으로 쉽게 생각하고 넘길일은 아니잖아.
나 혼자 갔다간 죽을게 뻔해…한두마리가 아냐. 드글드글 한다고 하잖아?
"……."
역시…그냥 학교에 가서 코토 미요에게 잔소리 들으며 세이키와 함께 동아리 활동하는게…….
"무리할거 없어."
츠이시가 어쩔수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보며 말한다.
"넌 그냥 평범한 학생이니까. 그냥 돌아가."
"……."
돌아가야겠지…….
"괜찮아~"
내가 시무룩하게 있자, 츠이시가 밝게 말하며 나에게 다가오고는 어깨에 손을 척하고 올리며 말했다.
그녀가 날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고민하고 있지? 괜찮아. 내겐 네 안전이 더 중요해 켄지."
"츠이시……."
"아~"
내가 그녀에게 츠이시라고 하자 츠이시가 갑자기 기분 나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이라고 해."
"……왜?"
"요이라고 불러. 안그럼 진짜 화낼꺼야."
"……."
그녀의 표정에서 섭섭함이 가득 묻어나온다. 그러고보니 기억을 잃기전의 나는 그녀를 요이라고 불렀던것 같다.
"빨리, 요이라고 해줘. 네가 날 안돕는건 상관없지만 이 말은 꼭 듣겠어."
"알았어, 요이."
"헤헤."
그녀가 밝은 표정을 짓더니 내뺨을 한번 슥 어루만지곤 말했다.
"자, 그럼~ 학교가서 예쁜 여자친구랑 잘지내고 있어! 난 이번 임무 수행한다고 며칠은 좀 바쁠거 같아. 한 일주일 뒤쯤에 다시 와주라."
그리고 약간 슬픈 표정으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무사히 아무 문제없이…여기 있을거니까말야."
"요이……."
그래도 일단 난 돌아가기로 한다.
솔직히 내가 뭐 어쩌겠는가?
평범하고 무력하고…손에 잡은건 필기도구랑 설거지 빨래장갑밖에 없는 녀석인데.
"그럼, 잘있어."
"응. 기운내~ 나중에 내가 돌아왔을때~"
요이가 윙크를 한번 해주며 말했다.
"내 소원 몇가지만 들어주면 간단하니깐!"
"에!? 그런게 어딨어!!"
"어쨌든 돌아가. 어서."
요이는 어찌보면 일부러 나를 보내려는 듯이 나를 밀어냈고 나는 어떨결에 터덜터덜 돌아가기 시작했다.
조금 멀리 아즈미씨의 말이 들린다.
"나마루님은 진짜 가는건가요?"
"네, 협력자라곤 해도 아직 임무를 맡기엔 무리인 단계에요."
"…아쉽군요."
"별수 없죠. 그는 이제 막 협력자가 되었는 걸요."
"수련의 부족이란 건가요."
그들의 대화가 계속 들린다.
"뭐 나마루님이 빠졌으니 작전 수정이죠?"
"네. 제가 동굴을 시작점으로 곡선방향으로 가볼까해요. 300m를 직선 돌파하다간 요괴들에게 둘러쌓일수 있으니 조금 빙 둘러가면서 서서히 접근하는 식이 좋겠어요."
"하지만 그것도……."
"위험하겠죠…그래도 일단 결계안은 안전하니까 시도해볼만은 해요."
내가 떠나면…요이가 나 대신 가는것이다. 온갖 요괴들에게 쫓기며 힘겹게 달리고 달리겠지.
"……."
뭐, 그래. 기분이 찝찝할땐 원인을 찾아 없애버리는거야.
나는 발길을 돌려서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아즈미씨는 예상했다는듯이 날 쳐다보았고 요이는 조금 놀란듯 말했다.
"다시 왜 왔어?"
"내가 갈게."
"어째서…? 안가도 된다니깐."
"요이."
난 팔짱을 끼며 은근 자존심 상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학교에 있을때 네가 목숨걸고 뭔가 하고 있으면 내가 공부든 뭐든 될거같아?"
"켄지……."
"난 최소한 요괴를 끌어들이는 저주는 없으니까 몰래 접근도 할만할거야."
"정말 괜찮겠어?"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뭐, 남들 못하는 경험이랑 구경하다가 조금 위험해지는것도 할만하잖아?
그리고 요괴고 나발이고 진짜로 있는지 직접 두눈으로 확인해주지.
