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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 - 몽환의 협곡 - 35

레이븐울프 2017. 11. 11. 18:34

혼(魂) - 몽환의 협곡 - 35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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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실의 가장 뒷자리, 수업시간에 눈을 게슴츠레 뜨고 고개를 꾸벅거리는 나마루 켄지의 옆자리에서 이리 세이키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앞에서 포니테일에 하얀 뿔테안경을 쓴 3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여선생님이 뭐라고 하던 하염없이 졸던 켄지의 목이 완전히 아래로 숙여져서 잠들어버렸을때 세이키는 선생님 눈치를 살짝 보며 책상 아래로 손을 움직여 켄지의 허벅지를 흔들어 그를 깨웠다.



  "……."



  멍하니 고개를 다시 든 켄지는 꺼벙하게 앞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떨구었고 세이키는 조심스럽게 다시 그의 다리를 흔들었으나 켄지는 그대로 계속 잠들어 있었다.


  차마 말로 깨울 수도 없기에 다시 조금 더 강하게 흔들자 켄지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고 세이키에게 조용히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스스로 팔의 안쪽 살을 꼬집어 잠을 깨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상하게도 켄지는 다시 졸기 시작했고 세이키가 슬쩍 옆을 쳐다보았을때 켄지의 고개가 책상의 바깥쪽으로 꺾이며 몸의 중심도 넘어가려고 했고 순간적으로 세이키는 켄지의 팔을 붙잡고 자신쪽으로 당겼다. 덕분에 넘어질 위기를 넘긴 켄지였으나 그 반동으로 켄지의 고개는 세이키를 향해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계속해서 잠들어 있었다.



  "……!"



  순간 세이키는 깜짝 놀라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자신의 볼에 닿은 그의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는 남성용 샴푸의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가운데 세이키가 슬쩍 켄지를 보자, 그는 아무것도 모른채 계속 잠들어 있었다. 켄지가 무슨 병에라도 걸린것 마냥 잠에 취해있다는게 정말 이상했지만 이런 두근거리는 상황이 그녀에게 나쁘지 만은 않았고, 켄지가 학교를 며칠간 빠지면서 자리도 교실 제일 뒤로 보내져버렸기에 뒷자리에서 누가 보고 있을 걱정은 전혀 없다는 것도 위안이었다.


  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면, 켄지의 고개가 어깨에서 점점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



  점점 켄지의 고개가 앞으로 가다가 세이키의 한쪽 가슴에 뺨을 파묻나 싶더니 결국 세이키의 다리 사이에 무릎베개를 하듯이 되어버렸을때 세이키의 심장박동 수는 거의 한계치를 향해 치솟고 있었다.



  "하아……."



  숨도 가빠졌기에 그녀는 아주 조용하게 가쁜 숨을 한번 내쉬었고 고개를 살짝 숙여 자신의 다리 위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사랑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한편으론 정말 난처했고 어쩔줄 모를 상황이기도 했지만, 오랜 짝사랑 끝에 단시간 안에 느낄 수 있었던 스킨쉽에서 느껴진 그 두근거림을 거절하고 싶진 않았기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칠판을 보았다가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



  세이키는 순간 움찔하며 굳어버렸는데 카미에 선생은 하얀 뿔테안경을 잠시 바로잡으며 세이키의 옆자리를 빤히 보았다. 카미에 선생은 분명 수업을 시작할때 교실에 빈자리가 없는 것을 확인했었기에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자세히 보니 남학생의 몸이 살짝 보였고 동시에 그의 상체가 꺾여 머리가 옆의 여학생 다리 사이에 가 있음을 깨닫고는 흠칫하며 다시 세이키를 바라보았다.


  어쩔줄 몰라하며 발그레하다 못해 상당히 흥분한 듯한 세이키의 표정에서 선생은 뭔가 잘못 됐음을 깨닫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모두 수업에 집중하도록 하세요."



  하지만 켄지는 여전히 잠들어있었고 세이키도 들킨것에 대해 너무 당황한 나머지 굳어버렸기에 전혀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카미에 선생은 어쩔수없다는 듯이 말했다.



  "잠시, 모두들 이번 단원 뒤에 있는 종합문제들을 풀도록 하세요."



  그렇다고 반학생들이 모두다 있는 가운데 대놓고 학생을 지적했다간 앞으로의 학교생활에 지장이 생기거나 개인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기에 선생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가기로 했다. 문제를 푸는 아이들을 살펴보는 척하며 교실 뒤에까지간 카미에 선생은 거의 울먹이는 얼굴로 앉아있는 세이키의 옆에 가서 다리 사이를 바라보았고 세상 모르고 잠들어있는 켄지를 볼 수 있었다.



