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 - 몽환의 협곡 - 47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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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마루 켄지는 자신의 방안에서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일단 확인 해보는거야."
카메라의 모드를 동영상 촬영모드로 바꾼 켄지는 츠이시 요이가 잠시 방안에서 나갈때를 기다렸고, 그녀가 휠체어를 탄채 방을 나왔을때 재빠르고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가서 요이가 침대가 잘보일만한 각도의 책장에 카메라를 올려두고 화면을 확인하곤 얼른 렌즈 주변을 인형따위로 가려버리고 방에서 나갔다.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거긴했지만 네크로맨서의 조언을 마냥 무시할수도 없었다. 정말로 요이가 죽어간다면, 그리고 그 원인이 몽환술사라면 반드시 그것을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요이의 체력을 걱정하며 몽환의 협곡에 가길 만류하는 모습도 있었기에 몽환술사를 그저 의심도 할수 없는 상황인 만큼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잠시 후 몽환술사가 도착했을때 켄지는 그녀를 맞이하고 요이의 방으로 안내하면서 말했다.
"저기, 몽환술사씨. 오늘은 제가 요이의 곁에 있어도 될까요?"
그래도 허락받고 지켜보는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 만큼 물어본 켄지였지만 몽환술사의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아니요. 정신적으로 집중을 요하는 중요한 일인 만큼 주변엔 아무도 있어선 안됩니다. 나마루씨가 생각해보세요 자기가 몽환의 협곡에 있을때 다른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편히 있을 수 있겠어요?"
"하하…알겠습니다."
단념한 켄지는 어쩔수없다는 듯이 물러났고 곧 요이와 몽환술사가 꿈속으로 들어가는 동안 자신의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몽환의 협곡 속에선 츠이시 요이가 기억의 파편 속에서 계속해서 안즈를 구하기 위해 그때의 그 장소로 갔다. 이미 수십번도 넘게 죽었다. 계속된 실패속에서 좌절도 해보고 분노도 해봤지만, 결국은 안즈를 구하겠단 요이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쏟아지고 몸이 뚫리고 녹아내리고 으스러지는 와중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갇혀있듯이 죽음과 죽음 사이에서 조금씩 코우사카 안즈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번 죽었다가 다시 나설때마다 전보다 수십의 요괴들이 쓰러져갔다. 어둡고 차가운 기억의 조각들 안에서 무장도 제대로 못한 그녀, 피투성이에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요이의 왼팔을 물어뜯고 있는 인간 얼굴을 한 거대한 개 요괴의 목에 대검이 내리 꽂혀있었고 곧 그 요괴가 쓰러졌을때 요이는 못쓰게 될정도로 찢겨나간 손과 겨우 붙어있는 손가락들을 익숙하다는 듯이 입속에서 빼내었다.
오른쪽 눈은 이미 찢기고 파열되었고 왼눈에도 피가 잔뜩 고인채 흘러나오는 요이는 주위의 수십, 더 멀리는 수백구의 요괴들 시체 중간에서 오직 한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착…했어."
그곳엔 구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때 만든 지하벙커의 해치가 굳게 닫혀있었다.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인 그녀가 다가가 대검집에 대검을 꽂아넣은 후에 오른손으로 힘겹게 그것을 열어서 안을 바라보았을때, 그 사다리 아래에는 이미 머리가 찢겨나간채 퍼질러져있는 안즈의 시체와 액정이 금이간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이 있었다.
"……늦었나."
요이가 지친듯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을때 그녀의 옆에는 멀쩡한 안즈가 팔짱을 낀채 나무에 기대어 있었다.
"이야~ 감동이야 감동! 우리의 츠이시 요이가 드디어 여기까지 왔네."
"안즈?"
"어, 그래 나 안즈야. 물론 저 밑에 처 뒤져서 널부러져있는것도 나고."
"역시…언젠가 나타날거라 생각했어."
"그래그래, 너의 빌어먹을 기억 속에서 널믿고 뒤진 멍청한 안즈말고 이 진짜 안즈가 나타날걸 예상했다는거지?"
