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 - 몽환의 협곡 - 38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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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세요……."
"……."
"있는거 알고 있으니까."
검은 눈물을 흘리며 츠이시 요이의 눈이 전화박스 밖을 향했을때 몽환술사가 허공에서 반투명하게 조금씩 모습을 확실하게 나타내더니 말했다.
"언제부터 자각몽으로 바뀐거죠?"
"전에 몽환의 협곡에서 꿈을 꾸다가 자각을 한적이 있어요. 그 이후론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꿈으로 꾸는것도 힘든거 같네요."
"……."
몽환의 협곡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스스로 자각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었기에 몽환술사가 조금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럼 방금 전까지 제게 보여준건 전부 연기였나요?"
"뭐 잊을만 하면 꾸던 꿈이었으니 자연스럽게 행동했어요. 근데 제가 보여드린 것중 현실과 다른건 당연히 존재해요. 이런 검은 비라던가…파편들이라던가……."
요이가 몽환적인 표정으로 멍하게 자신의 주변의 유리조각 같은 기억의 조각들을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고 몽환술사가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이젠 어쩌실거죠?"
"어쩌긴요……."
요이는 여전히 검은 눈물을 흘리며 전화박스 밖의 어둠속에서 비를 맞으며 서있는 몽환술사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안즈를 구해야죠……."
요이의 힘없는 말이 끝나고 시간이 어느정도 지났을 무렵 학교내의 양호실에서 나마루 켄지가 부스스하게 눈을 떴다.
"으……."
여전히 피곤한 얼굴을 한 그가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봤을땐 이미 어둠이 깔려있었다.
"에?!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나간거야!"
깜짝 놀라며 상체를 일으킨 그는 그제야 자신이 누워있던 병상 옆에 누군가 앉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세이키?"
그의 옆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이리 세이키는 그제야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켄지군, 몸은 좀 괜찮아?"
"응 어…괜찮은데……. 저기 나 도대체 얼마나 잠든거야?"
"지금이 밤 8시니까 충분히 잔거같아."
"……말도 안돼."
그리고 양호실 내에 걸린 벽걸이 시계를 본 켄지는 그게 사실임을 확인했고 순간적으로 요이를 떠올리며 병상을 박차며 일어났다.
"나 어서 가봐야해."
"으응…시간이 늦었으니까."
세이키가 우물거리며 뭔가 말못하고 있다는 듯한 얼굴인것을 본 켄지가 말했다.
"뭐…할말이라도 있어? 그것보다 양호선생님은 어디가신거래."
"내가 남아서 같이 있겠다고 해서 퇴근하셨어."
"……그래도 되는거야? 그것보다 수위아저씨도 괜찮다고 하신거?"
"켄지군도 참…우리 동아리 활동이 야간까지 학교에 남아도 되는걸로 허락받은 유일한 부활동이잖아."
"아, 그렇지. 잠이 덜 깼나보다."
켄지는 베개에 눌린 뒷머리를 이리저리 손질하며 대답했고 그런 켄지를 보며 세이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요이가 누구야?"
"……."
순간적으로 손을 멈추고 멈칫한 켄지가 시선을 내려 앉아있는 세이키를 보았을때 그녀는 켄지가 이때동안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굳게 다문 입에 동그랗게 치켜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켄지는 처음으로 세이키에게서 섬뜩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아…그……."
뭐라 말을 하려다가 이건 잘못 대답했다간 오히려 일만 키울것 같은 느낌에 그는 조심스럽게 세이키에게 물었다.
"그 이름은 어떻게 안거야?"
"켄지군이 잠들었을때 말한 이름인데, '요이'가 성? 아니면 이름? 아니, 그냥 단어가 아니라 사람 이름인건 맞지?"
"어…그게…."
성으로 안부르고 남녀사이에 이름만으로 상대를 부른 다는 것의 의미를 넓게보든 좁게보든 설명하기 난처했기에 켄지는 다소 버벅거리며 대답했다.
"어……성인지 이름인지는 나도 잘모르겠는데, 얼마전에 알게된 전학생이야.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고 싶어하던데 그래서 그냥 기억만 해두고 있었어. 아하하…나도 모르게 잠꼬대를 했었나보네."
자신이 무슨 종류의 잠꼬대를 어떤식으로 어디까지 말을 했는지 도저히 감이 안잡히기에 특히 조심스러웠던 켄지에게 세이키가 말을 이었다.
"갈색 긴 생머리에 한쪽으로 앞머리를 넘겨서 정리한 그 전학생?"
"……."
순간적으로 표정이 완전히 굳어버린 켄지가 조용히 세이키에게 말했다.
"너 그걸 어떻게 아는거야?"
"……아, 켄지군은 기억 못하는건가. 켄지군이 기억을 상실하기전에…그 전학생이랑 셋이서 만났었어."
세이키는 카이 미츠가 요이의 모습으로 켄지에게 찾아가 세이키가 보는 앞에서 가슴으로 그를 안아줬던 장면을 똑똑히 기억하며 말했는데, 켄지의 입장에선 말그대로 처음듣는 말도안되는 상황이었기에 당황하며 외쳤다.
"말도 안돼! 내가 기억을 잃기전에 걔가 어떻게 학교로 와서 셋이서 만났다는 거야?"
