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 - 몽환의 협곡 - 41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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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이죠?"
표정이 잠시 진지해진 나마루 켄지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고 김 담당관이 자료들을 살펴보며 답했다.
"제한적인 자료만 알고있습니다만…일단 치료하곤 거리가 멀어보인다는 점 정도입니다."
"……."
켄지는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다.
"그럴리가요. 만약 요이를 해코지하려고 했다고 쳐요. 그렇다면 몽환술사씨에겐 요이를 죽일 기회가 족히 백번은 넘었을건데요?"
"꼭 물질적으로 직접 해치는 것만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아니죠. 꿈치료라고 하셨나요? 사람의 정신을 망가뜨리는것…사실 그걸로도 사람은 이미 죽은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만약 그 몽환술사라는 사람이 직접 츠이시 요이씨를 죽였다면 츠이시 가문이나 우리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일본 정부에서 그런 짓을 할까요?"
"하지만 일본 정부에서도 요이를 왜 죽이려들어요? 걔가 뭘 잘못했다고요?"
"그걸 잘모르겠으니 직접 물어보려는 겁니다. 그 몽환술사라는 사람에 관해서도 그렇구요."
"그걸 알아보려고 하신거라면 사람을 잘못부르셨네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 그리고 일본 정부라고 하시는데 제가 속한 국가의 정부에요. 그리고 요이에게 도움이 필요할때 도움을 준 유일한 곳이죠."
켄지는 츠쿠요미에게 들은 바대로 일단 타국인 한국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정보는 안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입을 닫았고, 그것을 본 김 담당관은 잠시 조용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기분 나빴다면 죄송합니다. 다만…지금 국가간의 감정이나 다른 것을 개입시키는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희도 궁금해서 묻는겁니다. 어째서 일본 정부에서 전직 군인…이 아니라 자위대원 출신 혹은 아직 자위대원 일수도 있는 인물에게 치료 같은걸 맡긴건지."
"네, 저도 의외긴해요. 확실히 몽환의 협곡안에서 몽환술사씨는 생긴 것만 민간인 같이 생겼지 쓰는 무기들이나 다루는 모습들을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닌거 같긴 했어요."
"몽환의 협곡…은 또 무엇인가요?"
"……."
대답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생각해본 켄지는 일단 이들이 츠이시 가문과 가까운 관계라는 점을 상기하며 대답하기로 마음 먹었다.
"일종의 중간경유지 같은 곳이에요. 자각몽이나 다른 꿈을 꾸기위한."
"그 장소에서 꿈치료를 하는것이고 나마루씨도 경험해본거군요?"
"네."
"어땠나요? 치료는?"
"……."
솔직한 심정으로 켄지는 치료라기보단 오히려 심경이 더 복잡해지기만 한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리고 뭔가 개운하다기보다는 찝찝했구요."
"……."
김 담당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예, 잘알겠습니다. 질문은 이정도…아차."
뭔가 잊을뻔 했다는 듯이 다른 서류집을 뒤진 김이 말했다.
"그~ 카미코 미도리라는 신도복 입은 여자랑은 아직 다시 못만났나요?"
"아, 네. 아직…못봤습니다."
"흠……."
"혹시 한국측에선 그 종교에 관한 자료가 있나요?"
"그게 딱히 우리나라에선 없었던 기억이네요. 일단 츠이시 가문, 일본 정부와도 함께 그들의 정체를 조사중이니 조만간 결과가 나올겁니다. 그 신도의 신변이 어찌됐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네, 개인을 찾긴 힘들겠죠. 그래도 혹시 알게되면 제게 꼭 알려주세요. 그 신도 덕분에 제가 목숨을 건졌으니까요."
"그럼, 협조 감사합니다. 돌아가보세요 많이 걱정되실건데."
자리에서 일어난 켄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김에게 물었다.
"근데 혹시 휠체어 있나요?"
"휠체어요?"
"네, 미정이가 준다고 했거든요. 지금 요이가 걷지도 못하는 상황인지라…."
"그런…심각하군요. 이 방에서 맞은 편 벽에서 왼쪽에 있는 방안에 있을거에요. 여자애 방이니까…휠체어만 가지고 금방 나오세요. 하하……."
"제가 찝찝하시다면 직접 가져와주셔도 됩니다."
"아, 저는 방금 나마루씨와 대화한 내용을 정리해야할것 같아서요. 이런건 까먹기전에 해야하는지라."
