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 - 몽환의 협곡 - 46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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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네크로맨서 비스씨."
나마루 켄지가 복도에서 비스를 부르자, 복도 중앙에 서 있던 비스가 뒤돌아 보았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오히려 보답해드려야 하는건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히고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사라졌다."
"네? 히고가요?"
"그래, 다시 찾아야해."
비스가 장교모를 머리 위에 쓰며 조금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고 켄지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초콜렛 챙기는건 잊지 않으셨죠? 2개에요. 2개."
"정신 나간채로 잡히면 강제로 주입해버릴거니까 걱정마라."
"주입이라니…뭐에요 그거 괜히 무섭게…."
"기밀이다."
"…네."
그렇게 한 병사가 열어준 문을 지나쳐서 나가려던 비스가 밖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다시 보는 날은 없는게 좋겠군. 너를 위해서 말이야."
"짧지만 좋은 만남이었던거 같아요.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앞으로 행복하게 잘사시길 바랄게요."
"행복이라……나에겐 와닿지 않는 말이군."
뭔가 아련한 듯한 말을 중얼거린 비스는 선글라스 너머의 시선으로 켄지를 슬쩍 쳐다본 뒤에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고 그들 모두가 밖으로 나갔을때 켄지는 그제서야 고개를 갸웃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저런 복장으로 밖에 돌아다니면 안좋을텐데……뭐 그런거까지 신경쓸 분들이 아닌가."
그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봉인된 양피지를 꺼내서 살펴볼때, 미정은 켄지의 집에서 나오는 네크로맨서 비스와 장병들을 보곤 기겁을 하며 김 담당관에게 연락을 넣었다.
"와씨?! 저건 또 뭐하는 것들이야? 담당관님? 지금 아주 그냥 저냥 모냥 대박사건 터졌어요."
하지만 담당관에게서 응답이 오지 않았다.
"김 담당관님?"
여전히 대답이 없다.
"김 담당관님? 뭐하세요? 지금 진짜 중요한 상황인데."
여전히 대답이 없는 가운데 비스와 장병들이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서 시야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했고 다시 비가 조금씩 강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아씨 비 또 오네. 지금 살아있어요? 설마 암살 당해서 피투성이 상태로 사무실 의자에 고꾸라져 있다던가 그런거 아니죠? 그런거면 경호담당인 제 입장이 엄청나게 무지막지 난처해지니까 장난치지말고 빨리 응답하세요."
그러나 담당관의 대답은 없었다. 이젠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네크로맨서 비스 무리들을 떠올려 본 미정은 그들이 도대체 어떤 존재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켄지네 집에서 나온것이라면 분명 어떤 일과 관련이 있을거라는 직감에 맡기고 그들의 뒤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다만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일 권한은 담당관의 신변에 위험이 있을때만 제한적으로 가능했기에 몇분 정도 계속 연결을 시도해보았고 더 이상은 못참겠다는 듯이 말했다.
"김 담당관님, 듣던말던 말하는건데 말이죠. 지금 포스 있는 검은 코트여자와 이상한 무장단체를 뒤쫓을 겁니다. 근무평가에 확실히 SSS급으로 도장 콱 찍어주세요."
이젠 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다못해 안개까지 끼어가는 와중에 미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한발자국을 떼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린 그녀는 어느 공터가 보이는 길 중간에서 마치 달리다가 멈춰버린 영화필름처럼 한발을 땅에 내딪은 채로 가만히 굳어서 나타났다. 다만 그녀의 발밑에 옅은 술식 같은것이 새겨져 있을뿐.
"……."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눈만 움직일뿐.
세차게 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녀의 옆 공터의 길쪽 안개 속에서 묵직한 군화소리가 그녀를 향해 조금씩 커져가기 시작했다.
"……."
필사적으로 눈을 옆으로 돌린 그녀의 시야엔 안개 속에서 검은 존재의 무언가가 조금씩 진해지며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것 정도였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녀가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기에 심장만이 미친듯이 뛰고 있을 뿐이었다.
곧 그 군화소리의 주인이 굳어버린 미정의 옆에 가만히 서서 입을 열었다.
"넌 누구지."
"……."
"대답해라."
