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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 - 몽환의 협곡 - 26

레이븐울프 2017. 9. 23. 02:38

혼(魂) - 몽환의 협곡 - 26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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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환의 협곡속에 있는 켄지의 내면은 정말로 별거 없어 보였다. 지옥 같은 풍경 위에 성채로 존재했던 츠이시 요이에 비해 그저 평범한 아파트의 특정 호실만 뚝 떼어져서 이슬비가 내리는 언덕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듯한 모습으로 규모가 거대하지도 않았고 들어가는 것이 크게 힘들지도 않았다. 물론 입구는 튼튼한 철제문으로 되어있었지만 요이의 내면과는 달리 몽환술사는 자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상태였기에 어렵지 않게 들어갔었고 일반 가정집과 같은 안의 서랍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던중 그녀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거실에 있는 액자에는 어둠이 드리워져있는 켄지의 부모님 빛바랜 사진액자와 환하게 웃고 있는 나마루 레나의 깨끗한 독사진 액자가 있었고 그 주변으로 이리 세이키, 코토 미요, 이름 모를 남자 친구들의 사진들 등 켄지의 지인들 사진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는데 켄지의 일상과 가깝고 비중과 친분이 높을 수록 액자의 크기가 매우 컸고 별로 잘모르는 사람들의 액자들은 크기가 작거나 상자 속에 들어가있거나 구석진 곳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아예 액자가 깨져버린채 쓰레기통에 박혀있는 사람들의 사진들도 있는 와중에 츠이시 요이의 액자만은 거실의 탁자 위에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요이 말고는 어차피 알지도 못하는 몽환술사는 일어서서 경찰용 출입금지 테이프와 라인이 덕지덕지 발라진 문을 슬쩍 봤다가 켄지의 방으로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문을 열어서 안을 내다봤을때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방안과 다르게 이상할 만큼 깨끗하게

정리된 책상이 있었다.



  "흠~ 저런 이상형인가."



  또한 침대 위에는 명확하진 않지만 켄지의 취향이 다소 반영되어 보이는 갈색 투 사이드 업(two-side up) 헤어스타일에 상당히 볼륨있는 몸매, 교복 느낌의 복장이지만 새하얀 블라우스 안에 검은색 탱크탑을 입었고 상아책 무릎부츠를 신은 여성의 마네킹이 다소곳하게 앉아있었다.


  꼭 요이와 세이키의 모습을 합쳐둔 듯한 여성이었지만 몽환술사는 그것을 무시하고 켄지의 책장에 가서 묵직한 앨범을 꺼내 펼쳐보았다. 켄지의 시야에서 봐온 여러 기억들이 사진속에서 동영상과 같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몽환술사는 자신의 모습을 앨범 안에서 보곤 피식 웃고는 과거 페이지들을 보려고 했으나 자신이 존재하는 사진 외에는 모두 잠금이 걸린듯 자물쇠가 나타난 검은 필름들만 붙어있었다.



  "이정도야 뭐, 당연히 나와 관련된 기억 외에는 내게 알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겠지."



  몽환술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이리저리 페이지를 넘기던중 오래되지 않은 기한 내에 몇개의 페이지가 아예 절단되듯이 깔끔하게 사라진 부분을 보았다.



  "기억상실인가…좀 다른거 같은데."



  사진만 떨어져 나간것도, 훼손된 것도 아니며 페이지가 찢겨나간것도 아닌 깔끔하게 절단된 것을 보곤 몽환술사가 표정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거…무슨 계약이라도 한건가. 누군가 아예 가져가 버렸잖아."



  요이와 켄지가 폐쇄된 교회의 호수에서 했던 저주 관련 의식과 매몰의 숲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모르는 몽환술사는 급히 집의 현관으로 가서 공중에 둥둥 떠있는 방명록을 펼쳐보았다.



  "생각보다…복잡한 녀석이었네."