어찌됐든 빌리는 입장인 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미정의 방으로 가서 문을 열었지만 휠체어는 보이지 않고 대충 닫힌 캐리어에 담긴 미정의 옷들만 보였다.
"……."
켄지는 문을 닫았고 김에게 찾아가려고 하는 찰나에 미정의 방을 지나 왼쪽으로 쭉 이어진 복도 바닥의 먼지 사이로 나있는 휠체어 자국을 보았고 동시에 드문드문 찍혀있는 발자국을 보곤 뭔가 싶어서 휠체어 자국을 따라갔다.
휠체어 자국은 어떤 방문 앞까지 이어져 있었고 켄지가 문고리를 돌려보았으나 덜컥거리는 소리만 나고 열리지 않았는데, 제법 커보이는 열쇠구멍이 보여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뭐지…이 방은."
조명이 켜져있는 방안에는 마네킹들과 함께 다양한 크기의 잡다한 구체관절 인형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거나 벽과 바닥에 앉아있었고 그 중간에 휠체어가 놓여져있었으며 그 위에 머리가 없는 여성형 구체관절 몸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어둠이 깔린 방구석에는 여러 공구들과 함께 커다란 검은 캐리어가 열려있었는데 켄지는 뭔가 묘하게 기분이 나빴기에 열쇠구멍에서 눈을 떼고 김 담당관을 찾아갔다.
"저기, 김씨…휠체어가 이상한 방안에 있는데요."
"네? 이상한 방요?"
"그…본의아니게 들여다보니까……이상한 마네킹이랑 인형 같은 것들이 잔뜩 있더라구요."
뭔가 뜨끔하는 표정을 지은 김씨는 애써 괜찮은듯한 표정을 지으며 서랍에서 급히 열쇠 꾸러미를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잠시 여기 계세요. 제가 가지고 올게요."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방을 나가는 김이 자리를 비웠을때 켄지는 자기가 김씨의 개인 취향을 본것이라 생각하며 의자에 앉았는데, 사무실 내의 책장 밑 나무 미닫이 수납장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하필이면 그 인형들이 있었던 방쪽 방향의 벽면에 위치한 책장. 김의 사무실과 인형의 방이 바로 옆방은 아니었지만 괜시리 기분이 찝찝한 켄지였다.
"……."
켄지는 조심스레 소리에 귀 기울이며 천천히 그 미닫이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고 안에서는 계속해서 뭔가 크기가 있는 것이 쓸리듯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문제의 미닫이 앞에 도착한 켄지가 쭈구리고 앉아 미닫이를 열어볼까 말까 망설이며 손을 뻗었다가 멈추었다.
"……."
아무래도 안여는게 낫겠다고 판단한 켄지. 쓸데없이 호기심 발동해봤자 고생만 할것 같았기에 그가 다시 물러나려고 하는 순간에 오히려 미닫이가 덜컥하고 열렸다.
"……."
"……."
그리고 켄지는 정말 기괴하게 생긴 어떤 여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거친 회색의 머리를 너구리 얼굴 악세사리가 달린 양갈래로 묶었으며 오른쪽 뺨과 목과 양어깨와 겨드랑이 사이로 바느질이라도 한듯이 실이 기워져있었고 왼쪽 눈주변이 검게 물들어 있으면서 붉은 안광만은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창백한 소녀. 일단 여자라던가 소녀라고 칭해보지만 살아있는 사람이긴 한건지 그 의문이 드는 존재는 어깨끈이 없으면서 상체에 딱 달라붙는 흰색 면티에 서로 짝이 안맞는 팔토시를 착용했으며 짧은 핫팬츠를 착용했으나 다리는 전부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다.
무엇보다 위험하게 눈에 띄는 특징이라면 허리벨트 등뒤에 달린 주머니에서 동력을 동급받는 이상한 핸드드릴과 품안에 가지고 있는 잘려나간 이빨 뾰족 양눈 엇갈 인형 머리.
"이게 뭐야……."
분명히 당황했음에도 신변에 위협을 느낀 켄지는 필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고 그 이상한 존재는 미닫이 밑에서 기어나와 한손에든 핸드드릴의 전동 회전소리를 몇초간격으로 울려대며 켄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잠깐! 김씨!! 김씨!!"
켄지가 외치며 구석으로 점점 몸을 피하다가 뭔가 집어던질 것을 찾아보았으나 정말 꾸며진것 따위 없는 검소한 사무실이었기에 최소한 그가 서있는 주변에서 던질만하거나 무기로 삼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눈앞의 존재가 일단 사람인지, 한국 정부소속인지 진짜 이상한 요괴나 다른 존재인지 파악도 안되는데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애매했다.