"물론 괜찮아. 이 맘 바뀌기전에 얼른 짐이나 챙겨줘. 지금 바로 가는거지? 아직 이른 오후니까."
"네, 시간이 지날수록 요괴들이 더 모여드니까 빨리하는게 좋죠."
"그럼, 좋아요. 장비들같은건 챙겨 가는거죠?"
"네, 챙겨야죠."
내손에 들린 카메라를 바라보며 내가 조금은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을때 요이가 다가와 말했다.
"정말 괜찮겠어?"
"응."
"……."
요이는 오히려 자기가 겁에 질린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부탁이니까……무리는 하지마……."
"음?"
"약속해줘."
"나도 무리는 하기싫어~ 어쨌든 약속."
내가 웃어보였고 요이도 어색하게 미소지어 보였다.
아즈미씨가 간단하게 지도를 포함한 여러 도구들을 다용도전략배낭속에 넣어주었고 요이는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혹시 보우건 필요해?"
"아, 그거?"
"응."
"뭐, 있으면 좋겠지?"
"자."
요이가 자신의 보우건을 나에게 주었……윽? 이거 생각보다 무거운데…….
탄창들 무게까지 합하면 오히려 방해가 되겠어. 평소 운동이라도 좀 해두는건데 거참.
"아, 그냥 안드는게 낫겠다."
"정말?"
"뭐, 이게 있잖아."
내가 카메라를 들어보였고 요이가 보우건을 내려두며 말했다.
"그럼, 여분의 필름이랑 배터리를 가져가."
"좋아, 그정도야."
요이는 뭔가 녹색위장복의 전술방탄조끼 같은곳의 주머니에 그것들을 넣어주었다. 그리곤 그 조끼를 내 교복위에 걸쳐주었고 팔꿈치나 무릎보호대도 주었다.
"마음같아선 아예 다른 방어구들도 주고 싶지만 전부 여성용 뿐이라…. 일부러 입었다간 괜히 불편할듯 싶어서 말야. 이번 작전은 기동성이 매우 중요하니까."
"뭐, 여성용이라면 나도 찝찝하니까."
"그래도 이정도면 어느정도 요괴의 공격은 버텨낼 수 있을거야."
그리고 요이는 자신의 텐트에서 뭔가를 찾고는 초콜렛2개와 함께 명함같은것을 나에게 내밀었다.
<협력자No.0211 나마루 켄지>
아주 간략하게 적혀있는 명함이다. 츠이시 가문 이름도 안적혀있으며 명함에 조금 복잡한 기호들만 잔뜩 있는걸보면 보안에 신경을 많이 쓰나보다.
하긴 일반 사회에서 섞여 살수있는 협력자들이 신분등을 분실, 도난 당했을때 자세한 정보가 새어나가면 안되니까…….
그나저나…….
"어이, 이거 언제 결정난거야!?"
"아, 그거."
요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 그냥 너가 어차피 협력자가 되어줄거 같다는 '여자의 직감'이 통해서 미리 널 등록해놨었어. 결과적으론 맞잖아?"
"……."
이녀석 어차피 처음부터 놓아줄 생각은 없었던 거잖아!!
"아, 근데 말이야 켄지."
"……?"
요이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조용히 말했다.
"내가 알기론 옛가옥 주변에 있는 숲에 우리가문에 협조하는 요괴들도 있다고해."
"…요괴들은 너희 가문 공격한다며?"
"꼭 그런건 아냐. 우리 가문의 기운에 끌릴 뿐인거같으니까. 요괴라고 다 나쁜 요괴만 있는건 아니거든. 그 요괴들은 수인(獸人)족의 한부류인데. 예전부터 일명 '평온의 숲'이라 불리던 그 숲에서 요정들과 정령들과 함께 평화적으로 잘지내왔다고해. 물론 나도 듣기만 한거라 진짜로 실존하는지. 정말로 우리가문을 보고도 우호적인지는 몰라."
"수인이라…뭐, 동물인데 사람같이 생긴거야?"
"응. 사람과 제법 흡사하며 변신능력이 있다니까."
"변신이라…알았어 일단 참고토록 할게."
그때쯤 아즈미씨가 나에게 가방을 주며 말했다.
"준비는 됐습니까?"
"네."
"일단 가옥쪽의 동굴 까지는 저도 가야하니 같이 이동하도록 하죠."
