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 - 몽환의 협곡 - 31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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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마루 켄지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교실 뒷벽에 박혀있었다. 양쪽 어깨에 일본도와 회칼이 꽂혀있는 상태였기에 상처사이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교복이 붉게 물들고도 밑으로 핏방울들이 떨어져 사물함 위를 적시기 시작할때 창백한 츠이시 요이의 모습을 한 존재는 사물함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와동시에 몽환의 협곡에서 방명록을 붙잡고 있던 몽환술사가 강제로 튕겨져 나와 뒤로 몇걸음 물러나다 싶더니 바닥에 털썩하고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뭘 본거야…."
그녀의 머릿속에는 구소련 장교복을 입었으며 붉은 머리의 여성이 러시아어로 속삭이던 소리만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빌어먹을…도대체 왜 이상한 일만 계속 생기는거야."
붉은 여장교의 음침하면서도 창백한, 인간이 아닌것만 같은 그 모습에 몸서리치는 몽환술사였지만 그 여장교의 입만 기억날뿐 명확한 그 무엇도 제대로 알수가 없었다. 기분이 많이 찝찝했지만 더 알아볼 것도 없어보이기도 하고 더 이상 관여했다간 무슨 큰일이 날지도 몰랐기에 몽환술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쪽으로 걸으려고 했다.
"……!"
그리고 뭔가 이질적인 존재를 느꼈다.
"뭐지."
자신에게 통제되고 조절되는 몽환의 협곡에서 느껴지는 그 느낌은, 몽환의 협곡에 처음 입장하게 될때 나타나는 폭포쪽이었다.
"……."
아파트의 창문가로 달려가 폭포 방향을 쳐다봤을때, 폭포 옆 바위 위에 처음보는 뭔가가 서 있었다. 몽환술사는 별어려울 것도 없이 자신의 시력을 향상시켜 그 존재를 확인했다.
"…누군데 초대도 없이 막 들어오는거래."
그 인물은 소련군 전투복을 입고 있었으나 얼굴이 있어야할 부위가 검게 일그러지듯 뭉개져있었고 체형도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이 불명확할 정도로 중성적이었다. 몽환술사가 군인에 대한 정보를 자신의 왼쪽 손바닥으로 불러왔고 손바닥에는 유성펜으로 쓴듯이 여러 정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정보에 의하면 불명확한, 파악 불가능한 소재의 존재이나 확실한건 인간이 아니라는것.
"방어기재인가."
이미 폭발물 함정에 당해본적도 있고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서도 그 사람 스스로의 마음의 벽과 속에 품고 있는 칼에 어느정도 고생해본 몽환술사는 별거아니라는 듯이 그 자리에서 손을 들어 멀리, 폭포 위에 작게 보이는 군인의 머리에 검지를, 다리에 엄지를 대며 짓눌러버리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좀 꺼져주시고~ 여긴 내 세상이라서 말이지."
손가락의 짓누름과 함께 뭉개지며 연기와 같이 사라져버린 그 모습을 확인한 몽환술사는 켄지는 꿈속에서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려고 했지만, 접근이 거부되었다.
"……?"
다시 한번 켄지의 꿈속에 들어가려고 시도했으나 접근이 완전히 거부 되었다.
"말도 안돼! 하얀 실로 맺어진게 거부된다고? 누가? 어떻게?"
그리고 동시에 다시한번 이질적인 존재가 느껴졌기에 몽환술사는 다시 폭포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폭포쪽은 검게 물들어만 있을뿐 그 군인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지?"
이질적인 느낌을 쫓아 아파트 밖으로 나온 몽환술사는 아파트에 있는 창문 위치에서는 사각지대의 장소에서 몸의 자세를 낮춘채 빠르게 접근중인 군인을 볼 수 있었다.
"전술적 행동까지 하는 수준인가."
살짝 인상을 찌푸린 몽환술사는 손가락으로 총모양을 만들어 그것을 검지로 조준한 다음에 나지막하게 말했다.
"빵~"
군인은 펑하는 연기와 함께 사라져버리며 주변을 검게 물들였고 경계도가 상승한 몽환술사는 주변으로 자신을 보조할 육상자위대원들을 열댓명 소환하며 말했다.
"이정도로 간단히 사라질것 같진 않은데 주변을 잘둘러보고 뭔가 보이면 바로 돌격소총으로 쏴버려."
고개를 끄덕인 중무장 자위대원들은 몽환의 협곡 주변으로 산개해서 경계를 하기 시작했고 몽환술사는 들판에 누워있을 켄지에게 한걸음에 달려가 도착한 뒤 그의 상태를 보았다.
"……심각한데."
몸에서 전류가 흐르듯 묽은 푸른색 안개가 켄지의 온몸을 뒤덮고 있었고 몽환술사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안개를 없앨수가 없었다. 조금 짜증난 상태로 켄지의 몸에 하얀 실을 감고 다시 한번 시도해보려 하는 찰나에 멀리서 총성이 들리더니 동시에 비명소리도 들렸다.
"역시 다시 나타……."
