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코너/혼 - 몽환의 협곡

혼(魂) - 몽환의 협곡 - 34

레이븐울프 2017. 11. 5. 22:43

혼(魂) - 몽환의 협곡 - 34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하…내가 악몽을 꾸다니…."



  자신의 거처에서 부스스하게 일어난 몽환술사는 살짝 표정을 찌푸린채 어두운 방안에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젠장…너무 이르잖아…."



  분명 피곤해서 늦게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악몽을 꾸는 바람에 이른 아침에 일어난 그녀는 잠옷을 입은채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로 가면서 메세지를 확인했는데, 츠쿠요미로부터 온 메세지가 있었다.



  "……."



  간단하게 세면을 마친 그녀가 조금씩 밝아지려하는 침대 옆에 힘없이 기대어 앉으며 츠쿠요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지금 괜찮으세요?"


  『물론이죠. 일어나면 바로 연락달라고 했으니까요.』


  "밤이라도 새셨나요? 어떻게 그 정보들을 벌써 알아내신건가요?"


  『잠이 적다고 정도만 말해두죠.』



  언제나 한결같은 목소리에 몽환술사는 피식 웃었고 목소리를 조금 가다듬은 다음에 말했다.



  "네, 제가 부탁드린 조사건에 대해선 어떻게 나왔나요?"


  『일단 한명은 신원이 확실해요. 저도 사진을 보니 기억이 나던데 그 뺨에 큰 흉터가 있는 여학생의 이름은 박하현, 국적은 대한민국이고 소속은 한국정부 요원후보인 면역자입니다. 나이는 만 14세였고 조기교육 받는 요원후보 답게 능력은 출중했어요. 특히 권총사격과 근거리 사격술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츠이시 요이와 같은 나이일때 일본으로 넘어와서 양국협력체계의 일환으로 요이와 함께 생존 및 일상훈련 중에 사망한걸로 나와있는데 더 궁금한것 있나요?』


  "음…츠이시 요이씨와는 잘지냈나요? 어떤 관계였죠?"


  『일단 좋은 관계였다고 합니다. 그때의 요이는 친구를 잃는데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었는데, 그 박하현이라는 아이가 죽은 뒤로는 요이도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네? 츠이시 요이씨가 친구를 잃는데 별로 신경을 안쓴다구요? 그 사람, 지금 죽은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구요."


  『당신은 아직 요이를 잘모르는군요.』


  "……."



  몽환술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박하현이라는 학생에게 영향을 받아 츠이시씨의 성격이 변했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봅니다. 그럴만도 하구요.』


  "…그럼 그 학생을 만나기 전의 츠이시 요이씨는 어떤 사람이었죠?"


  『흠~ 글쎄요. 요이의 머릿속에 들어가봤으면 아실수도 있을텐데?』


  "제가 본건 슬픔과 죄책감뿐이었습니다. 절대 속이는 감정은 아니었어요."


  『네, 원래 요이라는 아이가 나쁜 애는 아니에요. 단지 성장환경이 너무 힘들고 그 여린 어깨에 놓여진 삶이 너무 가혹했기에 사춘기때는 좀 많이 거칠고~ 무엇보다 '철저'한 애였습니다.』


  "어떤 점에서 말이죠?"



  몽환술사의 물음에 목조풍 사무실의 의자에 앉아 조금 씁쓸하다는 듯이 츠쿠요미가 답했다.



  "바로 생존과 보안. 이 부분에 있어서요."


  『……생존은 그렇다쳐도 보안이라 함은……설마.』


  "네, 당신이 떠올리는 그거 맞아요. 우리 요이가 사회속에 살던 면역자를 데려와 동료로 삼는 경우가 있음에도 우리 정부가 딱히 터치하지 않았던건 입막음이 확실했다는 것이죠. 어떤 의미에선, 요이와 함께 지낸 사람들중에 살아남은 면역자는 아무도…아, 지금은 한명 있군요. 나마루군이 얼마나 버틸진 모르겠지만 일단 안죽었으니까요."


