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 - 몽환의 협곡 - 52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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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매우 넓은 공간의 돔 야구장과 같은 나무 골격에 창호지로 만들어진 장소에 수많은 촛불들이 놓여져있는 은은한 분위기 속에서 몽환술사가 할말을 잃은듯이 서있었고 그녀의 뒤, 저멀리에 박하현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서있을때 그옆으로 코우사카 안즈가 미소 지은채 지나치려하자 하현이 말했다.
"언제왔어?"
"방금. 개꿀잼각인데 바로 와야지."
"요이는…잘있어?"
"너무너무 잘지내니까 넌 신경쓰지마."
"……."
하현이 뭔가 아쉽다는 듯이 있다가 안즈에게 말했다.
"이래도 괜찮을까."
"이제와서 왜?"
"그냥 찝찝하니까. 이런거 위험하고 힘들어."
"우린 더 잃을것도 없잖아. 저 멍청한 년이 기꺼이 하겠다는데 말리진 말자고. 잘되면 개이득이고 안된다쳐도 본전이야."
안즈가 몽환술사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할 무렵 거대한 공간의 중앙을 향해 다가간 몽환술사가 말했다.
"하얀 실에 의해 맺어진 계약으로, 내게 츠이시 요이의 정수를."
그러자 투명한 공간에 밝은 빛을 내는 거대한 구체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몽환술사가 식은 땀을 흘리며 미소지었다.
"드디어…드디어 도착한건가. 더 이상 버틸 수 없기 전에 빨리 일을 끝내야겠어."
점점 지상으로 내려오는 구체를 보며 몽환술사가 자신의 초록색 망토옷을 벗어던지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무렵, 구체의 외부에 창호지가 발라진 옛 여닫이 문이 나타났다.
"……."
그 안에는 자리에 앉아있는 듯한 츠이시 요이의 검은 실루엣이 촛불의 빛에 비추어져 아른거리고 있었는데 몽환술사는 조심스럽게 여닫이 문의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문고리에 손이 닫기 직전에 안에 있던 검은 실루엣의 고개가 틀어져서 몽환술사를 응시했다.
"읏…."
조금 놀라서 움찔한 몽환술사가 의미없이 침을 한번 삼킨 뒤에 문고리에 손을 대는 순간, 문고리에서부터 순식간에 거대한 구체가 검게 물들어버렸고 그 주변에 있던 창호지로 만들어진 구조물들도 어둡고 칙칙하게 변해버렸다.
당황한 몽환술사가 주변을 휙휙 돌아보고 있을때 몽환술사와 눈이 마주친 하현이는 조용히 어둠속으로 뒷걸음질쳐서 사라져버렸고 안즈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긴장한 그녀가 몇몇 촛불만이 겨우 켜져있는 어둠 속에 가만히 있다가 들은 것은 점액질과 같은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는 소리. 그것들은 높은 천장, 혹은 검은 하늘에서 비와같이 떨어져 내리거나 벽을 타고 내리면서 남아있는 촛불들을 검게 물들여버리기 시작했으며 검게 물든 정수에서는 점액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끈적거리며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점액이 떨어져나간 곳에서는 약간의 빛이 새어나오다가 위에서 떨어진 다른 점액에 빛이 막히며 주변은 빛이 사라졌다가 부분적으로 새어나왔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되어간다는 사실을 인지한 몽환술사의 눈앞엔, 바닥에 떨어진 검은 점액들 사이에 뭔가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
온통 검은색이었지만 외형은 사람같이 생겼다.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전에 빛이 사라져버렸다.
다시 빛이 새어나올 무렵 그 검은 외형이 츠이시 요이의 실루엣과 같다고 느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빛이 사라졌다가 나타날때마다 그 검은 형체는 몽환술사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뭔진 몰라도 일단!!"
몽환술사는 이를 악물고 달려서 창호지로 된 여닫이 문을 박살내며 정수 안으로 들어갔고 그 순간 주변의 환경이 달라졌는데 어둠 속에서 등불 하나를 켜놓은채 책상 앞에 앉아있는 츠이시 요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뒷모습이지만 지금보단 어려보였다. 온몸엔 감긴 붕대와 피로 물든 전투복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있고 난 뒤 인것 같았는데, 츠이시 요이는 뭐라고 계속해서 속삭이고 있었고 뭔가를 열심히 글로 쓰고 있었다.
몽환술사가 조용히 그녀를 향해 다가가며 귀를 기울여도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다. 이윽고 몽환술사가 요이의 옆에 도착했을 무렵, 츠이시 요이는 양눈에서 피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자신의 일기장에 정신없이 같은 글자만 반복해서 쓰고 있었다.
「하현이가 죽었다. 하현이가 죽었다. 하현이가 죽었다. 하현이가 죽었다. 하현이가 죽었다. 하현이가 죽었다……」
"……."
일기장에 한가득하게 채워져가는 글들을 보며 몽환술사가 심오한 표정으로 츠이시 요이를 바라봤을때 요이의 알수없이 속삭이던 입이 멈추었고 요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몽환술사를 응시한채 말했다.
"하현이도 죽었어요."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 한줄기의 피눈물이 흘러 턱끝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순간 몽환술사의 주변이 흘러내리는 핏줄기들과 같이 일그러지며 사라지더니 주변을 다시 인식했을땐 정수의 밖, 어두운 공간에 몽환술사가 서있었다.
그리고 함께 있는 것은 날카롭게 뻗어나가는 듯한 손을 가진 검은 형체의 요이. 무언가.
