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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 - 몽환의 협곡 - 53

레이븐울프 2018. 5. 14. 17:29

혼(魂) - 몽환의 협곡 - 53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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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건 도대체……."


  분명히 츠이시 요이의 방안에 있었던 미정의 시야엔 자신이 하얀색 테마로 깔끔한 인테리어를 한 유럽 화장품 가게 중간에 서 있다고 느꼈다. 다만 고요한 배경과 다르게 몽환술사가 방안에서 미쳐 비명지르며 날뛰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기에 미정은 우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단검을 칼집에 넣는 동시에 조용히 앉아서 현재 위치를 유지한채 통신기에 손을 댔다.


  "담당관님, 저 아무래도 환영술에 걸린거 같아요."

  『뭐?! 괜찮니?』

  "환영술에 걸렸다고 판단된 순간 그냥 그 위치를 고수하고 있어서 제가 방의 어디쯤에 있는지는 알아요. 지금 몽환술사는 방안에서 난동부리면서 뛰어다니고 있고 요이 언니는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어요."

  『몽환술사가 느껴지는거야?』

  "시각만 환영술에 걸렸지, 제 모든 감각은 통제 못했어요. 촉각, 청각, 후각 모두 멀쩡해요."

  『그럼 최대한 빨리 빠져나와! 거기 있다가 너까지 몽환술사에게 죽을 수도 있어!』

  "제 생각인데, 그 사람 지금 완전 미친거 같아요. 물론 앞이 구분 안되는데 미쳐 날뛰는 사람이랑 방안에 같이 있는게 권장되는 사항은 아니긴 하죠."

  『츠이시씨는 어떤거 같아? 혹시 알수있겠어? 무리하지는 말고.』

  "잠시만요."


  미정은 눈을 감은채 앞으로 손을 조심스럽게 더듬었고, 요이의 몸을 만져보았다.


  "오, 발작이 멈추었어요."

  『그래? 다행이네. 문제는 같이있는 몽환술사인가.』

  "네, 그렇…꺅?!"


  몽환술사가 미쳐 내달리다가 앉아있는 미정과 부딪치며 지나갔고 바닥에 쓰러진 미정이 재빨리 자세를 바로 잡았다.


  『미정아! 괜찮아?』

  "네, 부딪친거 뿐이에요. 근데 저러다가 요이 언니 다치면 어쩌죠? 몸도 안좋은 사람이 밟히면 안될거 같은데."

  『하지만 너도 지금 상태가 안좋잖니. 내가 갈때까지 기다려.』

  "제압 지시를 내려줄순 없어요?"

  『…가능하겠어?』

  "지시만 내리시죠."


  택시 안에서 몇초간 고민을 한 김 담당관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화를 시도해봐."

  『…….』

  "대화와 타협! 폭력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거야 미정아."

  『저기…지금 미친 사람이랑 같이 있다니까요.』

  "아니야! 몽환술사라는 명칭 자체가 들어보면 딱 느낌이 엄청 문학적인거 같지않니? 분명……."

  『지금 여긴 엄청 진지……윽?!』


  몽환술사의 무릎에 머리를 부딪쳐서 다시 한번 쓰러진 미정이 말했다.


  "지금 저 인간이 정신을 차리거나, 무기라도 들면 여기 사람 다 죽어요."

  『정신을 차리면 그때야 말로 대화를…….』

  "아씨 진짜. 됐고, 저만의 훌륭한 대화수단을 사용하겠습니다."


  미정은 조용히 뒤로 물러나며 벽까지 움직이다가 책상에 자신의 몸이 닿는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순간 미정의 머릿속에는 이 방안의 모든 구조에서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가 확실히 정해졌고,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는 몽환술사가 어딨는지도 짐작이 왔다.


  "시야는 거들뿐, 구조만 알면 움직이는건 아무 문제없어."