  방명록 조차도 일부 페이지가 아예 절단 되어있었고 그 이전의 페이지들은 모두 잠금이 걸려서 지금은 열람을 할수 없는 상태였다. 다만 가장 최근에 적힌 이름으로는 서예로 쓰듯 '츠이시 케이미츠'라는 여성의 이름과 그밑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알수없는 러시아어 이름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카이 미츠의 동생으로 더럽혀진 성역, 츠이시 가문의 지하에서 켄지를 한번 홀린 적이 있었던 여성이었으나 그것을 알리가 없는 몽환술사는 의문을 표했지만 그보다도 검은 연기가 조금씩 피어오르는 러시아어 이름에 더 불길함을 느꼈다.



  "…이녀석의 정수를 빨리 조사해봐야겠는데."



  몽환술사는 한눈에봐도 중요해보이는, 경찰용 출입금지 테이프가 발라진 방문앞에 섰고 그것을 강제로 다 뜯어낸뒤 문을 열려고 할때 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몽환술사님. 이거 제 능력치 좀 더 낮춰주실래요?』


  "더 낮춰드려요? 점점 힘들어질건데."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서, 마지막엔 정말 순수한 제 힘만으로 저 빌어먹을 말괴물을 죽여볼거에요.』


  "그러다가 꿈속에서 죽으면 몽환의 협곡으로 튕겨져 나옵니다."


  『꼭 튕겨져 나오나요?』


  "뭐, 자신의 죽음, 혹은 죽기 직전의 극단적 상황에서도 맨정신을 유지하고 꿈이 꿈임을 무의식의 단계에서 인식한 경지라면 알람시계라던가 현실의 방해가 있거나해서 신체가 잠에서 깨지 않는 이상 당신을 자각몽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 경지는 무리겠죠…?』


  "그정도면 저한테 부탁할 것도 없이 자각몽 세계내에서 나마루씨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할수있습니다. 지금은 당연히 무리죠."


  『네, 그럼 원래의 저보다 조금만 더 강한 정도로 해주세요.』


  "굳이 스스로를 현실에 가까운 힘든 상황에 내모는 이유는, 그때 그 상황에서 자신이 조금만 더 잘했다면 그 사람을 구했을 수도 있었다는 후회감을 느끼기 위해서 입니까?"


  『…그런 걸지도 모르죠.』



  꿈속, 가옥의 지하에서 방금 또 쓰러뜨린 말괴물과 멀쩡하게 옆에 서있는 아즈미를 바라보며 켄지가 말했다.



  "그때 제가 바보같이 겁에 질리거나 어쩔줄 몰라하지만 않았다면, 같은 상황 같은 조건에서 다른 선택과 정신머리를 가짐으로서 내 앞에 이 사람이 나 대신 안죽어도 됐었을까 하는 의문을 해결하고 싶었어요. 절대로 현실에서는 해보지 못할 것이잖아요."



  켄지 옆의 공중에 떠있는 몽환술사 모습의 가짜가 답했다.



  "좋아요. 좀 더 약화시켜드리죠. 대신 명심하세요, 여기에서는 당신이 무리해도 자신이 안죽는 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무모해질수 있는 겁니다. 현실이라면 당신은 자신의 몸을 사릴수 밖에 없어요."


  "알고있어요. 그래도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그때 내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면, 또는 제정신 차리고 냉정하고 침착하게 싸웠다면 결과가 어땠을지."


  "좋습니다."



  몽환의 협곡 안의 몽환술사가 방문을 열며 답하곤 켄지와의 대화를 끊었고 그녀의 눈앞에 덩그러니 놓여져있는 금고를 보았다. 그 방안에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벽지도 가구도 전등도 없이 어둠 속엔 오직 1m크기의 정육면체 철제 금고만이 놓여져있었다.



  "분명 저 안에 정수가 있겠지. 거기에만 도달하면 모든 문제도 의문도 해결될거니까…후! 힘 좀 써보자고."



  몽환술사는 금고 앞에 앉아 자신의 정신을 집중해 잠금을 해제하기 시작했다.



