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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 - 몽환의 협곡 - 33

레이븐울프 2017. 11. 2. 19:54

혼(魂) - 몽환의 협곡 - 33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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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하얀 공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인지 모든것이 보이는 것인지 알수없는 그곳을 나마루 켄지는 자신의 손목에 묶인 실에 이끌려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아."



  켄지는 그냥 입으로 소리를 내보았다. 딱히 소리가 울리거나 하진 않고 그저 자신의 목소리만 느껴질뿐.



  "……."



  여기가 어디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것인지 멍하니 생각만 하는 와중에 하얀실은 다른 하얀 실을 만나 묶이기 시작했다.



  "음?"



  뭔가 다른 느낌이 든 켄지는 자신의 손목 쪽을 보았고 서로가 묶여진 그 하얀실이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주변 배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



  희미하게 하얀 배경이 조금씩 분명해져가며 켄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평선 너머에 걸린 태양과 끝없이 펼쳐진 숲들, 노랗게 물든 세상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슬픈 피아노 소리, 맑은 듯 하지만 누군가의 애환을 대신하듯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켄지는 고개를 돌려보려고 했지만 돌릴 수가 없었다. 시선은 오직 정면으로 고정된채 조금씩 화면이 뒤로 움직이듯 태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고 조금씩 절벽이, 그리고 그 절벽에 걸터앉은 사람이, 츠이시 요이의 뒷모습이, 상처 투성이에 피로 얼룩진 전투복을 입은 그녀의 손에 들린 보우건이 보였다.



  "요이!"



  켄지는 그녀를 불러보았다. 하지만 요이는 뒤돌아보지않고 오직 저물어가는지, 떠오르는지 알수없는 태양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얼굴을 보진 못했기에 저 사람이 요이라고 확신할 순 없었지만 켄지가 보기엔 츠이시 요이, 그녀가 확실했기에 다시 한번 부르려고 할때 나뭇잎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점점 멀어지는 가운데, 나뭇잎에는 핏방울들이 맺혀있었고 나뭇가지는 부러져 있는 것도 있었으며 보우건의 화살이 꽂힌 가지, 무언가의 발톱이 내리찍힌 나무가 보였고 이어서 쓰러져있는 무언가, 두마리의 작은 까마귀 요괴가 보였고 이어서 여우요괴, 도깨비, 사슴요괴, 수발의 화살이 내리 꽂힌 머리카락 뭉치, 동공에 화살이 꽂힌 눈알 요괴 등 수십은 되어보이는 요괴들의 크고 작은 시체들이 나무 위 땅 바닥 할것없이 사이사이 화살에 꽂혀있거나 단검에 베이거나 퇴마용 포스트잇이 붙은채 목이 잘려있거나 하며 널부러져 있었다.



  "뭐야, 이 많은걸 혼자 다 죽였다는 거야?"



  슬픈 피아노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는 가운데 켄지는 요이에게서 계속 멀어지고만 있었고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시선은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왜…몸이 안움직이는거야!"



  켄지는 발버둥 치려고해도 뒤로 계속 멀어지고만 있었기에 힘껏 요이를 불러본다.



  "츠이시 요이!!"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앞만 보고 있었다.



  "요이!! 츠이시!! 제발, 이쪽을 좀 봐줘!"



  켄지는 어느순간 자신도 모르게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이곳이 자신의 자각몽속인지 아닌지 그런것은 잘모르겠으나 저항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것에 의해 그녀에게서 멀어지고만 있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다.



  "요이!!!"



  온힘을 다해 부르짖었을때 요이에게서 약간의 반응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시간의 흐름 자체가 느려진듯 천천히 뒤돌아 보기 시작했다.


  지평선의 태양이 비치는 숲속의 절벽 위, 슬픈 피아노 소리와 함께 돌아온 츠이시 요이의 얼굴은 흙과 피가 뒤엉켜있는, 알수없는 감정에 휩쌓인 표정이었다. 피곤한건지, 애절한건지 알수없는 그 표정이 잠시동안 뒤를 돌아보았다.



  "드디어……."



  츠이시 요이가 돌아봐줬다는 것만으로 자신도 모르게 안도한 켄지였으나 요이는 멍하니 뒤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요이? 나 여기있어. 여기있다고!"



  점점 멀어져만 가는 가운데 요이는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보우건을 지향사격자세로 치켜들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고 숲속을 가만히 주시했다.



  "츠이시. 여기야, 나…여기 있어…. 근데……어떻게 해야알지…어떨게 될지 모르겠어…너랑은 점점 멀어지고만 있고 넌 날 보질못하고……어쩌면 좋을까…."



  지쳤는지 멀어진 거리만큼 작게 요이에게 말하는 켄지. 가만히 서서 숲속을 바라만 보는 요이.


  슬프게만 울리는 피아노 소리가 점점 작아져 갈 무렵 켄지의 고정된 시선속, 요이의 표정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켄지?"