  "……."



  자신이 상상했던 상황보단 차라리 나은 것이였지만 적지않게 당황한 카미에 선생은 모르는 척 다시 교탁 앞으로 갔고 수업을 다 끝내고 나서 쉬는시간이라 정신없을때 한 여학생에게 물어보았다.



  "여기 학급 반장은 누구니?"


  "이카리군이요."



  그 여학생은 손가락으로 검은 머리카락에 정말 평범 그 자체하게 생긴 남학생을 가리켰고 그 학생은 그것만으로도 움찔하며 카미에 선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카미에가 오라는 듯이 손짓하자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어기적거리며 걸어왔고 그런 그를 향해 선생님이 조용히 물었다.



  "이카리군. 저기 책상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남학생 좀 데리고 나와줄래?"


  "네? 나마루요?"


  "나마루…라는 학생이구나. 응, 부탁 좀 할게."


  "아…제가 왜……."


  "네가 반장이잖니."


  "그냥 애들한테 떠밀려서 억지로 반장 된건데요."


  "그래도 반장이잖니. 어려운 일도 아니니 데리고 나와주렴."


  "네……."



  이카리는 힘없이 켄지에게 가서 그를 흔들어 깨우려고 했으나 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기, 나마루. 일어나."



  대답이 없다.



  "나마루…?"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는 켄지였고 그것을 책상에 걸터앉아 지켜보던 코토 미요가 말했다.



  "아이고, 이카리! 그런식으로 해서 저 바보잠탱이가 일어나겠어? 비켜봐."



  코토는 움찔하며 물러서는 이카리를 옆으로 치우곤 켄지의 어깨를 잡아 강제로 의자에 바로 앉히며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야 이녀석, 완전 잠에 빠졌는데."



  그대로 강하게 흔들었으나 켄지는 별다른 반응이 전혀없었다. 한쪽 눈썹을 치켜들며 희안하게 여긴 미요가 켄지의 뺨을 한대 살짝 때리며 말했다.



  "일어나 변태야."



  그제야 살짝 반응을 보이며 눈썹을 움찔한 것을 본 코토 미요는 히익하며 조금 물어서며 말했다.



  "으아 기분나빠. 변태라고 하면서 때리니까 반응 있어."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세이키가 걱정스럽게 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코토미. 켄지군 때리지마."


  "이녀석이 안일어나잖아."


  "그래두."


  "쳇, 알았어."



  그러면서 미요는 켄지의 허리를 강하게 꼬집었고 그러자 켄지는 멍하게 눈을 뜨며 정신을 차렸다.



  "뭐야…무슨 일이야? 요이는…?"



  헛소리를 해대는 켄지를 보며 코토가 조용히 말했다.



  "이녀석 오늘 상태 진짜 이상한데. 그리고 요이는 또 뭐야."


  "아, 학교였지…므으으으."



  그리고 다시 잠에 빠지려는 켄지를 보며 카미에 선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카리군. 저 남학생을 데리고 일단 양호실로 가세요."


  "네? 제가요? 왜요?? 다른 애들도 많은데……."


  "네가 반장이잖니. 미안하지만 친구 좀 도와주렴."


  "왜 맨날 저만 가지고……하고 싶어서 반장 된것도 아닌데……."



  중얼거리며 싫은 표정을 지은채 부들거리며 켄지를 겨우 부축하자 그옆을 세이키가 도우려고 했으나 카미에 선생이 세이키를 부르며 말했다.



  "그래도 남자인데 혼자서 알아서 하겠지. 거기 여학생은 잠깐만 나랑 얘기 좀 하자."


  "……."



  세이키는 조용히 여선생님을 따라가기 시작했고 이카리는 양호실까지 끙끙 거리며 켄지를 부축한채 데려가며 중얼거렸다.



  "왜 나야…왜……나한테 이런거만 시켜……."



  그리고 양호실까지 데려갔으나 양호선생님이 부재중이었기에 대충 아무 침대에나 켄지를 눕혀놓고 블라인드 막을 치며 켄지를 바라보았다.



  "이녀석은…밤에 잠 안자고 뭘한거야……. 정말……기면증이라도 있나…."



  한숨을 가득 내쉰 이카리는 힘없이 다시 교실로 가기 시작했고 복도 끝의 구석진 곳에서 카미에 선생이 세이키에게 물었다.



  "짝꿍인 나마…루? 라는 남자애 원래 저렇니…? 학교도 잘안나오는거 같던데."