급히 뒤돌아보며 말을 하던 그녀는 할말을 중간에 멈추었는데, 이번에는 똑같이 생긴 소련군인이 세명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총을 쏘며 저항하는 자위대원들을 향해 연기와 비슷하게 달려가 덮치고 흡수해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식으로 증식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하나도 쓸모없잖아!!"
몽환술사는 재빨리 다른 자위대원들도 뺏기기전에 삭제해버렸고 5명으로 불어난 군인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연기다 이거지? 그럼 어디 이것도 피해보시지."
전차 크기 수준의 커다란 진공청소기를 만들어내 그것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하자 군인들은 재빨리 연기의 형상을 다시 확실한 인간의 모습으로 바꾸고 몽환술사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하! 어디 와보라고!!"
몽환술사는 손에 경기관총을 만들고는 무한탄창으로 갈겨대기 시작했고 총탄에 맞아 연기화 된 부분들이 진공청소기에 빨려들어 가기 시작했기에 작전을 얼추 맞아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진공청소기가 검게 물들며 멈춰버리기 전까지는.
"……."
자신을 향해 계속 해서 달려오는 군인들을 보며 잠시 조용히 몸을 띄워 공중으로 올라간 몽환술사는 잠시 상황판단을 하기 위해 올라간 것이었으나 군인들이 터진 곳에서부터 검게 조금씩 물들어가는 몽환의 협곡을 보며 점점 표정이 굳어져갔다. 그리고 이들의 목적이 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이들은 공중에 떠오른 자신에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켄지의 누워있는 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켄지의 내면이 형상화된 아파트로도 한명이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장난은 그만해야겠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몽환술사는 공기의 흐름을 통제해 군인들을 한곳으로 날려보내버렸고 아파트 주변으로는 높은 콘크리트 담벽에 전기철책, 감시탑을 세우고 기관총 사수를 배치했다. 그리고 자신은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 계속해서 잠들어 있는 켄지의 바로 옆에 서서 하얀 실로 켄지를 어떻게든 깨우려고 소리쳤다.
"어서 일어나세요! 빨리!!"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켄지와, 조금씩 검게 물들어가는 몽환의 협곡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젠장할 침식형인가…위험해. 이대로 있으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몰라."
약간 긴장한 상태로 켄지를 슬쩍 쳐다본 그녀는 다시 일어나 아파트와 자신을 향해, 정확히는 자기 옆의 켄지를 향해 달려오는 군인들과 그들을 향해 사격하는 기관총 사수의 총성 속에서 말을 이었다.
"당신 스스로 일어설수 밖에 없습니다. 최대한 버텨볼테니까, 제가 당신을 버리고 빠져나가기전에 잠에서 깨세요."
그리고 그때 켄지는 벽에 박힌채로 힘없이 교실 칠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
이쯤되면 아프지도 않았다. 처음에 칼에 쑤셔져서 벽에 박힐때는 아팠지만, 이젠 그냥 벽걸이가 됐다고 생각하니 고통따위 안느껴졌다. 애초에 꿈인데 고통이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했고 이지경이 되면서도 잠에서 못깨는 자신이 대단하다 싶기도 했었다.
"원래라면 이 지경이 되기전에 누군가 도와주러 왔었겠지."
그는 떠올려본다. 열려있는 앞문으로 츠이시 요이가 달려와 자신을 구해주는 모습을.
"……."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
"요이가…없다니……."
자신이 위험할땐 분명 나타날거란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에 그는 다른 사람을 떠올려보려고 했다.
"시로? 쿠로?"
츠이시 시로와 츠이시 쿠로를 불러보았다.
"……."
하지만 적막한 침묵만이 있었다. 다시 고민해본다.
"저…아즈미씨? 아니면……카미코 미도리?"
정부닌자와 이상한 종교의 신도로 불러보았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메이씨? 제니퍼씨? 미오? 타누? 히고?"
자신이 살아남는데 도움이 됐던 사람들을 한번씩 불러보았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플래터!!"
녀석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 그러고보니…츠이시 유이씨."
뒤늦게나마 요이의 언니를 불러보지만 소용없었다.
"……."
그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러 오지 못함을 인식한 그때, 켄지는 스스로 빠져나가기로 결심했다.
"후~"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몸을 흔들었다. 어깨에 박힌 칼 때문에 고통이 엄습해 오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몸을 움직여본다.
"으윽!!"
살이 베이고 찢기는 고통 속에서 그는 드디어 벽에서 떨어져나와 사물함에 부딪힌 다음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쓰러졌다.
"꿈 주제에…겁나 리얼하게 아프네……."
지친 모습으로 쓰러져 있을때 복도쪽에서 누군가 다리를 끌면서 다가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
켄지는 양팔에 힘이 안들어갔기에 몸을 비틀며 겨우 몸을 일으키려다가 사물함을 등지고 다시 쓰러지고 말았고 피투성이인 모습으로 힘없이 교실 앞문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뒤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들어온 것은 한팔로 자신의 아랫배를 감싼 코토 미요. 그녀의 입가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에 맺혀있었고 눈과 몸에는 사이토에게 구타 당해서 생긴 멍이 군데군데 들어있었다.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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