은연중에 느끼길 인격은 전혀 달라보였다. 요이가 아니다. 츠이시 요이씨라고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다만 쳐다보고 다가올뿐. 어느 순간 주변은 인외마경 그자체로 썩어들어가는 츠이시의 친구들 시신들과 여기저기 꽂혀있는 보우건 화살들, 그리고 상처입은 생물의 몸통 조각이 돌아다니는 가운데 기괴한 몸짓으로 서있던 요이와 생긴 그것은 소환술사를 향해 비틀거리며 빠르게 다가온다.
몽환술사는 순간적으로 겁에 질렸으나 정수가 있는 공간이기에 어떻게든 그것을 통제하려고 했다.
혹시 자신이 그토록 찾던것이 바로 이것인가? 이것이 그 저주, 츠이시 가문의 머릿속인가? 하지만 불완전 면역자인 자신이 통제 따위 가능 할리가?
여러가지 의문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몽환술사가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고 있을 무렵, 겨우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아탄 김 담당관이 통신기에 대고 한국어로 외쳤다.
"지금 나도 그곳으로 출발했어. 미정, 진입해!"
『라져 라져.』
"우선 보호대상은 알지? 나마루씨는 나중에 챙겨도 괜찮아."
『물론이죠.』
기다렸다는 듯이 미정이가 레펠링을 하며 밧줄을 잡은채 건물 벽을 두다리로 살짝 밀치고 걸으며 하강했고 츠이시 요이의 방의 창문에 도착한 그녀가 안을 봤을때, 조용히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있는 몽환술사와 그 앞의 술식진 위에서 발작을 일으키고 있는 츠이시 요이가 보였다.
"……."
미정은 조용히 창문을 열려고 했으나 고리가 걸린채 꼼짝도 안했기에 별수없이 한손을 손수건으로 최대한 감싼 다음 단검을 뽑아들고 단검 손잡이 부분으로 조심스럽게 유리창의 모서리를 내리찍었고 다행히 유리조각이 멀리 튀지는 않았기에 무사한 요이를 확인한 후, 깨진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창문 잠금고리를 재껴서 해제하고 옆으로 밀어 열고 조심스럽게 전투화로 착지하며 방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즉시 단검을 잠들어있는 몽환술사의 목에 갖다댄 상태로 통신했다.
"몽환술사, 확보완료. 어떻게 할까요?"
『저항은 없었니?』
"그냥 계속 잠들어있어요. 요이 언니만…고통스러워 보이네요."
『그대로 기다려.』
"근데…혹시 요이 언니가 정말 죽을 것같이 심하게 발작하거나 몽환술사가 담당관님 오기전에 깨어나면 어쩌죠?"
『……그건 그 상황이 오면 지시를 내릴게.』
"…라져."
미정이 무거운 표정으로 잠든 몽환술사의 목에 칼을 댄채 내려다보고 있을 무렵, 몽환술사는 검은 점액질에 온몸을 붙잡힌채 요이를 닮은 무언가의 손에 자신의 창자가 붙들려있는 것을 보았다. 겁에 질려 소리지르고 발버둥 치려하며 살려달라고 빌어본다. 이미 꿈속 이라는것은 잊어버렸고 비명을 질러댈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녀의 목을 뜯어내 떨어뜨린다. 모순 되게도 뜯겨져나간 머리가 의식이 또렷했고 말도 나온다.
"하지마, 안돼……."
요이를 닮은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해체하고 있었다. 내장을 하나둘씩 들어올리며 특히 간이 이쁜듯 들어올려서 감상을 하더니 검은 모습으로 씨익 미소를 짓더니 계속해서 몽환술사의 온몸을 찢는다
"그만해!!"
몽환술사의 외침에 무언가가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가간다. 겁에질려 소리쳤으나 그것은 몽환술사의 머리를 집어들고 웃어보였다. 그리고 말없이 입을 움직였다.
「맘에 들어.」
그 순간 몽환술사가 의자 위에서 눈을 떴고 자신의 몸을 보고 배와 가슴을 만져본 뒤, 고개를 뒤흔들고 주변을 보았다. 켄지 여동생의 방.
"다행이다. 빠져나왔어……."
하지만 너무나 불길했다. 지시와는 다르게, 츠이시 요이를 죽여야 한다고 그녀는 직감했다.
'이 가문은 사라져야한다. 이런게 존재해선 안돼.'
츠이시 요이를 죽이기 위해 권총을 뽑아들려고 하던 그녀는 문득 깨닫는다. 자신 앞에 누워있는 츠이시 요이가 미소 지은채 자신을 지켜보고 있고, 입모양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아직 정신 못, 차렸네.」
"아직, 협곡 속?!"
몽환술사는 급히 요이와의 연결된 하얀 실을 끊으려고 했지만 끈을 끊었다고 생각한 순간 어느새 공간은 어릴적 살던 자신의 방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늦었다. 이젠 나에게로 들어오고 말았…. 말도 안돼 일방통행인데…. 보고있어 뒤지고 있어 먹고있어. 이대로 있으면 위험해, 도망, 강제로 끊……."
그 순간 필름이 끊겨나가듯 뚝하는 소리와 함께 자아 자체가 날아가버린 몽환술사가 현실에서 찢어질듯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고 깜짝 놀란 미정이 제압하려 했으나 정신이 나가버린 몽환술사의 능력이 폭주하며 미정도 환영에 휩쓸리고 말았다.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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