"아즈미씨도 가는건가요? 전령역이신줄만 알았는데."
"그게 요괴들이 점점 늘어나는 시점에서 저희 정부측 감시자들의 안전도 보장못하니…가서 이것저것 확인도 해보고 하게요."
"그렇군요……."
"그럼, 츠이시님은 여기서 일단 대기해주세요. 제가 다녀오고 나서 그곳 상황이라던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이가 아즈미씨를 보며 말했다.
"오실때 켄지랑 같이 오실순 없나요?"
"아쉽게도…감시자들이 있는곳은 오히려 반대쪽이거나 더 먼곳이라…합류해서 돌아오는건 무리일듯 합니다."
"네……."
나는 요이를 보며 말했다.
"걱정마, 편히 다녀올테니깐."
"응…. 기다릴게."
그렇게 나는 아즈미씨와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굴안에서 흐르는 냇물을 따라 점점 깊이 들어가는데…이상하게도 어느정도 들어가도 주변이 어둡지 않았다. 어디선가 빛이 들어오는건지 벽이나 돌이 빛을 발하는건지…주변은 신비하면서도 깨끗하게 밝았다. 흐르는 냇물에서도 맑은 청색의 빛이 나오는듯 했다.
이것이 바로 성역이란 것일까……?
이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점점 편해진다.
그렇게 계속 들어가다가 앞이 막힌듯한 곳이 나왔다. 자세히는 지반이 아래에서 위로 솟아서 점프한 다음 손으로 기어올라야 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옆으로 냇물이 흘러 작은 폭포처럼 밑으로 물이 떨어지고 있다.
아즈미씨가 점프해서 먼저 올라갔고 그다음에 내가 점프…….
"……."
나는 왜 점프해도 위에 손이 안닿는거지…….
"나마루님 제 손 잡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아즈미씨가 위에서 손을 내밀어주셨고 나는 살짝 점프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즈미씨가 날 끌어올려주었고 솟은 지반때문에 천장과 가까워져서 우린 앉은채 걸어야했다.
어쩌다가 동굴에서 오리걸음을…….
곧 다시 넓은 곳이 나왔고 우리는 물길을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얼마나 갔는지 모를 때쯤….
뭔가 주변에서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꼭 동굴자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그러다가 약간 넓고 청록빛이 감도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엔 푸르고 투명한 샘이 있었다. 이곳이 냇물의 근원지인듯 하달까…….
아즈미씨는 뭔가 문양같은게 새겨진 벽돌크기의 돌들을 샘 옆의 작은 공간에 배열하기 시작했고 그 돌들의 문양이 어떤 모양으로 맞춰져서 문양에서 푸른 기운이 흘러나왔다.
저 돌들은 맞추기에 따라서 다양한 문양이 나올 수 있고 그에따라 뭔가 변하는건가 보다.
아즈미씨가 말했다.
"자, 이제 샘안으로 들어가세요."
"네? 샘…안에요?"
"네."
"……."
난 '푸르고 투명하고 깊이를 알수없는 샘'을 내려다 보았다. 뭔가 엄청나게 찝찝했다.
아, 그래. 카메라도 있는데 이런 물에 그냥 들어가는건…….
"에이, 걱정마세요."
갑자기 뒤에서 아즈미씨가 날 밀치는듯한 느낌이 들면서 난 몸이 샘쪽으로 기울고 있다!?
"잠깐! 카, 카메라!!"
풍덩-
무수한 공기방울들과 함께 나는 샘안으로 들어왔다. 눈을 뜨고 물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물밖에 있는 아즈미씨의 모습이 조금 보인가 싶더니 갑자기 뭔가 샘물자체가 어딘가로 빨려나가고 있는듯한 느낌과 함께 난 샘의 깊은 곳으로 빠져갔다.
물론 기분은 두렵고 긴장됐었지만…주변은 여전히 밝았고 투명하고 깨끗한 물살을 따라 내가 이동중이라는게 느껴질 따름이다.
하지만 물속이기에 난 숨을 참고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점점 숨이 막혀오는것이 느껴진다.
아름답고 깨끗한 통로를 물속에 잠긴채 빠르게 움직이는거 까진 좋지만…이거 이대로 계속 가면 난 익사하고 만다.
"……!?"
그때 물속에서 뭔가 반투명의 얼굴같은것이 보였다.
여성의…얼굴?