  『사회에서 살다가 츠이시씨와 함께 지내다 죽은 사람들은 무슨 죄입니까?』



  그 말에 츠쿠요미는 별거냐는 듯이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본인들의 선택이었죠. 우리 요이가 좀 끈질기게 집착하는 면이 있긴하지만 절대로 강제로 끌고 온적은 없어요. 강제로 끌고와봤자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또 밤중에 도주하면 자기가 쫓아가서 죽여야하는데 비협조적인 면역자를 데려오진 않아요."


  『사람 목숨을 참 쉽게 말하는 군요. 제게도 그랬던 것처럼.』


  "어쩔수가 없습니다.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사는거죠, 단지 산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기려줄뿐. 그외로도 괜히 이상한 소문이 나거나 언론에서 조명이라도 하면 골치아프다구요. 다행히 요즘 사람들은 알아서 위조영상이니 뭐니 겨우 살아서 도망친 사람이 뭐라고 증언해봤자 미친사람이거나 관심받고 싶어하는 사람으로만 바라보기에 많이 수월해졌습니다."


  『…….』



  요이의 다른 면모를 알게된 몽환술사는 약간 더 밝아진 방에서 살짝 고민하다가 말했다.



  "일단,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안즈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아보셨나요?"


  『물론이죠. 근데 요이가 임의로 데려왔다가 그냥 죽은 학생인지 딱히 박하현양의 경우처럼 명확한 정보는 없더군요. 요이가 중학생일 시절 전국의 실종, 사망자 명단에서 안즈라고 발음되는 여학생들의 리스트를 봤는데 일단 제일 유력한 사람이 있긴했어요. 코우사카 안즈라는 이름의 가출소녀가 맞다고 봅니다. 하늘색 머리카락 맞나요?』


  "네, 맞습니다."


  『다행이군요. 가출신고가 접수된 이후로 지금까지 발견되지 못한 인물입니다. 학생기록부를 보니 반항심도 제법 있었고 조금 불량한 학생이었던것 같더군요.』


  "정확한거 같네요. 제가 만난 인물도 정말 개…흠, 죄송합니다. 별로 마음에 안드는 성격이었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당신이 그렇게 열내는 당사자는 이미 몇년전에 죽은 사람이니까요.』


  "그건 그렇네요…."


  『그래서 더 필요한 정보가 있나요? 별로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됐는지 모르겠군요.』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것과 뭐라도 아는건 천지 차이죠. 특히 심리전에 있어서는요. 코우사카 안즈라는 인물과는 몇번 접촉해서 어느정도 파악이 됐지만 박하현이라는 인물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선……."



  몽환술사는 뭔가 자신이 중요한것을 잊을뻔 했다는 듯이 말을 멈추곤 매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마터면 깜박할뻔 했군요. 혹시 네크로맨서와 연관된 붉은 머리의 여장교를 아십니까?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매우 창백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바바야가'라던가 '영혼의 건 계약' 운운 하는 것에 대해 아십니까?"


  『…….』



  수화기 너머로 츠쿠요미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일반적으로 '바바 야가'라면 슬라브 민족의 전설이나 민담에 등장하는 마녀를 말하는 겁니다만 실존했으면서 바바 야가라고 칭해졌던 존재들에 대해선 보안문건에서도 별로 정보가 없었던 기억이군요. 네크로맨서쪽 세계가 워낙 신비스러워서 말이죠.』


  "흠…역시 의문 투성이로군요."


  『그쪽으로도 일단 알아보긴 하겠습니다. 그외로 보고 할건 없나요? 질문이나.』


  "있긴 합니다."



  몽환술사는 기억을 되집어보듯 눈을 지긋이 감은채 말했다.



  "츠이시 케이미츠…라는 이름이 나마루씨의 머릿속에 있더군요. 러시아어로 쓰인 이름이 너무 신경쓰여서 우선순위에서 미뤘었는데 아쉽게도 그것까진 알지 못했습니다."


