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 - 몽환의 협곡 - 29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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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닥 마음은 안놓이지만 꿈의 장르가 바뀐건가 싶은 나마루 켄지는 그냥 양호실 침대에 편하게 누웠고 그 옆에 세이키가 앉으며 켄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켄지도 세이키를 올려다 보았다.
"……."
"……."
예뻤다. 확실히 자신이 원래 학교에서 가장 좋아했던 여학생인 만큼 양호실에서 자신을 간호해주고 바라봐주는 세이키는 천사 같이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켄지가 살짝 긴장했을때 세이키가 그를 마주보며 침대에 함께 누웠고 켄지가 놀라려고 할때 세이키가 말했다.
"나 좋아하지?"
"어……음……그러니까……."
켄지는 당황해하다가 꿈이니까 괜찮으려나 싶어서 답했다.
"어…좋아해…라기보단 좋아했…었어. 지금도 좋아하긴 하지만……."
그는 요이를 떠올리며 복잡한 순위권 다툼을 시작했고 세이키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민중이네. 나랑 츠이시 요이랑."
"어, 요이를 네가 어떻게……아, 이거 꿈이지."
"응 꿈이니까 켄지군, 조금 과감해져봐."
세이키가 켄지의 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 위로 얹으려고 하자 켄지가 깜짝 놀라 멈추며 말했다.
"세이키! 잠깐만…이건 좀……."
"왜 그래 켄지군. 나보다 츠이시가 더 좋아?"
"그, 그것보다. 이거 전개가 이상하잖아. 어째서 칼든 사람들한테 쫓기다가 갑자기 이런 낯뜨거운 전개로 가는건데?!"
"꿈은 원래 그런거야 켄지군."
"뭐…뭐랄까……나도 네가 좋긴 좋은데……."
몽환술사도 연락이 끊긴 지금, 딱히 지켜보는 사람도 없을거 같은데 갈등에 휩쌓인 켄지는 못이기는 척 슬쩍 손을 대어보았다.
"살짝 대어보는거 정돈 괜찮…엣?!"
"……?"
뭔가 켄지가 화들짝 놀라자 귀엽게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표한 세이키에게 켄지가 말했다.
"어째서 이렇게 실감나는거야! 나 이런거 만져본적 전혀 없……."
갑자기 더럽혀진 성역에서 모습이 모두 똑같이 생긴 여자들에게 홀려 정신을 잃었던 기억이 떠오른 켄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진짜…그때…그런 일이?! 아냐…그럴리가 없어!"
사실 몽환술사와 하얀 실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이기에 켄지가 여자의 신체에 대한 감각적 기억이 있든 없든 부족한 정보는 몽환술사를 통해 모두 보충되고 동시에 상상력도 가미되어 켄지에게 전해지고 있는거지만 그런것 까진 생각도 못한 켄지였다.
얼굴이 잔뜩 붉어진 켄지를 바라보며 세이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켄지군이 정말 날 좋게 봐줘서 고마워."
"좋게라니…?"
"내 살결은 부드러울것 같다던지 그런 상상 잔뜩 해줬으니까 지금도 날 만져주면서 좋아하는거잖아?"
"어…그러니까……."
"말 안해도 알아. 지금 켄지군의 속마음……난 모두 다 읽을 수 있으니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걸 원하는지."
세이키가 점점 켄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고 그녀에게 안어울릴 법했던 야시시한 표정은 오히려 켄지의 가슴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결국 켄지의 시선에 세이키의 분홍빛 입술이 고정되었고 거의 반쯤 포기 심정이 된 켄지가 말했다.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세이키랑 이런 자각몽이라니……."
"위험하다니? 어떤게 위험해 켄지군?"
"내 마음 다 안다며…사시미 들고 다니는 코토 미요랑, 사이토씨지."
"코토밍이라면…켄지군 부축할때 여기 같이 왔는걸."
"……."
갑자기 정신이 확 들면서 등쪽에서 오싹한 기운을 느낀 켄지가 버벅 거리며 물었다.
"무, 무슨 소리야 세이키. 여긴 우리 뿐이잖아. 양호실에 올때도 분명 너만 부축……."
"켄지군. 미요는 우리와 함께 있어."
"……."