꼭 물속이긴 하지만 뭔가 주변의 깨끗하고 푸른 빛에 어울리는 푸른…어떤 '정령'같은 느낌의 여자가 내 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키스를…….
"……!"
숨막힘이 해결되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난 지금 산소를 제공받은것 같은 느낌…그리고 몽롱해지는 의식과 편안함.
꼭…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양수속의 그 느낌이 느껴지는듯 하며 의식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평온의 숲속 동굴안] - - - - - - - - - - - - - - - - - - - - -
"나마루님?"
"……."
"나마루님?"
"아……."
누군가의 목소리…아마도 아즈미씨.
내가 눈을 뜨자 내 앞에는 아즈미씨가 있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쓰러진채 아즈미씨를 바라보다가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외쳤다.
"그! 물속에서 이상한!! 뭔가 사람같은! 그리고 여긴 도대체 어디에요!?"
"아마 동굴의 님프인 '오레이아스'거나 냇물의 님프인 '나이아스'가 아니었나 싶군요."
"님프요!?"
"특히 남자에게 매우 친절한 자들인데…뭐, 자세한것은 알필요가 없습니다. 나마루님 입장에선 그냥 '선한 정령'쯤으로 생각하세요. 자세한건 나중에 츠이시님에게 물어보시길."
"네……."
옛날부터 이런 방법으로 이동수단이 있긴 했다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현대에서도 감히 따라하기 힘든…거기다 지금 내 옷은 모두 멀쩡하게 말라있고 카메라에도…물기 하나 없다.
"자, 일어나시죠."
"네."
난 감사히 아즈미씨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고 주변을 보았다.
역시 동굴안에서 깨끗한 냇물이 흐르고 있는데…조금 위에 뚫린 구멍으로 밝은 햇빛이 동굴안으로 비치고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약간 넓은 공간에 비춰들어와 빛의 커튼같은 것이 보이는 동굴안…….
이런 묘한…말그대로 그림속에 들어와 있는듯한 느낌은 처음인듯하다.
"……?"
그러다 뭔가 1m좀 안되는 뭔가가 동굴안의 바위와 바위 사이로 날아갔다. 곧 바위옆으로 뭔가가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요…정?
깨끗하고 뽀얀 피부에 날개도 달렸으면서 나뭇잎이나 기타 자연물로 만든 옷을 입은 꼭 동화책속의 요정같은것이 보였다. 겉보기론 남자아이.
잠깐…여긴 일본인데 유럽의 이야기속 같은 요정들이 있어도 되는거야? 요정들도 세계화시대?
그나저나…이걸로…….
요괴같은 것들의 존재가 내 눈앞에서 확실히 인정되어져 버렸다.
요정이니 정령이니 같은 것들이 눈앞에 나타난 상황에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하는것은 불가능한듯한…….
아즈미씨도 나와 같은 방향을 보더니 말씀하셨다.
"평온의 숲에서 도망쳐온 요정중에 하나인가 보군요. 지금 평온의 숲은 말그대로 학살의 터입니다. 행복하게 지내던 요정들과 정령들의 집과 같은 나무들도 많이 파괴되고…오염도 시작되고 있을겁니다. 아직 숲에 갇혀서 못나온 요정들도 있겠지만…다행히 어느정도의 정령들과 요정들은 이 성역인 동굴로 도망쳐 온듯하군요."
"지금 그렇게 밖의 상황이 심각한가요?"
"여긴 원래 성역이라 요괴들이 거의 안나타나는 곳입니다. 거기다가 이 평온의 숲을 중심으로 정부측에서 민간인의 진입이나 기타 타인의 침입을 차단하기에 여긴 말그대로 자연보존지구요. 오랜 시간 외부 침입없이 지내던 요정들에게 있어서 전투적이고 야만스러운 요괴들의 침입에 그들은 대항할 '요정 전사'들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있어봤자 겉치레만 전사인 것들이었겠지요."
"……."
"나마루님이 몇십년동안 아무 걱정없이 '안전가옥'에서 살다가 어느날 자고 일어나 평소처럼 방문을 열었는데 눈앞에 괴물이 있다면?"
"……."
"요정들에게 있어선 이건 전혀 예상치못한 공격이었습니다. 저희 정부측도 그렇구요…지금도 감시팀이 무사할런지 모르겠군요. 상당수의 요괴들이 진입한것 같은데…그걸 차단못했다는것은 분명 감시팀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니까요……."