그제야 입이 열린 미정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는…그, 그러니까……그게……."
너무 떨려서 제대로 말도 못하는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는 네크로맨서 비스에게 미정은 입을 악물고 대답했다.
"미, 미정이라고 합니다."
"넌 내가 누군지 알고 뒤를 쫓은건가?"
"아, 아니요. 저, 저…전혀 몰랐습니다."
"소속과 본명, 이곳에서의 목적을 말해라."
"……."
임무상 보안사항도 있었기에 미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대, 대한민국 국적에 이름은 한미정입…니다만 더 이상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미정의 관자놀이에 차가운 총구가 살며시 닿아왔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뭔지 알아챈 미정은 입술까지 파르르 떨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그녀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댄 비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소속된 곳과 목적을 말해라."
"…진짜……진짜 딴건 모르겠는데……저, 그, 그건…말못해요……진짜 부탁…드려요. 제가 잘못했어요…."
"한번만 더 기회를 주겠다. 소속과 목적을 말하던가 여기서 죽던가 선택은 간단하다."
"위, 위험한 사람들인가 싶어서…따라왔던 거에요…. 막 이상한…그러니까 공격할 의도 그런건 전혀…없었어요…그러니까…!!"
거의 울먹이며 말하는 미정을 선글라스속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본 비스가 물었다.
"눈물은 있는대로 흘리면서도 나오는 충성심이라, 국가에 대한 충성인가?"
"…이 바닥에서 지킬걸 못지키면…어, 어차피…언젠가 시체가 되서 나뒹굴거니까……."
그말을 들은 비스는 씨익 싸늘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권총을 다시 권총집에 집어넣고는 말했다.
"나에 대하여 모든 발설을 금한다. 이것만 지킨다면 목숨을 연장시켜주지."
"연장이요……?"
"네 목숨은 이제 내게 속해져있다. 네게 죽음이 가까워졌을때 내가 거두러갈테니 기다려라."
그리곤 차가운 장갑으로 미정의 목에 스윽하고 손을 댄 네크로맨서 비스에게 미정이 말했다.
"저, 저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연장이라니…?"
"철없을 시절에 한 무모한 행동을 한번정도는 눈감아 주는 것일뿐이다. 다음은 없다."
"그런 일 없도록…하겠습니다……."
"이래서야 한국전쟁때와 달라진게 없군."
그리고 비스가 미정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애들을 전장에 보내는 짓은 그만하라고 전해라. 그때처럼 나라가 위험한 상황도 아니니까."
"……."
뭔가 궁금했지만 자신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앞에서 괜한 질문을 하고 싶진 않은 미정을 두고 네크로맨서 비스가 뒤돌아 다시 안개속으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고 천천히 군화소리만이 세찬 빗줄기 속에서도 묵직하게 울려퍼지며 작아질 뿐이었다.
그리고 미정의 두눈에는 총기를 겨눈채 공터에 엎드려있던 다른 몇몇의 실루엣들이 한둘씩 일어나 비스가 사라진 방향으로 군화소리를 내며 저벅저벅 움직이는 것만이 보였다. 그들이 그곳에 매복하고 있었다는 것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던 미정은 속으로만 깜짝 놀란채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잠시후 발밑의 술식이 옅어지며 없어지자 그녀는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거꾸러뜨린채 땅바닥을 쳐다봤다.
이제는 민가가 아닌 알수없는 장소의 안개 속을 산개대형으로 퍼진 분대급 병력의 중간에서 네크로맨서 비스가 걷고 있었고 그 옆으로 방독면을 쓴채 커다란 통신기를 짊어진 통신병이 와서 말했다.
『마스터, 살려둬도 괜찮겠습니까?』
"왜 여군이라도 새로 들여오고 싶은건가?"
『잘아시지 않습니까.』
"걱정마라. 자기 목숨을 걸고도 입을 안여는 자는 믿을만하다. 만약 내 생각이 틀렸다면 조만간 신병 하나가 더 늘어나겠지."
그 말을 뒤로하고 네크로맨서 비스와 장병들이 조용히 움직일때 미정은 부들거리는 다리로 천천히 사무실을 향해 비를 맞으며 걸어가기 시작했고 정처없이 걷던 그녀가 사무실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때 안에 김 담당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마. 진짜 죽은 거에요?"