"저기요!! 김씨!! 여기 지금 이상한게 있어요!!"
켄지는 크게 소리치며 방에서 빠져나가보려고 했으나 그 이상한 존재가 그의 앞길을 계속 가로막았기에 방의 가장 구석으로 몰릴수 밖에 없었다.
"자, 잠깐!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한국정부소속이시죠?!"
"……."
켄지의 물음에 전혀 반응도 없이 드릴 소리를 계속해서 울리며 다가가는 존재에게 켄지가 다시 소리쳤다.
"아, 그! 저는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저기요? 일본어는 할줄아세요?"
"……."
"저, 여기 도움주러 왔어요. 츠이시 가문! 대한민국! 같은 편! 나,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필사적으로 손짓발짓하며 바디랭귀지를 구사해 보았지만 그 존재는 이미 켄지의 코앞까지 와서 그의 얼굴 앞에 'DOLL MAKER'라고 적힌 핸드드릴을 울리며 들이댔다.
"호, 혹시 아메리카? 어쨌든 우리 우방국이잖아요……제발…우린 같은 편이라구욧……."
발음도 제대로 못하고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가만히 굳어있는 켄지의 머리 옆에 자신의 손에 들린 인형 머리를 가져다대고 크기를 비교해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고 그대로 무표정하게 물러서더니 김씨의 책상 밑의 도구함 같은 곳을 좀 뒤지다가 다시 미닫이 밑으로 기어들어가곤 미닫이를 닫고 사라졌다.
"……."
뭔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상황속에서 당혹감에 휩쌓인 켄지의 얼굴 옆으로 땀 한방울이 흘러내릴 쯤 김 당당관이 밝게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하하, 다른 방에 있었네…요? 근데 왜 구석진 곳에 서있으세요?"
"제가 얼마나 김씨를 불렀는지 아세요?!"
"예? 아…이 방이 생각보다 방음이 확실하답니다. 아하하하."
"혹시 여기에 저희말고 다른 사람도 있나요?!"
"아? 아…없어요. 없어. 저희 둘만 있어요."
김씨는 누가봐도 부자연스럽게 부정하며 휠체어를 내밀었고 켄지는 그것의 손잡이를 잡으면서 물었다.
"진짜로 진짜 이상한거 없어요?"
"에이~ 기분탓이에요. 요즘 현실과 꿈이 구분 안된다면서요. 환영이라도 보신거 아니에요?"
"……그, 그런가…. 근데 진짜 뭔가 이상한게 있어보였어요. 살아움직이는 시체 같기도 하고 인형 같기도한 엄청 기분 나쁜 뭔가가……."
"앙몰랑~ 그런게 어딨어요. 아, 지구 어딘가에 실존하긴 하는데 그런 것들이 지금 이 건물 안에 있을리가 없잖아요."
"……."
근데 정말로 꿈과 현실의 경계가 조금 모호한 켄지는 고개를 살짝 흔들면서 정말 자기 머릿속이 이상한건가 생각해보았고 김씨는 애써 미소 지은채 그에게 휠체어를 주며 얼른 그를 건물 밖으로 보내면서 말했다.
"너무 걱정마시고. 집에서 좀 쉬세요. 혹시 방금 본것 같은것은 헛것이 맞으니까 신경쓰지 말구요."
"아, 네…요즘따라 좀 힘드네요. 휠체어 감사합니다. 잘쓸게요."
"원래 이 건물에 있던건데요 뭐. 오늘 정보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휠체어를 가지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켄지를 확인한 김은 재빨리 인형들이 가득한 방안으로 향한 뒤 문을 열었고, 목 없는 구체관절 몸에 전혀 안어울리는 머리를 끼우고 있는 존재에게 다가서 말했다.
"인형사 괴물씨. 내가 캐리어 안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
"이 골칫덩어리를 내가 왜 일본까지 가져왔지……. 하긴 한국에 놔뒀으면 더 심각해졌겠지……하아~"
인형사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채 김씨를 올려다볼 뿐이었고 김씨는 불길하다는 듯이 그 소녀를 커다랗고 검은 캐리어 안에 잡아넣고 잠궈버리려다가 잠궈지지 않은 틈새를 바느질 자국이 있는 손가락으로 벌리고 밖을 바라보는 인형사 소녀의 눈을 애써 무시한채 마저 닫아버리고 한숨을 내쉬고는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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