"위험한거군요."
이제와서 막상 후회되기 시작한다.
여기 오기로 결정할때만해도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가버리자'라는 각오였는데…막상 도착해서 주변 상황을 들어보니 그닥 긍정적이지 못하다.
카즈미씨가 조금 멀찍히 보이는 동굴의 출구를 보며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유언장은 쓰셨나요?"
"……유언장요?"
"음…기본적인것도 모르시는군요. 확실히 이번 '작전'에 당신을 단독으로 보내는건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후으. 잘들으세요. 이런 위험한 작전…특히 위험한 작전에 나서기 전엔 원래 유언이라던지 사망시에 남은 자들에게 남길 메시지정도는 남깁니다. 이건 매우 치열한 전장에 나가거나 위험한 작전을 수행하는 군부대에도 해당되는 거구요. 참고로 저는 이미 썼습니다."
"아…저는……."
내가 진짜로 죽을수도 있다곤 생각도 자세히 안해봐서…유언장……그러고보니 써, 써야하나?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인데? 이게 뭐야…무슨 학도병도 아니고…….
내가 고민하고 있을때 아즈미씨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너무 걱정마세요. 기다리는 여자가 있는데 이런곳에서 쉽게 죽을리가 없잖아요?"
"쿨럭!!"
뭐, 뭐야 갑자기!?
"아니, 저랑 요이는 크게 뭐다할 관계가……."
"뭐, 이건 제 닌자로서의 직감이지만. 분명 나마루님이 무사히 오지 않으면 슬퍼할 사람이 있을거 같다는건 분명해요."
"그거야……."
만약 내가 죽는다면 누가 슬퍼해주긴 하겠지…여동생인 레나같은 가족이던가…학교 친구들…친척들…….
그리고 츠이시 요이도……?
"후, 그래도 나마루님에게 조금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츠이시님께 은근히 부탁받기도 했고 그냥 혼자 가버리려니 마음이 안놓이기도 하구요."
"어떤 도움요?"
"퇴마용 카메라 사용법은 잘 아시나요?"
"아."
거의 모르는 수준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카메라를 꺼내서 본다. 뭔가 다양한 기능이 있어보이지만 잘 모른다.
카즈미씨가 날 데리고 동굴 밖으로 나가셨다.
동굴밖은 숲속이었다. 가을이라 단풍이 가득한 울긋불긋한 숲속…바람이 불때마다 조금씩 단풍이 떨어져가는 외롭고 쓸쓸한 가을숲.
평소같았으면 아름다운 단풍의 숲이라 여겨지겠지만 지금은 그저 삭막하고 앙상한 던전 속에 내던져진 느낌일 뿐이다. 아니, 내던져진거보단 스스로 찾아왔지만.
카즈미씨가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이용하는 당신은 '소울스틸러'입니다. 소울테이커나 그냥 소울셔터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일반인에겐 비공개적인 부분들이라 이름은 자기 편한데로 불러도 크게 문제될건 없어요."
그리고 카즈미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나마루님의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여러 기능을 쓸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3가지 기능이 전투에 사용됩니다."
"그렇군요."
나는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며 원형으로 돌리는 식의 '모드선택'을 바라본다.
"첫째는 플래시를 이용한 요괴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과 귀신과 같은 영혼상태의 적에대한 소멸공격입니다. 카메라 설정을 맞춤에따라 플래시의 화력이 달라집니다. 플래시의 화력을 강하게 설정할수록 배터리가 빨리 닮지만 나마루님 본인의 숙련도 증가로 인한 부가적 화력증가는 배터리소모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강할수록 요괴들에게 표면적으로 피부에 강한 '화상'같은 위협을 줄 수 있습니다. 플래시 자체만으로 퇴치하는것은 많이 힘들고 단지 위협으로 인한 접근 차단으로 플래시는 자주 이용됩니다. 매개가 되는 육신이 없는 귀신의 경우엔 플래시만으로도 소멸이 가능하긴합니다."
"귀, 귀신도 있나요!?"
"정령이 있는 상황에 죽어 떠도는 영혼이 있는게 크게 문제될것 같진 않네요."
"네……."
"이어서 두번째는 직접적인 공격에 해당하는 '소울스틸'입니다. 말그대로 상대의 영혼을 타겟팅 한후에 셔터를 눌러 영혼을 가로채서 퇴마용특수필름통에 담습니다. 부득이하게 특수필름통이 없다면 술식처리를 할 경우 일반 필름통도 사용가능합니다. 카메라에 전원을 켜보세요."