나마루 켄지는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고 분명 처음 양호실에 왔을때만해도 없었던 코토 미요가…아닌 츠이시 요이가 차갑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로 굳어버린 켄지가 복잡한 심경으로 조용히 고개를 숙였을때 세이키가 뒤에서 백허그하면서 귓속말했다.
"켄지군의 마음…물들었어."
"……."
차라리 회칼을 든 코토 미요가 있는게 더 나았을 법한 상황 속에 켄지는 자신도 모르게 절망하며 모든게 무너져내리는 심정을 느꼈는데 그대로 켄지를 제외한 양호실과 주변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듯 없어지는가 싶더니 켄지가 고개를 다시 들었을때 주변은 전혀 달랐다.
늦은 저녁 노을이 져가는 동아리실, 하늘과 대지가 붉게 물들어가 있고 동아실 안에도 붉은 기운이 가득한 탁자 반대편에선 성실하게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 이리 세이키가 있었다.
"갑자기 주변이…?"
켄지는 자기자신도 약간 의아한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그런 켄지를 보며 세이키가 말했다.
"왜그래 켄지군?"
"아, 아니…그냥……우리 무슨 일 있지 않았어?"
"켄지군도 참…수업 마치고 바로 여기로 왔는걸. 어서 서류 정리하자. 하필 형광등도 나가버려서 해지기 전까지 끝내야할거 같아."
"……."
켄지는 자신의 몸에 다친 흔적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꿈 자체가 아예 바뀐건가 싶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불이 안들어오는 형광등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두운 곳에서 일하긴 좀 그렇잖아. 내가 새로 전등 가져올게."
"응, 부탁해 켄지군."
온화하게 웃어보이는 세이키를 뒤로한채 켄지는 동아리실 문을 열고 나와 다시 닫았고 붉게 물든 학교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뭔가 빛바랜 느낌의 이상한 느낌의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다가 계단을 내려가려고 할때 밑에서 걸어올라오는 코토 미요를 보았다.
"읏?!"
움찔하며 당황한 켄지가 쳐다보자 미요는 뭐하냐는 듯이 걸어 올라오며 말했다.
"나를 보고 그런 이상한 반응이라니…기분 나빠."
"너 어디가는거야?"
"어디긴 세이키 보러가지. 동아리실에 있지?"
"어, 맞아…."
자기가 봐온 회칼을 든 코토 미요가 아닌가 싶어서 안도한 켄지는 자신을 지나쳐가는 코토 미요의 허리 뒷춤에 꽂혀있는 회칼을 보곤 깜짝 놀라며 외쳤다.
"너, 너!"
"조용히 해."
"넌 날 죽이려던 그 코토잖아!"
"하아~ 정말."
코토 미요는 뒤돌아서 켄지를 바라보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좀 모른 척 좀 해주면 안되겠어?"
"세이키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슬쩍 지나가는거야!"
"널 죽이면 죽였지 세이키에겐 손 안대. 너 볼일이나 봐."
"…지금은 왜 안죽이려고 해?"
그의 물음에 코토 미요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저씨랑 너 죽이기 놀이하는거 보다, 세이키와 함께 있는게 더 재미있으니까. 애초에 '놀이'잖아. 언제 그만두고 시작하는건 내 마음이야."
"니 맘대로 시작하고 그만두는건…혼자 놀때 얘기겠지만. 어쨌든 이제 날 죽일 생각은 없다니까 다행이네."
동아리실 세이키는 양호실 세이키와 다른 존재인거 같고 요이는 아예 사라져 버렸는데 코토 미요는 그대로고 켄지는 어떤 상황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일단 코토가 지금 당장은 자길 죽일 생각이 없어보인다는 점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다시끔 요이가 떠올라서 죄책감도 아닌 기묘한 감정 속에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던 켄지에게 위쪽 계단 난간에 팔을 걸친 미요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이, 그리고 내가 그대로 있다는건 그 아저씨도 이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 있을 수 있다는거야."
"……진짜?"
"그래.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고마워. 그런데……."
"음?"
켄지는 계단 아래에서 위쪽의 코토 미요를 빤히 올려다 본채로 말했다.
"너 팬티보인다."
"……."
"핑크……."
팍-!
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빛의 속도로 회칼이 켄지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 바닥에 꽂혔고 깜짝 놀란 켄지가 자신의 다리 사이를 손으로 막은채 기겁하며 외쳤다.