"응…너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오? 어떻게 알았어?"
요이가 충혈된 눈으로 힘겹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보우건…이 5연발만 됐을때, 처음엔 몰랐지만 나중에야 알았어 너가 꿈속의 보우건을 5연발로 만들었다는걸 말이야."
"호오?"
"물론 몇년전에 내가 너랑 현실에서 쫓길무렵 쓴 보우건은 5연발이 맞아. 하지만 지금 이곳은 내 꿈속이잖아. 내가 6연발이 익숙해서 6연발 보우건인줄 정말로 착각하고 있었다면 내 꿈속에선 설령 그것이 5연발 보우건 같이 생겼었어도 6연발로 나갔어야했어. 하지만 5발 밖에 화살이 나가지 않았고 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지. 그러니까…넌 내가 널 구하려고 하는걸 계속 지켜보며 편하게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했던거야. 그리고 그게 곧 언젠가 진짜 너를 만날수 있을거라는 나의 확신이 되었어."
"제법인걸. 덕분에 너 죽는거 구경하는것만 해도 개꿀잼이었다야. 살아있었으면 폰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을건데 아쉬워라~"
요이는 안즈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아 찢겨진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채 피와 섞인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미안해…정말 미안해 코우사카……내가 그때 잘못했어. 지켜준다고 약속했으면서 순간의 살고싶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달리고 있었어. 나 너무 무서웠어…정말로 무서웠어……. 그래도 널 지키려고 했었어야 했던건데……비겁하게 살아남아서 몇년이나 더 살았어 지금까지."
그말을 듣는 안즈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계속 말해봐."
"널 버리고 살아남은 주제에 남자랑 약혼이나하고 행복해지려고 했어…그 죄책감을……잊고 싶었는데 잊으려고 했는데……일기장에 떨리는 손으로 한글자 한글자 쓰던게 계속 생각나. 어쩔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려고 했지만……나 너가 죽어서 남겨진 시체 봐버려서……네 모습이 계속……떠올랐어. 정말 미안해……그동안 많이 아팠지? 외로웠지? 괴로웠지?"
"……."
감정따윈 안보이는 차가운 얼굴의 안즈가 다친 왼손을 감싸고 있는 요이의 어깨를 발로 툭하고 차며 말했다.
"왼손 좀 찢어진거 가지고 엄살 그만부려. 난 대가리가 뜯겨나갔으니까."
"미, 미안해…안즈……."
"그러니까 넌 지난 몇년간은 그 죄책감을 덮어두고 잘~살다가 네 영혼이 죽어가고 육체가 힘들어졌을때가 되서야 지금 나한테 용서를 빌고 있는거잖아? 그런거 X발 하나도 안반갑거든."
"안즈……."
"역겨우니까 친한 친구 부르듯이 그만 좀 불러줄래 X년아. 이제와서 갑자기 왜 존나 착한척 하는데? 난 제일 이해가 안되는게 너 때문에 죽은게 나만 있는게 아닌데 넌 지금 나한테만 미안해 하잖아. 니가 살고 싶어서 버리고 간 친구니까 난 죄책감이 들고 니 옆에 있다가 뒤진 다른 년들은 불쌍하지도 않냐?"
"물론 그 친구들한테도 미안해…하지만……."
"그럼, 다시한번 잘봐봐. 니 때문에 죽은 친구들을."
안즈의 입술이 굳게 닫히는 순간, 주변의 환경이 뒤틀리듯 바뀌어 화창한 낮이 되고 나무들도 그리 크지않은 숲이 펼쳐진 가운데 유치원생쯤 되어보이는 츠이시 요이가 후줄근한 전투복에 전투모를 쓰고 숲속에 서있었다. 어린 츠이시 요이는 아주 잠깐 혼자서만 숲속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작은 덤불을 지났을때 인형들을 놔두고 흙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는 작은 소녀가 보였다.
첫번째 친구.