  "아, 그게…집안 사정이 조금……있나봐요. 근데 저렇게 까지 잠드는건 저도 처음봐서……."


  "흠~ 둘이 사귀는 사이는 아니고?"



  그 말에 세이키는 살짝 놀라며 양손을 흔들면서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아직은……아, 그러니까. 같이 동아리 활동하니까 같은 자리에 앉고…같이 다닐땐 많아요. 사귀는건 아니지만, 정말 친한…많이 친한……친구에요."


  "으음…그러니까 네가 그 애를 싫어하진 않는다니까 다행이네. 난 처음에 학급내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내 수업시간에 일어나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죄송합니다……."


  "죄송할건 아니란다.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걸 보면 저 남자애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거 같긴하니까. 담임선생님이랑 얘기를 좀 해봐야겠어."



  그리고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카미에 선생님."


  "카미자카 선생님."



  그리고 그곳에는 이대팔로 깔끔하게 빗겨진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썼으며 후줄근한 양복을 입은 켄지네 동아리 담당 중년 남선생님이 서 있었다. 그 카미자카라는 선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남아가 밤에 무슨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거죠. 한두번 정도는 가볍게 넘어가줘야 어른이자 스승으로서 올바른 지도라고 봐요. 켄지가 무슨 나쁜 짓하고 돌아다닐 애도 아니구요."


  "…저는 그 남학생이 밤에 무슨 짓을 했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어딘가 아플 수도 있는 거니까 걱정이 되는거죠. 무엇보다, 언제부터 얘기를 듣고 계셨던 건가요?"


  "아아~"



  카미자카 선생은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카미에 선생님. 우리 동아리인 이리 세이키양이 여기서 얘기 중이길래 약간 신경 쓰였을 뿐입니다."


  "동아리 담당 선생님이시면, 밑의 학생들 지도에 조금 더 힘써주시지요. 평소 카미자카 선생님께서 동아리에 그닥 신경도 잘안쓰신다고 압니다만."


  "하~ 자기가 가리치는 학생 이름도 제대로 모르다가 이제야 알게 된 분의 말씀! 잘들었습니다."


  "뭐라구요? 저도 노력중이에요. 그래도 한 학급도 아니고 여러 학급의 조용한 학생들 이름들까지 어떻게 다 외워요."


  "그럼, 지금 서로 대화중인 여자애 이름을 제가 조금 전에 말했었는데 기억 하십니까?"


  "네?"



  카미에는 조금 당황하더니 대답했다.



  "당연하죠. 이리 세이키양이잖아요."


  "오오 그런 분이 참……그건 그렇고. 어른 앞에서 성질은 조금 죽이세요. 시집 못갑니다."


  "아니, 갑자기 왜 그런 얘기가 나오죠?"


  "안타까워서 말해주는 겁니다."


  "장가도 아직 못가신 분께 듣고 싶은 말은 아닙니다만."


  "어허, 못간게 아니라. 안간거요. 내가 선생때일땐 이쁜 아가씨들이랑 여기저기 쏘다녔었거든."


  "어머나! 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요."


  "카미에 선생의 상상이 더 문제군요. 쏘다녔다는걸 무엇으로 받아들인겐가?"



  이미 화제는 선생님 두분의 다툼으로 넘어가버렸기에 그 사이에 끼인 세이키는 양쪽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만 있었고 몇분간의 얘기 끝에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나간다는 것을 손목시계로 확인한 카미에 선생이 말했다.



  "좋아요 카미자카 선생님! 이 대화의 끝은 학교가 끝나고 나서 마저 내도록 하죠. 다리 옆에 커피숍 어때요?"


  "허허, 젊은 처자의 혈기로구만요. 좋습니다. 그 대결 받아들이죠. 커피값은 내가 낼테니 걱정마시고."


  "저도 월급 받거든요? 어른 공경의 의미로 제가 오히려 사드리죠. 제일 비싼거로 시키세요."


  "그렇다면 돌아가는 길에 꽃이라도 하나 드리리다. 어떤 꽃을 제일 좋아하시나?"


  "하! 주는 걸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그럼 주차비는 제가 대신 내드리죠. 그리고 얼마 전에 남성용 화장품을 경품으로 받았는데 전 필요없으니 가지세요!"



  끝없이 이어지는 둘의 이상한 대화 속에서 세이키가 떠올리는 것은 두가지였다.



  첫째는, 양호실로 간 켄지는 괜찮을 것인가?


  둘째는, 오늘도 동아리 담당 선생님은 동아리실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