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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 - 몽환의 협곡 - 57

레이븐울프 2018. 5. 14. 17:31

혼(魂) - 몽환의 협곡 - 57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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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안도와 재회가 끝났다. 츠이시 요이가 눈을 뜨고 고개를 움직였을때 방안에 있던 나마루 켄지, 미정, 달달, 빵빵, 김 담당관 모두가 미소를 지었고 길었던 그녀의 꿈속 세상에서의 머무름이 마무리 지어졌다.

  폭발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일본 경찰과 구급대는 김 담당관의 연락을 통해 다시 복귀하였다. 하지만 한국팀이 켄지네 집에서 무언가를 했다는 점을 일본정부에서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었기에 앞으로 일본에서의 행동에 상당한 제약이 걸릴 수도 있게 되었다. 동시에 김 담당관은 한국에서 걸려온 상부의 꾸지람을 엄청나게 들었다. 긴급 증원 능력을 정말 급한 상황인지 아닌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용함으로서 순간이동 능력자로 인한 신속한 요원 전개능력에 대한 기밀사항이 노출됐을 수도 있었다. 상부층에선 경호요원 하나의 생명과 츠이시 가문 퇴마사, 그리고 민간인인 켄지의 생명보단 기밀유지가 더 중요하게 와닿았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말에 쉬고 있을때 업무 관련으로 비상보고를 받고 일본정부로 부터의 항의도 전달 받았기에 기분이 좋을리는 없었다.

  당직자가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은 문제였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 요원들이 한국 민가에서 폭발사고 및 소동을 일으킨다면 한국측에서도 당연히 항의할 부분이었기에 딱히 할말은 없었다. 책임 소재를 김 담당관에게 확실히 씌워둘 뿐. 덕분에 김 담당관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분량의 사유서를 작성해서 상부의 검토를 받고 일본정부측에서 제출하게 되었다.

  그래도 김 담당관은 괜찮았다. 모두가 살아있었으니까. 툴툴 거리며 풍선껌을 씹어대는 미정이가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동료들과 떠들고 있었으니까, 사유서 쯤이야 얼마든지 써줄 수 있었다.

  미정이가 풍선껌을 불어서 떠트리고는 달달이에게 말했다.


  "이야~ 근데 어쩌다가 딸x2이 오빠가 여기까지 온거래."

  "야!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에에~ 누가 요원명을 그따구로 지으래요? 음란해 죽겠네 진짜."

  "머리에 피도 안마른게? 이건 말이다. 전공책을 달달 외울정도로 지식이 풍부한 동시에 아주 달달한 나이스~ 스윗~한 사나이라는 뜻으로 달달이라고 지은거라고!"

  "네, 세번째 의도는 딸x2이겠죠. 그냥 인정하세요."

  "이게 진짜?!"


  비록 몽환술사는 놓쳤지만 미정의 발언에 따르면 이미 정상인으로서 자각을 가지고 살아가는건 힘들거라고 했기에 굳이 문제가 될것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해가 뜰때까지 켄지네 집을 확실히 지키고 싶었지만, 일본 요원이 켄지네 집 주변에 파견되었다는 정보를 수신한 후 별수없이 사무실로 올 수 밖에 없었다. 나머진 일본정부에게 맡겨두는걸로.

  미정이가 빵빵이를 보며 말했다.


  "빵빵 언니~ 당분간 저랑 같은 속옷 쓰는 사이가 되겠네요. 사이즈 맞을까 모르겠네."

  "…응. 당분간 한국으로 돌아가긴 힘들거 같으니. 작으면 김 담당관님꺼라도 빌려야지."


  "더럽게 속옷을 왜 그래. 그냥 새로 사서 쓰면 안되냐? 국산에 집착증이라도 있어?"


  마지막에 끼어든 달달이의 말에 방안의 모든 여자들이 '모르면 닥치고 있어.'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달달이가 입을 다물었고. 미정이가 빵빵이에게 물었다.


  "근데 언니랑 오빠는 어떻게 온거에요? 김 담당관님이 증원에는 시간이 좀 걸릴거라고 했는데."


  그 말에 달달이가 대답했다.


  "니가 고등학생이 되면 알게 될거야. 아니 니 요원등급에서는 알거없어 이녀석아."

  "마침 방도 많으니까 딸x2이 오빠를 위한 방은 특별히 따로 마련해 드릴게요. 걱정마세요."

  "이게?! 난 한국으로 돌아갈거야."

  "우~ 왜요?"

  "내가 할일이 없기 때문이지. 빵빵이는 상부지시에 따라 화력지원으로 남게 됐고."

  "근데 빵빵 언니는 일본어 못하잖아요?"

  "괜찮아. 빵빵이가 반드시 말할 필요가 있을땐 주변을 초토화 시킬때 뿐일거니까. 일상적인건 니가 도와줘."