  그리고 단검을 뽑아든 미정은 소리를 지르는 몽환술사를 향해 눈을 감은채 달려들어서 왼손으로 우선 멱살을 휘어잡았고 단검으로 허벅지를 찌르려고 했으나 정신이 나가서 그런지 의외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몽환술사 때문에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엉뚱한 곳을 찌른것 같았다.


  "앗? 어딜 찌른거지?"


  하지만 미정의 말이 끝나는 순간, 정신적 파괴에 이어서 엄청난 육체적 고통이 동반된 몽환술사와 단검을 통해 연결된 그대로 미정의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문제가 생긴것을 직감한 미정이 몽환술사에게서 손을 놓은 뒤 바로 통신을 했다.


  "담당관님! 저, 의식이 점점…."

  『미정아?』

  "흐려…지…."

  『미정아! 정신ㅊ…….』

  "……?!"


  미정은 자신도 모르게 물속에서 눈을 떴고 정신없이 헤엄쳐서 수면 위로 올라간 다음 주변을 보았다.


  "푸하! 여긴 또 뭐야?"


  흘러가는 물살에 휩쓸리며 안개 속을 바라보며 미정이 식겁했다.


  "뭐야 감각까지 지배 당한거야?! 미쳐버려!"


  하지만 곧 들려오는 폭포소리에 오히려 표정이 더 굳었다.


  "안돼…이보다 더 나빠지면 안돼!!"


  필사적으로 옆으로 헤어치려고 하던 미정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고 가만히 멈추었다.


  "그래. 이게 환각이라면, 가만히 있어야해. 분명 현실에선 방안에서 수영하려고 난리치는 안습한 모습이겠지. 가만히…현재 위치를 고수."


  그렇게 평온히 물살에 몸을 맡기며 흘러가는 미정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하냐."

  "……."


  슬쩍 눈을 떠본 미정의 눈앞에 포니테일을 하고 교복을 입은채 한손에 핸드폰을 든 인물이 안개가 낀 바위 위에 서있는 것이 보였고 미정은 의도적으로 그것을 무시했다.


  "환영에 시달리니 별게 다 나오네."

  "너 뭔가 잘못 아는거 같은데. 네가 날 만났다는건 환영이랑은 다른거야."

  "시끄러. 난 그런데 휘둘리지 않아."

  "이년 성격 있는거 봐라?"


  코우사카 안즈가 미소 짓더니 순식간에 미정이를 건져서 자기 옆에 두고 말을 이었다.


  "맘에 드네. 생긴걸 보니…중학생?"

  "뭐야 언제 건졌어?!"

  "방금."


  미정은 기겁을 한채 다시 현재 위치를 고수하려고 앉으며 말했다.


  "나 건들이지마! 현실에서 다치면 안된단 말이야."

  "……뭐, 여기서 뭘하든 현실에서 니가 움직이진 않을걸. 잠꼬대라도 하면 모를까. 혹시 몽유병 있어?"

  "아니, 그럼 여기가 어딘데?"


  그말에 안즈가 피식 웃더니 미정이를 데리고 절벽 끝으로 가서 점점 사라지는 안개들 앞에 나타난, 검게 물들고 실시간으로 썩어들어가는게 보일 정도로 끔찍한 장소를 보며 말했다.


  "몽환의 협곡…이었던 곳."

  "뭐야? 여기? 극혐인데."

  "솔직한 말로 내가 묻고싶은 바야. 지금 여긴 몽환술사라는 녀석의 정신속이거든."

  "뭐?! 내가 그 사람 정신속이라고? 기분 나빠!! 현실로 보내줘!"

  "가기전에 영화 한편보고 가자고."


  무슨 소린가 싶은 미정의 주변이 변하며 바닥에서 영화관 의자가 나타나더니 앞에 스크린이 나타나는등 기겁을 하던 미정이는 어느순간 영화관 의자에 앉아있었다.


  "엄마야…이거 진짜 현실은 아닌가보네."


  그리고 그옆에서 3D 안경을 쓴 안즈가 팝콘을 내밀며 말했다.


  "먹을래?"

  "아니아니, 근데 넌 누구고 이 영화는 뭐야?!"