  거리는 멀었지만 마치 바로 옆에서 얘기한듯 켄지의 귀 옆에서 들려온 한마디, 요이의 두눈이 아주 천천히 커지며 놀란듯한 얼굴을 하곤 손에 들고 있던 보우건을 내팽게 치며 켄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자체가 느려진듯 요이의 달리는 속도는 켄지가 멀어저 가는 것에 비해 너무나 느리기만 했다.



  "기다려!"



  요이가 외치며, 보우건의 예비탄창과 장구류를 벗어던진다.



  "지금 가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전투복의 외투도 벗어던진채 느려진 시간의 흐름속에서 저항하듯 달리는 요이를 보며 켄지가 외쳐보려고 했으나 이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요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온힘을 다해 거리를 좁혀가며 천천히 한손을 내미는 그녀를 향해 켄지도 몸을 움직이려고 했고 단 몇발자국이 남은 순간.



  세상은 끊어져버렸다.



  줄이 끊겨나가듯 뚝하는 소리와 함께 켄지의 주변은 다시 새하얀 공간으로 변해버렸고 그제야 몸이 움직여서 한팔을 허공으로 내미는 켄지의 앞엔, 서로가 연결된 붉은 실을 끊어낸 몽환술사가 서 있었다.



  "무슨 짓이에요!!"



  켄지가 진심으로 울분을 토하며 외치자, 몽환술사가 다시 하얗게 물들어가는 실들을 각각 한손에 든채로 말했다.



  "정말, 재밌는 커플이네요."


  "네? 지금 장난하세요!?"


  "아니요. 저는 지금 매우 진지합니다."



  상당히 피곤하다는 듯이 말하는 몽환술사가 허무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알수없는 두사람이에요. 아하하하!! 세상에…이런 경우가 있군요. 실을 손목이 아닌 새끼손가락에 걸어드릴걸 그랬군요."


  "……."



  아직도 기분이 안풀린채 있는 켄지에게 몽환술사가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 뭔가 제가 모르는 이상한걸로 연결된것만 같네요. 하하하하하…세상에, 이 드넓은 공간에서 서로의 실이 찾아져 묶이고 붉게 물들다니. 자의인가요 타의인가요 이 이상한 인연은? 정말 놀랍군요. 그리고 위험했어요."



  아무 말없는 켄지를 바라보며 몽환술사는 뭐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뭐, 더 급한 일이 있으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처음부터 운명의 붉은 실이 연결된게 아닌 스스로가 묶여서 붉게 변하는건 정말 놀라웠다랄까…그런겁니다."


  "…요이는 괜찮은 건가요?"


  "……걱정마세요. 어차피 꿈이니까."


  "당신은 괜찮아요?"



  살짝 정신줄을 놓은 듯한 몽환술사의 모습을 보며 켄지가 묻자 몽환술사는 고개를 몇번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상황 설명하고 저는 이만, 퇴장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뭔가를 잘못건드린건 죄송해요. 그게 뭔지 지금은 잘모르겠지만, 정보조사에 대한 부작용이었다고 봅니다. 제가 뭔가를 알아내려고 하니까 그에 맞춰 이상한 일들이 잔뜩 일어났거든요."


  "…그 이상한 귀신이 말한 적이 있긴합니다. 자신을 알려고 찾으려고 하지말라고요. 근데 그걸 당신이 건드린것 같네요."


  "흠~ 일단 의도적으로 그 귀신인지 뭔지가 설치한건 아닌거 같아요. 정말 작정하고 한거면 지금 있었던 일보다 더 치명적이었을 겁니다. 아마 그 귀신의 잔념이나 사념이 어마어마 했던 거겠죠. 단지 머물다가 간 자리일 뿐인데 이토록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요."


  "……."


  "일단 좋든 싫든 서로 목숨을 건 입장이니 알아낸걸 말하자면, 바바야가입니다. 혹시 아세요?"


  "바바야가…요?"


  "네, 제가 그 방명록…어, 방명록이라고 하면 모르시겠지만 어쨌든 그 귀신의 강한 잔념을 파헤쳤을때 들린 말입니다. 전쟁터와 같은 수많은 폐허와 죽은 자들, 그리고 비통함 속에서 나타난 붉은 머리 여장교와 바바야가, 그리고 '영혼을 건 계약'이라는 말 정도를 알수있었어요. 러시아어는 몰라도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어찌보면 정말 무서운 방법인데…네크로맨서들과 연관되었다니 그럴만도 하겠죠. 정말 웃긴건, 이 귀신은 자신에 대한 정보는 자신의 얼굴도 기억못할 정도로 남기지 않았는데 그 여장교에 대해서는 훨씬 구체적으로 남겨놓았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요?"