그렇다고 하기엔 사무실은 어떤 저항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었다. 미정이 일단 다른 방도 확인해보려고 할때야 인기척을 느낀 김 담당관이 인형의 방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나왔다.
"엇, 미정아 지금 이시간에 왜 벌써 온거야?"
"……."
"뭐니 그 표정은?"
뭔가 엄청 복합적인 표정을 지은 미정은 목끝까지 올라온 말을 그냥 꿀꺽 삼켜버리곤 대답했다.
"살아계셔서 다행이네요. 오늘은 쉽니다."
"그게 무슨 소리니? 근무시간이잖아. 나랏돈 받는 사람이 그렇게 마음대로 편하게 돈받으면 안되는 거야."
"시끄러워요. 오늘은 건들이지 마세요."
"평점 긋는다."
"긋던 찢던 알아서 하세요. 대신 경호담당으로서 김 담당관님과 통신이 되지않아 불가피하게 독단으로 복귀 했다는거 정도 밑에 각주로 필히 달아주시죠. 오늘은 그저 숨쉬는 기쁨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불 속에서 하루종일 느끼고 싶으니까."
표정이나 눈동자, 말투가 평소와 확연히 다른 미정을 바라보며 김 담당관이 흘러내린 안경을 한손으로 밀어올려 원위치 시키며 물었다.
"무슨 일 있니."
"아니요."
"나한텐 말해도 괜찮아 미정아."
"절대 안괜찮을걸요."
그리고 자신의 방문을 연 미정이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개를 조금만 돌린채 원망어린 눈으로 김에게 말했다.
"통신 유지나 철저히 해주세요."
"아, 그건 일이 좀 있었어."
"물어봐도 어떤 일인지 말도 안해주실거고, 지금은 그냥 쉬고 싶으니까 적절한 대답 나중에 기대할게요. 대신 앞으론 김 담당관님 경호를 우선시, 증원이 올때까진 절대로 저 혼자 나가는 일은 없도록 할겁니다."
미정이는 방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장르: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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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네크로맨서 비스씨."
나마루 켄지가 복도에서 비스를 부르자, 복도 중앙에 서 있던 비스가 뒤돌아 보았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오히려 보답해드려야 하는건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히고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사라졌다."
"네? 히고가요?"
"그래, 다시 찾아야해."
비스가 장교모를 머리 위에 쓰며 조금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고 켄지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초콜렛 챙기는건 잊지 않으셨죠? 2개에요. 2개."
"정신 나간채로 잡히면 강제로 주입해버릴거니까 걱정마라."
"주입이라니…뭐에요 그거 괜히 무섭게…."
"기밀이다."
"…네."
그렇게 한 병사가 열어준 문을 지나쳐서 나가려던 비스가 밖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다시 보는 날은 없는게 좋겠군. 너를 위해서 말이야."
"짧지만 좋은 만남이었던거 같아요.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앞으로 행복하게 잘사시길 바랄게요."
"행복이라……나에겐 와닿지 않는 말이군."
뭔가 아련한 듯한 말을 중얼거린 비스는 선글라스 너머의 시선으로 켄지를 슬쩍 쳐다본 뒤에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고 그들 모두가 밖으로 나갔을때 켄지는 그제서야 고개를 갸웃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저런 복장으로 밖에 돌아다니면 안좋을텐데……뭐 그런거까지 신경쓸 분들이 아닌가."
그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봉인된 양피지를 꺼내서 살펴볼때, 미정은 켄지의 집에서 나오는 네크로맨서 비스와 장병들을 보곤 기겁을 하며 김 담당관에게 연락을 넣었다.
"와씨?! 저건 또 뭐하는 것들이야? 담당관님? 지금 아주 그냥 저냥 모냥 대박사건 터졌어요."
하지만 담당관에게서 응답이 오지 않았다.
"김 담당관님?"
여전히 대답이 없다.
"김 담당관님? 뭐하세요? 지금 진짜 중요한 상황인데."