"야! 이건 너무……."
하지만 이번에도 켄지는 말을 잇지 못했는데 코토 미요는 정말로 핑크빛 분노의 화염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 꺼낸건지 종류별로 다양한 회칼을 양손에 쥔채로 또박또박 말했다.
"나마루 켄지. 넌 역시 최.악.이야."
"자, 잠깐만 코토…이거 그냥 꿈이라서 보이는 대로 말해본거라고! 절대로 현실에서 네 속옷 같은거 본적……."
잠시 진지하게 생각해보던 켄지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양손을 포개며 말했다.
"있구나. 고의는 아니었지만."
"으아아아아아!!"
핑크빛 화염이 쏟구치는 가운데 켄지가 양손을 저으며 말했다.
"어이, 그건 사고! 사고 였다고! 아니, 우연인가? 어쨌든!!"
"그래, 네놈의 유언은 '네 속옷 같은거 본적 없어.'로 전해줄게."
"코토?!"
코토 미요는 엄청난 속도로 난간을 박차고 계단 밑의 켄지에게 달려들었고 켄지는 깜짝 놀라며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려 미끄러지듯 구른 다음에 벌떡 일어나 최대한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지, 진정해! 나 죽이는거 재미없다며!!"
"이건 전세계 여자들을 위한 정의실현이야!! 내 재미가 중요한게 아니라고!"
"지금 형광등도 없이 세이키가 일하고 있어! 내가 가서 갈아줘야 한다고!"
"왜 형광등은 항상 남자가 갈아주는건데!! 나도 갈수있어! 그러니까 그냥 여기서 죽어!!"
회칼 몇개가 켄지를 스쳐 지나가 날아갔고 놀란 켄지가 뒤돌아 봤을때 코토 미요는 허리 뒷춤에서 무한하게 회칼을 뽑아대며 자신에게 던지고 있었다.
"야아?! 너무한거 아니냣!!"
"죽어! 그냥 여기서 죽어버려!! 이 변태악마H저질치한최저색마야!!"
"뭐야 그 단어?!"
회칼들이 수없이 빙글빙글 날아다니고 있던중에 드디어 하나의 회칼이 켄지의 허벅지에 꽂히는가 싶더니 관통해서 바닥에 꽂혔고 켄지는 고통과 함께 쓰러져 구르며 말했다.
"으앗?! 칼이 어떻게 사람을 관통해!"
자신을 관통한 식칼에서 분홍빛 빛이 아른거리는 것을 본 켄지가 기겁하며 외쳤다.
"뭐야…옵션이라도 붙어있는거냐!!"
"당연하지. '코토 미요의 격분의 심판 사시미+20'이니까."
"……고강템 이었냐…."
평소에 자신이 하던 게임에 저런 아이템 이름은 없었던거 같은데 라고 생각한 켄지는 몸을 돌려 상체를 일으킨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코토 미요를 보았다.
미요는 얼굴에 그림자가 진채 눈에서만 핑크색 안광을 띄고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손에는 양손으로 강하게 움켜쥔 회칼이 들려있었다. 그것을 본 켄지가 뭐라고 외치기 전에 코토가 먼저 말했다."
"거기다 '나마루 켄지를 대상으로 공격할시 대미지 증폭'도 있으니까 기대해."
"뭐야 그런 옵션!!"
그렇게 다가온 코토 미요는 켄지의 어깨를 걷어차서 눕힌 다음 그의 배를 깔고 앉은채 한손으로 회칼을 들었고 켄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정말로 날 죽일거야?!"
"그럼……."
코토 미요가 싸늘한 표정과 함께 말을 이었다.
"내 팬티 색깔을 마음에 품고 있다가 꿈속에서 구현시켜 버리는 변태를 눈앞에 두고 그대로 놔둘 순 없잖아."
"딱히 마음에 품고 있던건……."
"유언은 따로 동생에게 전해줄게."
"그런 이상한 유언 전하지맛!!"
"시끄러워! 죽여서 조용하게 만들어버리겠어!"
"야야야?!"
한손에서 양손으로 칼을 움켜쥔 코토가 칼을 치켜들었을때 나마루 켄지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뒤로 했고 다가올 고통에 대비했다.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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