  켄지의 물음에 몽환술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말그대로 영혼을 걸정도로 자신이 바라본 상대라는 거겠죠. 존경, 경외 혹은 다른 감정의 상대로서 자신보다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그 귀신을 지배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마도요? 아하하하하!"



  그리고 뒤돌아서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만, 저는 가보겠습니다. 나마루씨도 현실로 돌아가시죠. 오늘은 모두에게 정말 지친 하루인것 같네요."



  그리고 잠에서 깨 두눈을 뜬 켄지가 자신의 방안에서 뭔가 찌든 듯한 몸을 힘겹게 일으켰을때 몽환술사가 의자에서 힘없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뵙죠."


  "근데, 몽환의 협곡은 어떻게 된거에요? 앞으로 요이는 어떻게 치료하죠?"


  "협곡은 무사합니다."


  "네? 분명 소멸한다고……."



  몽환술사는 정말 피곤한 표정으로 켄지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암세포가 전이된 곳과 그 주변을 죄다 제거했으니 괜찮아요. 비록 나중에 재구축을해서 손좀 봐야겠지만 모든 것이 오염되는 것은 방지했습니다. 이해하기 좋게 비유하자면 메인서버는 저에게 있고 저는 당신의 내면에 몽환의 협곡이라는 프로그램을 설치한거죠. 당신에게 설치된 몽환의 협곡이 어느정도 손상이 있다고 해도, 메인서버인 제가 멀쩡하면 별 문제는 없습니다. 참고로 하얀 실에 의한 정보제공은 '일방통행'이기에 제가 당신에게 정보를 줄순 있어도 당신 내면의 무언가가 제게 흘러들어오진 못해요. 뭐 완벽하게 맞는 비유는 아니겠지만 대충 이렇게 알아들으세요. 이걸 다 설명하기엔 제가 너무 지쳤고, 개인적인 사항이니까."


  "…그럼 왜 그렇게 필사적이었죠?"


  "일단 제가 거기서 물러섰다면 당신은 그 이상한 잔념에 서서히 오염되어 이성을 상실했을 겁니다. 그 다음으론 제가 매우 불쾌했어요. 제가 만든 최고의 낙원을 더럽히려고 한다니……. 당신이 애지중지 만든 미술 작품을 어떤 벌레가 파먹거나, 컴퓨터로 쓴 논문을 바이러스가 날려버리려고 한다 생각해보세요."


  "그렇다고 거기에 당신 목숨을 걸어요?"


  "…당연하죠. 제 낙원을 더럽히려고 하는 녀석은 제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머릿속을 헤집어버릴겁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듯이 말한 몽환술사는 방문 앞에 가만히 서있었고 켄지가 뭐하냐는듯이 쳐다보자 조용히 말했다.



  "문 좀 열어주세요."


  "직접 좀 여시지…그래도 고생하셨어요. 일은 내셨지만 책임지고 절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몽환술사가 가고 난 뒤에 켄지는 조심스럽게 요이가 있는 방문을 열어보았다. 어두운 방안으로 복도의 불빛이 조금씩 새어들어갈때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켄지?"


  "응. 나 여깄어."


  "……."



  방문을 열자 불빛에 비친 요이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고 켄지는 그녀에게 다가가 상체를 일으켜주며 옆에 앉았다. 눈물이라도 흘렸었는지 촉촉한 그 눈가를 보며 켄지가 말했다.



  "요이, 나 때문에 깬건아니지?"


  "아니야……. 사실, 너무 무서운 꿈을 꿨어."


  "……그래?"



  츠이시 요이는 아직도 너무 두려운듯이 몸을 가볍게 떨며 말했다.



  "너를…또 잃는……. 꿈…. 처음엔 너무 희미했어, 유령인지 뭔지 너인줄 모를뻔 했는데 어느순간 너무 먼데도 너라는 확신이 들자마자 달리는데 넌 점점 멀어져만가. 모든 무장을 버렸어 맨몸으로 너만 바라보며 달려가는데 넌 계속 멀어지는거야……그래도 난 죽을 힘을 다했어. 널 또 잃고 싶지 않았어. 그게 꿈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아. 꿈인데도 멀어져가는게 더 무서웠어. 자각 했는데도 널 구하지 못한다는게…예전이 떠올라 너무 무서웠어. 너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차마 말못한 요이의 뺨으로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리자 그 눈물이 턱까지 가기 전에 켄지가 손으로 훔쳐서 없애버렸고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나도 비슷한 꿈을 꿨는데."


  "정…말?"


  "응. 그때 네가 뒤돌아봐줘서 얼마나 좋았는줄 알아?"


  "……."



  요이는 그를 와락 껴안으며 얼굴을 파묻었고 켄지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잠시후 고개를 파묻은 채로 그녀가 말했다.



  "우리 조금만…이렇게 있자."



  그리고 켄지는 복도의 불빛이 비치는 어두운 방안에서 말없이 요이를 꼭 안아주었다.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