나는 카메라의 전원을 켰다. 디지털 카메라에 전원이 들어오며 컬러액정화면에 순간적으로 특수한 문양-츠이시 가문의 문양-이 나타나며 전원이 완전히 켜졌다. 전원이 켜지는데 불과 1초도 안걸렸다. 긴급상황시를 고려한 제품설정인것 같다.
"그래도 나마루님의 카메라는 기본적으로 최신식에 상당히 좋은 카메라라서 기본적인 방수기능이나 절전모드, 기타 다른 기능들이 있을듯 합니다. 물론 옛날의 카메라 무기들도 상당히 강력하지만요. 카메라를 무기로 사용한다는것 자체가 근대들어와서……흠, 잠시 말이 샛군요. 액정화면으로 저를 봐보세요."
나는 카메라의 렌즈를 카즈미씨로 향했다. 컬러액정화면상으로 카즈미씨의 모습이 보였다.
"일반적인 모드가 아니라 소울타겟팅모드가 있을겁니다. 찾아보세요."
음…누르기 쉽게 되어있는 이건가?
"와."
액정화면의 컬러톤이 변하더니 내앞에 아즈미씨의 형상을 한듯한 푸른 혼(魂)같은 것이 보였다. 강도의 조절이 가능한데 강도와 타입을 조절할수록 인간의 형태로 보였다가 불타는 불꽃…무슨 도깨비불 같이도 영혼이 보였다.
"그것으로 영혼을 타겟팅해서 촬영해서 영혼을 가져옵니다. 기본적인 플래시 기능과 기본 촬영과 달리 '소울타겟팅'모드에서는 요괴말고도 일반 '사람'을 대상으로도 영혼을 가로채니 매우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변 환경도 잘보셔야 합니다."
"주변 환경이요?"
"네, 만약 주변에 물이 흐르거나 거울을 포함한 반사매체가 있다면 카메라 무기는 오히려 사용자 자신을 자멸로 이끌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반사매체로 자신이 정확히 타겟팅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래도 위험하니 주의해야합니다."
뭐, 사진 찍을때 내 모습이 사진에는 안보이게끔 할때랑 비슷한건가.
"그럼 제가 '셔터!'라고 외치면 조준과 함께 셔터에 손가락을 대시고 '플래시!'라고 외치면 셔터를 눌러서 촬영을 해보세요."
"네."
"목표는 저 앞의 바위입니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있자 카즈미씨가 외쳤다.
"셔터!"
바위를 카메라로 조준했다. 동시에 확대와 축소기능으로 확실히 바위를 화면안에 담는다.
"플래시!"
찰칵-!
조리개가 닫혔다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잠시후에 내 머리속으로 어떤 말이 들렸다.
『리로드 완료.』
어떤 여성이 조용히 귓가에 속삭이듯 들렸다. 혹시 이 카메라…뭔가 귀신들린 카메라 뭐 이런건!?
뭐 그냥 있는 기능이겠지. 신경쓰지말자.
"어디 사진을 봅시다."
카즈미씨가 와서 앨범을 열어보며 내가 찍은 바위사진을 보셨다.
"…자연물 촬영에는 별로인 사진이지만 소울스틸에는 좋게 나온것 같군요."
칭찬인가 욕인가!?
"그럼 세번째 기능입니다. 각각 연속플래시 기능과 연속촬영입니다. 화력은 단발로 사용시보다 약해지지만 다수의 적을 혼란에 휩쌓이게 만들거나 강행돌파시에는 유용한 기능입니다. 연속촬영의 경우도 연속적으로 소울스틸을 사용하나 정조준해서 영혼을 가로채는게 아니므로 효과는 역시 단발보다 약합니다. 그리고 사용후에 재장전시간…즉, 플래시도 플래시충전 시간이 소울스틸도 장전시간이 연속촬영은 오래걸립니다. 물론 단발식으로 사용해도 플래시와 소울스틸이 각각 충전과 장전속도가 있지만요. 물론 충전시간과 장전속도는 나마루님의 숙련도에 따라 단축됩니다."
"……."
무슨 게임의 무기 숙련도 프로그램이냐 이건…….