그 작은 여자아이는 단발에 체리모양으로 양갈래를 하고 유치원생 가방과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자신의 위장무늬 전투복보다 너무나도 예쁜 옷을 입은 존재에게 어린 요이는 자신도 모르게 다가갔고 그렇게 두 소녀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넌 누구야?"
유치원생 여자애가 물어보았다.
"나, 나?"
당황한 요이가 깜짝 놀라며 대답하자 유치원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응, 너 군인아저씨들 입는 옷 입고있네. 아빠가 군인이야?"
"아, 아니……그냥 항상 입는 옷이라서."
"에? 정말로? 유치원에 갈때도 그런 옷 입는거야?"
"유치원이 뭐야?"
"에에에? 너 바보구나."
"나 바보 아니야."
"유치원도 모르면 바보지."
"나 바보 아니야! 잘하는거 있어!"
"어떤거? 더하기 빼기 잘해?"
뾰루퉁 해진 어린 요이는 허리춤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 휘둘러 옆에 있던 덤불을 순식간에 베어버렸고 그것을 본 아이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우와! 멋지다. 너 텔레비에 나오는 무사 아저씨같아!"
"자, 바보 아니지? 그럼 유치원이 뭔지 알려줘."
"그냥 친구들이 많은 곳. 근데 가끔은 싫어서 이렇게 안가곤해.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산속에 와서 숲속 요정님들 불러서 같이 노는거야. 그러다 저번에 엄마한테 혼났지만 괜찮아."
"친구들이 많은 곳에 왜 안가?"
"나, 난 특별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오늘은 요정님들 대신 널 만났잖아. 이름이 뭐니? 난 하나미야."
"난 요이. 츠이시 요이…."
그렇게 친구가 된 둘은 가끔씩 만나며 같이 소꿉놀이도하고 인형놀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한번은 하나미가 요이에게 자기 유치원에 한번 오라고 했지만 갈수가 없는 요이가 거절도 하는등 그들의 사이는 점점 돈독해져갔다.
어느날 요이가 하나미의 잘린 팔다리와 남겨진 핏자국을 보기전까진.
"……."
당혹감에 굳어버린 어린 요이의 앞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들어낸 일본원숭이 같이 생긴 요괴가 잘려나간 팔다리와 피에 절은 인형을 밟고 서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말도 못하고 서있는 요이에게 그 요괴가 달려들었을때 요이는 덮쳐지는 동시에 단검을 목에 찔러넣었고 곧 몸을 부들거리며 고꾸라진 요괴를 뒤로한채 터덜터덜 걸어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등산복을 입은 젊은 모습의 요이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온 요이를 보곤 깜짝 놀라며 외쳤다.
"요이! 괜찮니? 이녀석 어딜 말도 없이 갔다온거니. 걱정되서 찾으러 갈려던 참이었는데…어디 다치진 않았어?"
"네 아빠…나 괜찮아요. 근데……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해줘야해?"
"……보통은 땅에 묻어준단다."
"나 잠시만 다녀올게."
"또 어딜가려고 그러니? 너에겐 츠이시 가문의 저주가 있어서 주변에 항상 요괴들이 나타나는거 잘알잖니. 넌 마음대로 돌아다니면 안된단다."
"……."
그말에 요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럼, 나 때문에 죽은거야?"
"그게 무슨 말이니?"
"하나미…내 저주 때문에 죽은거야?"
크게 울음을 터뜨리며 서 있는 요이를 아버지가 씁쓸한 표정으로 안아들어서 달래주는 모습이 한 파편속에 담겨져서 날아갔고 다른 친구들의 죽음의 파편들도 스쳐지나가는 와중에 츠이시 요이가 바닥에 엎드린채 온몸을 떨며 말했다.
"부탁이야…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그 모습을 머리가 찢겨져 나간 안즈의 손에 들린 핸드폰의 액정화면속 안즈가 능글맞게 웃으며 지켜보며 대답했다.
『두눈 뜨고 똑바로 봐. 이제 겨우 시작이니까.』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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