  끼리리리리릭 철컥-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금고가 열리기 시작했고 몽환술사는 기대에 차서 안을 봤으나 안에는 다른 금고가 하나 더 있었다.



  "X발 장난치나…."



  잠시 짜증을 낸 몽환술사는 그 다음 금고를 열려고 했으나 잠금장치가 뻑뻑하게 겨우 돌아가나 싶다가 멈춰버렸기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난 계약자로서 잠금을 해제할 자격이 있다. 열려라."



  조금 잠금장치가 더 돌아가나 싶었는데 또 멈춰버리자 몽환술사는 할수없이 하얀 실로 금고의 손잡이를 휘감고 다시 말했다.



  "실에 묶여 맺어진 계약으로 내면을 비틀겠다."



  잠금장치 자체가 강하게 비틀리더니 뜯겨져나가버렸고 몽환술사는 금고 문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작은 금고가 하나 더 있었기에 몽환술사가 매우 빡친 표정을 지으려다가 문득 작은 금고의 주변에 손으로 쓸듯이 묻어있는 핏자국들을 보았다.



  "뭐야……."



  그리고 작은 금고의 손잡이나 이곳저곳에도 피묻은 손으로 만진 듯한 흔적들이 남아있었는데 그것은 무언의 경고와도 같은 의미로 몽환술사에게 다가왔다.



  "…나마루 켄지…도대체……이 사람 뭐야."



  일반적인 사람들의 내면에선 본적도 없는 희안한 상황 속에서 몽환술사가 침을 한번 삼키고 피가 묻어있는 금고의 손잡이에 손을 대는 순간, 뭔가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몽환술사가 재빨리 반응하려고 할때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몽환의 협곡이 뒤흔들렸다.



  "하아하아…뭐지?"



  그때 꿈속에서 한참을 말괴물과 싸우던 켄지는 한손에는 도를 들고 다른 손에 카메라를 든채 이유모를 진동에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 말괴물의 주먹에 맞아 저 멀리 날아갔다.



  "으앗!? 젠장!!"



  다만 그가 벽에 부딪치는 순간 원래처럼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벽 자체가 부숴지며 동시에 가옥의 지하 전체가 일그러지며 말괴물도, 아즈미 아스카도 산산조각 나버렸다.



  "미친?! 이게 뭐야!!"



  시꺼먼 허공에서 산산조각 나는 꿈속을 바라보며 당황한 켄지는 몽환술사를 찾았으나 몽환술사의 대답은 없었고 허우적 거리던 켄지는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눈을 떴는데 그곳은 자신의 방, 침대 위였다.



  "아…머리야.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켄지는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는데 몽환술사는 보이지 않았기에 약간의 의문을 가진 그가 지끈 거리는 머리에 한손을 얹은채 시계를 보았는데 아직 이른 새벽인 수준이었다.



  "하암~ 몽환술사 이 분은 말도 없이 가버리셨네. 요이나 잘자는지 확인해보고 계속 자야겠다."



  그리고 방문을 열었을때, 그의 눈앞에는 어둠이 깔린 학교의 복도가 펼쳐져 있었다.



  "……."



  잠시 당황한 켄지는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방안이 보인다.


  앞을 보았다.


  학교의 복도가 보인다.



  켄지는 고개를 흔들며 방문을 다시 닫았다.



  "잠이 덜깼나 헛게 보이네."



  그리고 다시 방문을 열었을때 여전히 학교의 복도가 보였을때 켄지는 자신이 방금 한말을 그대로 이해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진짜로 잠이 덜깬거야. 여긴 아직 꿈속이잖아."



  그의 혼잣말이 끝날무렵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여학생의 실루엣이 보였고 그 여학생은 켄지쪽으로 걸어오나 싶더니 잠시후 멈춰서 켄지를 슬쩍 쳐다본 뒤에 동아리실 문을 열고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그 익숙한 실루엣을 본 켄지가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가며 말했다.



  "코토…미요?"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