"우연히 복도에서 만났었어 켄지군."
"무슨 소리야! 그건 불가능……잠깐…이거 꿈인가……."
스스로가 생각하기엔 너무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 켄지는 고개를 흔들었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나 아직 그 협곡 속에 있는 걸지도 몰라. 아직…집에 있었던 걸지도……."
몽환의 협곡속에서도 통각을 포함한 모든 감각이 느껴졌었고 켄지가 받아들이기엔 세이키가 요이의 존재를 정확히 아는거부터가 이상했기에 그는 점점 자신이 꿈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분명히 몽환술사씨가 그때 제어에 실패한거야. 그래서 난 아직도 이 빌어먹을 이상한 곳에서 제정신 못차리고 있는거고."
"켄지군……무슨 말하는거야?"
"아, 신경 쓰지마."
켄지는 눈앞의 세이키가 꿈속에 있는 가짜라고 생각하면서 머리를 톡톡 치듯 쓰다듬어 주며 말을 이었다.
"그냥 잠에서 깰때가 된거 같네."
그리고 창문가로 걸어가서 창문을 연 켄지가 창틀로 한발을 올렸을때가 세이키가 기겁을 하며 그에게 달려갔다.
"켄지군?! 무슨 짓 하는거야!!"
"별거 아니야. 참…꿈속의 세이키는 항상 날 너무 걱정해준다니깐. 또 양호실 같은 장소라니…내가 양호실에 로망이 있었나?"
중얼거리며 뛰어내리려는 켄지를 뒤에서 힘껏 잡은채 끌어당기며 막으려는 세이키가 비명지르듯이 외쳤다.
"켄지군 제발 이러지마!! 내가 미안해…! 궁금한거 안물어볼게!! 그러니까…그러니까 제발 내 앞에서 자살 같은거 하지마!!"
"아니, 세이키. 이거 꿈이야. 몽환의 협곡이라고 어떤 사람이 만든 장소라구. 정말…현실속 세이키랑 똑같이 너무 착해."
"켄지군!! 정신차려! 떨어지면 진짜로 죽거나 크게 다친단 말이야!!"
"아…그러고보니."
몽환의 협곡에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음에도 죽지는 않고 아프기만 했던걸 떠올린 켄지가 팔에서 힘을 빼자 그때를 놓치지 않고 뒤에서 껴안은채 그를 창문에서 떼어낸 세이키가 켄지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고 그녀가 아파하는 사이, 자신의 등에서 느껴진 세이키의 감촉에 켄지가 감탄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 꿈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리얼해서 위험해."
"켄지군…?"
그리고 켄지는 양호실의 비품함을 뒤지기 시작했고 아파하면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세이키가 말했다.
"켄지군 지금 뭐하는거야?"
"날카로운거 찾고있어. 확실히 깨려면 그거밖에 없는거 같아."
"뭐?!"
"칼든 코토 미요라도 밖에 안돌아다니나."
계속 중얼거리며 날붙이를 찾는 그를 세이키가 다시 다가가 한팔을 양손으로 강하게 붙잡으며 말했다.
"그만해! 제발…켄지군 정신 좀 차려! 이거 꿈 아니야. 현실이야!!"
"하, 말도 안돼. 어떻게 현실의 이리 세이키가 요이의 생긴 모습을 알겠어? 나 츠이시 가문의 가옥이라던지 괴상한 골목이라던지 이상한거 너무 많이 경험해봐서 딱 직감이 와. 있잖아 영화같은 거에서도 환상 속에 빠져서 현실로 못돌아오고 계속 꿈만 꾸는 인물들……. 그들은 자기들의 꿈이 현실인줄 착각하고 살아가는거지. 미안하지만 난 그래선 안돼. 잠에서 깨어나서 요이를 도와줘야해."
"이상한 말 그만해 제발!! 켄지군!!"
"몽환술사씨…실패할줄 몰랐는데. 하아…제발 이 협곡에서 아주 영영 빠져나가는 방법이 없는건 아니겠지……."
그러다가 제법 큰 박스용 커터칼을 찾은 켄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정도면 되겠다. 좀 아프겠지만……난 잠에서 깨야해. 어서 요이를 도와줘야해."
"제발……."
세이키는 커터칼을 든 켄지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으며 그가 자신의 목을 못찌르게 막고 있었고 켄지는 그런 세이키를 보며 말했다.
"넌…내가 현실로 못돌아가게 막는 협곡 속의 존재구나."
"무슨 소리야…?"
"미안하지만 날 방해하지마. 아무리 꿈속이고 진짜 세이키 같이 생긴 가짜라고 해도, 널 죽이고 싶진 않으니까."
"꺗?!"
켄지가 힘껏 세이키를 밀쳐냈고 그녀가 벽에 부딪쳤을때 켄지가 자신의 몸에 커터칼날을 들이대며 표정을 찡그렸다.
"아 근데…진짜 제대로된거 없나……이거면 많이 아플거 같은데."
"안돼!! 켄지군! 그만둬!!"
칼날이 켄지의 피부를 살짝 파고들었을 무렵 세이키가 온 힘을 다해 그에게 달려들었다.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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