여전히 대답이 없는 가운데 비스와 장병들이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서 시야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했고 다시 비가 조금씩 강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아씨 비 또 오네. 지금 살아있어요? 설마 암살 당해서 피투성이 상태로 사무실 의자에 고꾸라져 있다던가 그런거 아니죠? 그런거면 경호담당인 제 입장이 엄청나게 무지막지 난처해지니까 장난치지말고 빨리 응답하세요."
그러나 담당관의 대답은 없었다. 이젠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네크로맨서 비스 무리들을 떠올려 본 미정은 그들이 도대체 어떤 존재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켄지네 집에서 나온것이라면 분명 어떤 일과 관련이 있을거라는 직감에 맡기고 그들의 뒤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다만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일 권한은 담당관의 신변에 위험이 있을때만 제한적으로 가능했기에 몇분 정도 계속 연결을 시도해보았고 더 이상은 못참겠다는 듯이 말했다.
"김 담당관님, 듣던말던 말하는건데 말이죠. 지금 포스 있는 검은 코트여자와 이상한 무장단체를 뒤쫓을 겁니다. 근무평가에 확실히 SSS급으로 도장 콱 찍어주세요."
이젠 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다못해 안개까지 끼어가는 와중에 미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한발자국을 떼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린 그녀는 어느 공터가 보이는 길 중간에서 마치 달리다가 멈춰버린 영화필름처럼 한발을 땅에 내딪은 채로 가만히 굳어서 나타났다. 다만 그녀의 발밑에 옅은 술식 같은것이 새겨져 있을뿐.
"……."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눈만 움직일뿐.
세차게 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녀의 옆 공터의 길쪽 안개 속에서 묵직한 군화소리가 그녀를 향해 조금씩 커져가기 시작했다.
"……."
필사적으로 눈을 옆으로 돌린 그녀의 시야엔 안개 속에서 검은 존재의 무언가가 조금씩 진해지며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것 정도였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녀가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기에 심장만이 미친듯이 뛰고 있을 뿐이었다.
곧 그 군화소리의 주인이 굳어버린 미정의 옆에 가만히 서서 입을 열었다.
"넌 누구지."
"……."
"대답해라."
그제야 입이 열린 미정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는…그, 그러니까……그게……."
너무 떨려서 제대로 말도 못하는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는 네크로맨서 비스에게 미정은 입을 악물고 대답했다.
"미, 미정이라고 합니다."
"넌 내가 누군지 알고 뒤를 쫓은건가?"
"아, 아니요. 저, 저…전혀 몰랐습니다."
"소속과 본명, 이곳에서의 목적을 말해라."
"……."
임무상 보안사항도 있었기에 미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대, 대한민국 국적에 이름은 한미정입…니다만 더 이상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미정의 관자놀이에 차가운 총구가 살며시 닿아왔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뭔지 알아챈 미정은 입술까지 파르르 떨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그녀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댄 비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소속된 곳과 목적을 말해라."
"…진짜……진짜 딴건 모르겠는데……저, 그, 그건…말못해요……진짜 부탁…드려요. 제가 잘못했어요…."
"한번만 더 기회를 주겠다. 소속과 목적을 말하던가 여기서 죽던가 선택은 간단하다."
"위, 위험한 사람들인가 싶어서…따라왔던 거에요…. 막 이상한…그러니까 공격할 의도 그런건 전혀…없었어요…그러니까…!!"
거의 울먹이며 말하는 미정을 선글라스속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본 비스가 물었다.
"눈물은 있는대로 흘리면서도 나오는 충성심이라, 국가에 대한 충성인가?"
"…이 바닥에서 지킬걸 못지키면…어, 어차피…언젠가 시체가 되서 나뒹굴거니까……."
그말을 들은 비스는 씨익 싸늘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권총을 다시 권총집에 집어넣고는 말했다.
"나에 대하여 모든 발설을 금한다. 이것만 지킨다면 목숨을 연장시켜주지."
"연장이요……?"
"네 목숨은 이제 내게 속해져있다. 네게 죽음이 가까워졌을때 내가 거두러갈테니 기다려라."
그리곤 차가운 장갑으로 미정의 목에 스윽하고 손을 댄 네크로맨서 비스에게 미정이 말했다.
"저, 저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연장이라니…?"