  "난 코우사카 안즈. 이 영화는 인생이라는 영화. 넌 누군데?"

  "미정."

  "재미없는 이름이네. 그래도 성깔은 맘에 든다 너."

  "그보다 날 여기서 내보내줘!"

  "내가 나갈때 같이 나갈거니까 구경 좀 하자고. 시간 좀 남았으니까."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었고 몽환술사의 삶에서 유달리 각인된 기억의 필름들이 단편적으로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몽환술사는 평범한 학생 같았지만, 자신의 꿈을 꾸기 위해 항상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들려고 했던 어린시절과 하나 있다는 친언니는 갸루 스타일을 하고 동네 오락실과 업소에서 패거리들과 몰려다니는 불량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 언니라는 사람은 몽환술사를 항상 잔인하게 괴롭혀왔고 자신이 노는데 필요한 자금도 갈취했었기에 그녀에 대한 증오가 쌓여만 갔으며 그럴수록 더욱 꿈속으로 가서 자각몽에 의지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필름이 더 빨리 감긴다. 스크린의 모서리 부분들이 조금씩 검게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자신의 친언니를 수십, 수백번은 넘게 죽이며 살던 그녀는 어느날 정신을 차렸을때, 꿈인줄 알고 저지른 일이 현실임을 알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모까지 살해해버렸기에 교정시설로 보내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도 그녀는 잠을 통해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문제는 그것이 같은 방에 사는 이들의 정신에 이상을 일으키게 되었고 독방을 쓰는 상황까지 가고 만다.

  필름이 더 빨리 감긴다. 스크린의 썩은 부위들이 점점 더 커져갔다.

  그러던 중 운명의 장난인지, 특이한 수용자에 대한 보고를 받고 온 정부측 인사담당자의 눈에 띄어 그녀가 가진 꿈속 세계라는 것이 평범한 사람의 망상을 벗어난 무엇이 있음을 직감한 뒤, 정부시설로 이송되게 되고, 그 순간부터 기존에 존재하던 기록은 대부분 말소된다.

  조건은 간단했다. 가치를 증명하고 살아남거나 폐기되거나.

  몽환술사는 그것이 싫었다. 자신은 원하는 꿈을 꾸고 싶을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높은 담벼락과 사수가 배치된 감시탑 아래에서 살게 되었던 것. 몇년간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며 몽환술사는 노력을 했지만 혼자서 꿈을 꾸는것과 주변인들의 정신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에서 전략적 가치를 크게 느끼지 못해 폐기 처분의 위기가 왔을때 그녀에게 한번 더 기회가 왔다.

  중년의 검은 수염이 있는 자위대 자위관 중에 한명이 그녀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줘보자고, 그전까지 자기 휘하에서 훈련을 시키면서 한명 몫은 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몽환술사는 그 자위관을 위해 목숨을 걸고 온갖 훈련을 받아서 1년 뒤에는 하나의 완성된 자위대원이 되어있었다. 특수능력이 즉각적인 효력의 가치가 없더라도 병기를 다루는데 있어서 충분히 1명 몫을 하게 되었기에 폐기 취소 처분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날밤 몽환술사는 처음으로 그 장교와 함께 동침을 했다. 그리고 이불 안에서 함께 육체가 맞닿아 있는 동안, 그녀는 또 처음으로 상대방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몽환술사가 만들어온 자신만의 망상속 몽환의 협곡은 누군가의 정신속에서 실존하게 되었고 그 사람의 정신력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치를 가진 세상이 되어갔다. 누군가를 폐인으로도 만들 수 있었고 정신적인 문제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된것으로, 그뒤로 그녀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탐하고 분석하고 맛보았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자기 스스로의 죄책감 또한 완전히 죽여버렸다.

  그뒤로 화면이 빨리 감기며 묶여있고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상한 짓을 하는 몽환술사의 모습들이 이젠 화면 중앙까지 썩어들어가서 결국 완전히 없어져버렸을때 영화는 끝나버렸다.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