  『아~ 그 인물은 알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있었던 츠이시 가문의 성역 가옥에서 있었던 사건에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한마디 해드리자면 그 이름에 관해선 당신이 신경쓸 필요가 크게 없을것 같군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그외로 나마루 켄지군의 내면에서 알아낸게 있나요?』


  "좋아하는 이상형 스타일이랑 괴상한 금고랑 꾸고 싶어했던 꿈의 종류…입니다. 그 가옥인지 뭔지랑 관련된 꿈 같기도 한데 관심있으실지 모르겠네요. 지하 같이 우중충한 곳에서 닌자랑 이상한 말괴물 같은게 튀어나오는 꿈이었는데 말이죠."


  『이상형은 빼고 가옥에 관한 꿈에 대한 자료를 상세하게 작성해서 보고서로 제출해주세요. 지금 당장.』


  "…그게 이제 조금 있다가 츠이시 요이씨에게 가봐야 하는데 기간을 좀 넉넉하게 주실 수 있나요?"


  『좋아요. 오늘 밤까지로 해드리죠.』


  "……아, 네."


  『그래도 제법 유용한 정보를 알아내셨군요. 보고서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럼, 이만.』



  몽환술사는 표정을 찡그린채 통화가 종료된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았고, 화면이 꺼져서 검게 되자 액정화면에서 안즈의 얼굴이 튀어나올것만 같은 생각이 갑자기들어서 재빨리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는 외출 준비를 했다.


  잠시후 나마루 켄지의 집에 도착한 몽환술사를 교복을 입은 켄지가 정말로 피곤한 듯한 얼굴로 맞이하며 말했다.



  "어서오세요…."


  "지난 밤에 잠은 잘 주무셨나요?"


  "나름 푹잔거 같은데도 엄청나게 피곤하네요."


  "조금 그럴 수 있습니다. 몽환의 협곡을 왔다갔다하다보면 상당히 지치기 마련이죠. 츠이시 요이씨는?"


  "방안에 있어요."



  켄지는 그녀를 요이가 있는 곳으로 안내 한 뒤에 자신의 방에서 책가방을 챙겨 가지고 나오며 복도에서 말했다.



  "그럼 요이 좀 부탁할게요. 전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네~ 다녀오실때까지 함께 있을거니까 걱정마세요."



  몽환술사의 대답을 듣고 나서 켄지는 침대에 있는 요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이, 나 다녀올게~"


  "응, 조심히 다녀와."



  굳이 조심하라고까지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런 표현이 익숙한 요이에게 켄지는 씩하고 웃어보이곤 등교를 시작했고, 둘만 남은 상황에서 요이가 몽환술사에게 말했다.



  "저 결심했어요."


  "어떤 것을요?"


  "자각몽으로 안즈를 구할거에요."


  "자각몽으로요? 다른 것도 가능할텐데 굳이?"


  "어떤 꿈이든, 몽환을 협곡을 거쳤을땐 대부분 나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직접 만나러 가는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몽환술사는 잠시 생각을 해보았는데, 확실히 코우사카 안즈라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자신이 좀 더 편하게 작업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후 그들은 엉망진창인 몽환의 협곡의 무너져 내린 오두막 위에 나타났다.


  거의 다 뜯겨나가다 싶이한 오두막에 드넓은 들판이었던 곳은 운석이라도 맞은것 마냥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있었으며 폭포가 있던 곳부터 언덕 근처까지 거의 모든 곳이 초토화 되어 있었다. 전과는 너무 다른 느낌에 깜짝 놀란 요이가 똑같이 당황한 몽환술사에게 말했다.



  "저기, 무슨 전쟁이라도 했어요?"


  "네…뭐, 총탄과 포탄이 날아다녔었으니 전쟁이라면 전쟁이었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별거…아니라고 하면 이상하겠지만 크게 신경쓰실 부분은 아닙니다. 백업해둔 부분들이 있으니 나중에 복구작업만 좀 하면 될거에요. 원래는 미리 했어야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미뤄뒀더니…이렇군요."