"자, 그럼 필름통의 교체에 대해 알려드리죠. 기본적으로 스틸한 영혼은 필름통안에 보관됩니다. 스틸한 상대의 영혼이 약한 요괴의 것이면 한 필름통안에 몇개의 영혼이든 들어가지만 상대가 강해질수록 필름통안에 한번에 들어가는 수가 감소하며…결국은 매우 강한 요괴는 한 필름통으로 한마리밖에 감당하지 못합니다. 필름통이 점점 가득 차게되면 액정스크린에 별도의 표시가 나타나다가 교체하라는 모양의 그림이 측면에 표시될겁니다. 그때 그냥 필름통을 교체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긴급시에 긴급사출모드가 있는데 빠른 필름통 교체시에 사용되는 버튼입니다. 그 버튼을 누르면 필름통이 담겨있는 케이스가 열리며 자동으로 필름통이 튕겨져나가서 다음것을 끼우는 속도가 아주 빨라집니다. 대신 사출된 필름통을 꼭 전투후에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에는 영혼들이 가득하기에 그대로 놔두고 가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에…나름 복잡한듯 간단하네.
"마지막으로 배터리 교체입니다. 배터리의 경우 연속플래시나 촬영기능시 빨리 소모되기 시작합니다. 혹은 강한 화력으로 플래시를 쓸때나요. 배터리의 경우 햇빛 비치는 따뜻한 곳에 두면 자동적으로 충전되기는 하나 속도가 느립니다. 그래서 항상 여분의 배터리를 소지해야합니다."
배터리야 뭐…꼭 들고다니면 되겠지.
"근데 나중에 충분히 숙련이 된다면…배터리없이 소울스틸은 가능할겁니다. 플래시까지는 잘모르겠지만요. 사용자 본인의 정신력을 이용해 사용하는겁니다."
일종의 '마나'같은건가. 게임이네 게임.
아즈미씨가 후으하고 숨쉬다가 머리에 둘러맨 끈을 만지며 말했다.
"이걸로 간단하게 카메라 사용법을 마치죠. 이만 건투를 빕니다."
"아, 근데…감사하긴 한데요. 저기 동영상모드는 뭐죠?"
"동영상모드……."
아즈미씨가 고민하다가 말했다.
"후으…저는 닌자쪽이라 그런지 퇴마용 최신 디지털 카메라의 모든 기능은 모르겠지만…그나마 있는 작은 지식으로는 아마 억제능력일겁니다."
"억제능력요?"
"카메라가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넘어가는 일종의 혁명에 추가된 기능인데…아마 동영상 촬영중엔 상대를 억제할수 있을겁니다."
자세한 억제의 정의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 쓸만한 기능이네.
아즈미씨가 자신의 목적지쪽으로 뒤돌면서 말했다.
"카메라의 경우 사용자의 숙련도와 재량에 따라 그 응용기능이 엄청나니 열심히 수련하시길 바랍니다."
"네, 감사했습니다."
아즈미씨가 자신의 목적지 쪽으로 걸어가며 찰랑이는 생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으면서 살짝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럼 무사히 임무완수후에 다시 이곳에서 모이기로 합시다. 오늘 해질무렵까지 집합하시면 됩니다."
"저, 제가 해야하는 일이 정확히 뭐지요?"
"가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만 오는 정찰임무입니다. 애초에 전투임무였다면 나마루님에게는 자살임무였었으니까요. 이왕이면 카메라로 가옥의 모습을 이것저것 담아오십시오. 특히 의심되는 이상한것이 있다면요."
"네, 알겠습니다."
"아, 참고로 작전중 사망에는 정부의 보상금이 가족에게 지급되니 안심하시구요."
아, 네…….
"그럼!"
그렇게 아즈미씨는 땅을 팔로 차듯이 뛰더니 단풍잎이 가득한 숲속으로 사라져 버리셨다.
그리고 나는 숲속을 바라본다.
단풍잎이 가득한 숲…고요한듯하나 내앞엔 분명 무언가 위험한것들이 있을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와서 그냥 돌아갈순없다.
나는 카메라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뭐, 잘할수 있을거야."
그래 잘생각해보니 어차피 안한 학교숙제도 있고 그냥 돌아가는건 무리라는거.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잘모르지만 기억을 잃기전에 나란 녀석이 했던 짓이라면 나도 어느정도는 할수있을것이다.
그렇게 나는 숲속으로 첫발을 움직였다.
[5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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