"철없을 시절에 한 무모한 행동을 한번정도는 눈감아 주는 것일뿐이다. 다음은 없다."
"그런 일 없도록…하겠습니다……."
"이래서야 한국전쟁때와 달라진게 없군."
그리고 비스가 미정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애들을 전장에 보내는 짓은 그만하라고 전해라. 그때처럼 나라가 위험한 상황도 아니니까."
"……."
뭔가 궁금했지만 자신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앞에서 괜한 질문을 하고 싶진 않은 미정을 두고 네크로맨서 비스가 뒤돌아 다시 안개속으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고 천천히 군화소리만이 세찬 빗줄기 속에서도 묵직하게 울려퍼지며 작아질 뿐이었다.
그리고 미정의 두눈에는 총기를 겨눈채 공터에 엎드려있던 다른 몇몇의 실루엣들이 한둘씩 일어나 비스가 사라진 방향으로 군화소리를 내며 저벅저벅 움직이는 것만이 보였다. 그들이 그곳에 매복하고 있었다는 것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던 미정은 속으로만 깜짝 놀란채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잠시후 발밑의 술식이 옅어지며 없어지자 그녀는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거꾸러뜨린채 땅바닥을 쳐다봤다.
이제는 민가가 아닌 알수없는 장소의 안개 속을 산개대형으로 퍼진 분대급 병력의 중간에서 네크로맨서 비스가 걷고 있었고 그 옆으로 방독면을 쓴채 커다란 통신기를 짊어진 통신병이 와서 말했다.
『마스터, 살려둬도 괜찮겠습니까?』
"왜 여군이라도 새로 들여오고 싶은건가?"
『잘아시지 않습니까.』
"걱정마라. 자기 목숨을 걸고도 입을 안여는 자는 믿을만하다. 만약 내 생각이 틀렸다면 조만간 신병 하나가 더 늘어나겠지."
그 말을 뒤로하고 네크로맨서 비스와 장병들이 조용히 움직일때 미정은 부들거리는 다리로 천천히 사무실을 향해 비를 맞으며 걸어가기 시작했고 정처없이 걷던 그녀가 사무실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때 안에 김 담당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마. 진짜 죽은 거에요?"
그렇다고 하기엔 사무실은 어떤 저항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었다. 미정이 일단 다른 방도 확인해보려고 할때야 인기척을 느낀 김 담당관이 인형의 방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나왔다.
"엇, 미정아 지금 이시간에 왜 벌써 온거야?"
"……."
"뭐니 그 표정은?"
뭔가 엄청 복합적인 표정을 지은 미정은 목끝까지 올라온 말을 그냥 꿀꺽 삼켜버리곤 대답했다.
"살아계셔서 다행이네요. 오늘은 쉽니다."
"그게 무슨 소리니? 근무시간이잖아. 나랏돈 받는 사람이 그렇게 마음대로 편하게 돈받으면 안되는 거야."
"시끄러워요. 오늘은 건들이지 마세요."
"평점 긋는다."
"긋던 찢던 알아서 하세요. 대신 경호담당으로서 김 담당관님과 통신이 되지않아 불가피하게 독단으로 복귀 했다는거 정도 밑에 각주로 필히 달아주시죠. 오늘은 그저 숨쉬는 기쁨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불 속에서 하루종일 느끼고 싶으니까."
표정이나 눈동자, 말투가 평소와 확연히 다른 미정을 바라보며 김 담당관이 흘러내린 안경을 한손으로 밀어올려 원위치 시키며 물었다.
"무슨 일 있니."
"아니요."
"나한텐 말해도 괜찮아 미정아."
"절대 안괜찮을걸요."
그리고 자신의 방문을 연 미정이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개를 조금만 돌린채 원망어린 눈으로 김에게 말했다.
"통신 유지나 철저히 해주세요."
"아, 그건 일이 좀 있었어."
"물어봐도 어떤 일인지 말도 안해주실거고, 지금은 그냥 쉬고 싶으니까 적절한 대답 나중에 기대할게요. 대신 앞으론 김 담당관님 경호를 우선시, 증원이 올때까진 절대로 저 혼자 나가는 일은 없도록 할겁니다."
미정이는 방안으로 들어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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