  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몽환술사도 왜 켄지의 내면에서 초토화된 몽환의 협곡이 요이에게도 거의 그대로 나타난건지 좀 의아해하며 중얼거렸다.



  "소멸 과정의 여파가 생각보다 심각했었군……."


  "뭐가 심각했다구요?"


  "아, 네…그냥 좀 이상한것들이 설친적이 있어서 한번 난리친적이 있는데 그 여파가 생각보다 큰것 같네요. 그래도 걱정마세요, 자각몽에는 아무 이상이 없을겁니다."


  "…정말 괜찮은거죠?"


  "물론입니다. 알맹이만 멀쩡하면 문제없죠, 하하하."



  몽환술사가 오두막에 멀쩡해 보이는 침대 하나를 들여놓고 그곳에 요이를 눕게 했으며 서로의 손목에 감겨있는 하얀 실을 한손으로 붙잡은채 말했다.



  "자…그럼 그 안즈라는 인물을 구하려고 하신다는거죠?"


  "네, 자각몽으로요."


  "좋습니다. 그때 그 상황을 최대한 반복해서 떠올리세요. 츠이시씨의 정보에 근거한 자각몽을 꾸도록 해드리겠습니다."



  한동안 계속해서 그때의 끔찍한 기억들을 반복해서 상기하던 츠이시 요이가 어느덧 눈을 떴을때, 해가 화창하고 깊은 산속의 숲의 중간에서 정신을 차렸다.



  "……."



  자신이 전투복을 입고 있으며 한손에는 5연발 보우건이 들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5연발…."



  자신이 보통 사람들로 치면 중학생때 쓰던 무기를 들여다 보고 있을 무렵 뒤에서 뭔가가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요이가 돌아보았을때 그곳엔 안즈가 다급한 표정으로 기겁을 하며 외쳤다.



  "야! 요이 멍청아!! 안튀고 뭐해?!"


  "어?"


  "위에 조심해 이년아!!"



  요이가 위를 쳐다봤을때 나무 위에서 사슴뿔이 달리고 몸에 털이 나있는 인간 같은 것이 뛰어내렸고 요이는 재빨리 옆으로 굴러서 피한 다음에 침착하게 단발로 사슴인간의 목을 맞추었다.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요괴를 보며 안즈가 요이의 손을 맞잡아 일으켜 주며 말했다.



  "미친 사슴새끼가 왜 나무 위에 쳐 올라가있어!! 근데 너 갑자기 평소보다 더 능숙해진거 같은데! 이제 계속 튀자고! 뒤에 겁나 많이 쫓아오고 있어!!"


  "그래. 걱정마, 내가 지켜줄게."



  그렇게 요이가 안즈와 함께 숲길을 달리기 시작할 무렵, 나마루 켄지는 자신의 교실에 도착해서 자신의 자리로 가던 도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리 세이키와 코토 미요를 보았다.



  "그러니까, 세이키. 어쩔수없이 새로 핸드폰 구해야하지 않을까? 여자애가 연락은 되고 살아야지."


  "응 그렇긴한데……."



  미요의 말에 대답하려던 세이키는 켄지를 보자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어머, 켄지군. 좋은 아침."


  "응, 세이키. 좋은 아침."



  켄지도 분명 세이키를 향해 인사를 했으나 동시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코토 미요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을 느낀 미요가 말했다.



  "어이 나마루…아침부터 뭔데 그런 축축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거야."


  "……."


  "뭐야 진짜 그런 표정!"



  자각몽 속에서 만났었던 코토 미요와 함께 엄청나게 복합적인 감정들이 켄지의 머릿속을 들쑤시고 다니는 가운데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안부 전해달래."


  "누가?"


  "…그냥 그런게 있어."


  "무, 뭐?! 엄청 뜬금없잖아!!"



  코토 미요는 아침부터 무슨 소리냐는 듯이 외쳤으나 무시하고 자리에 앉는 켄지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했기에 못마땅하다듯이 쳐다보는 것으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