  "쳇."


  미정이가 입을 삐죽내밀었을 쯤, 열심히 노트북으로 사유서를 적던 김 담당관이 말했다.


  "자~ 그럼 여러분 이제 다 자러가세요. 오늘 고생 많았습니다."


  그말에 요원 셋이 일어나서 인사하고 나가려고 하는걸 김 담당관이 미정이만 따로 불러 세웠다.


  "에…사실 제일 고생한건 저 아니에요? 그냥 꿀잠자고 싶은데."

  "넌 사유서 쓰는거 도와야지. 현장의 상황을 네가 제일 잘알았으니까."

  "…그럼 담당관님의 통신유지가 안된 부분부터 시작하는건가요."


  그말에 담당관은 타자를 치던 손을 잠시 멈추었고 미정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나도 잘모르겠지만 통신기가 먹통이 될때가 있어."

  "장비 문제에요?"

  "아니…일시적인거 같은데. 원인은 나도 잘모르겠어."

  "헤에~ 생각보다 미스터리 투성이네요. 열도라는 곳."


  미정이가 다시 의자에 털썩하고 앉더니 김 담당관을 쳐다보았고 그녀가 진지하게 말했다.


  "미정아, 그럼 현장의 상황과 네가 몽환의 협곡에서 본걸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니?"

  "그곳에서 본거요?"


  미정이는 하현이를 떠올렸다가 씁쓸하게 미소지은 다음 담당관에게 말했다.


  "뭐랄까…인생이라는 제목의 재미없는 영화를 보긴 했죠. 아마 몽환술사의 과거에 대해 저만큼 아는 한국인은 없을걸요."


  미정이의 말이 끝날때쯤, 켄지네 집에선 난장판이 된 2층을 놔두고 1층으로 내려온 켄지가 미정이가 깨버린 창문을 임시로 비닐과 덕테이프로 봉하고 유리파편들을 치우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 이불을 끌어안은채 앉아있는 요이가 말했다.


  "오늘은 1층에서 자는거야?"

  "응, 별수없지. 2층은 현관도 날아가버렸고 창문도 깨지고 방이고 뭐고 모두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렸으니까."

  "흐응…다 나 때문이지?"

  "무슨 소리야. 그 몽환술사인지 멍환술사인지 이상한 사람 때문이지. 난 단지…최악의 상황이 되기전에 네 스스로 깨어나서 고마울 뿐이야."


  켄지가 거실 장식장 위에 올려둔, 네크로맨서 비스의 철제 주사기를 슬쩍 쳐다보았고 요이가 말했다.


  "하지만 난…몽환술사씨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

  "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좋은 일들이 있었어. 친구들을 만났고……모두가 좋았어. 무엇보다 지금 마음이 엄청 가벼워졌어. 몸도 안아프구."

  "좋은 신호인거같네."

  "응…뭔가 내 가슴 속에 응어리져있던 뭔가가 다른 어딘가로 가버린거 처럼. 완전 없어져버린거 같아."

  "다행이다."


  유리조각을 거의다 치운 켄지가 말을 이었다.


  "이제 이 주변도 대강 정리된거 같긴한데…혹시 유리조각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까 당분간은 슬리퍼 신고다녀."

  "응. 휠체어도 있으니까 괜찮을거야."

  "그래…. 그럼 우리도 잘까? 내가 소파 밑에 이불 펴고 잘게."

  "다른 방도 있지 않아?"

  "부모님 방은…그냥 예전부터 쓰고있지 않아. 만약 다시 돌아오시면 언제라도 두분이 편하게 주무셨으면 해서."

  "그렇구나. 잘자 켄지군."

  "너도."


  고개를 끄덕인 켄지가 거실불을 껐고 환영에 시달려서 피곤한 몸을 눕혔을때 그는 금방 잠들어버렸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켄지는 뭔가 계속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뜨며 부시시하게 몸을 일으켰다.


  "……."


  부엌에서 약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뭔가가 계속 달그락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켄지가 고개를 돌려 소파 위를 보자 츠이시 요이는 없었다. 하지만 휠체어는 그대로 있었기에 켄지는 말없이 퇴마용 카메라에 전원을 넣고 부엌을 향했다.

  그리고 부엌에 도착한 그 앞에는 열려있는 냉장고 밑에 앉은채 뭔가를 열심히 먹고 있는 츠이시 요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요이?"

  "읍!"


  순간적으로 뜨끔한 요이가 입에 음식이 가득한 상태로 뒤돌아보았고, 켄지가 말했다.


  "뭐 먹고 있어? 내가 오는것도 모르고 먹는데 엄청 집중하고 있던거 같던데."

  "아…그게……."


  요이가 얼른 입안에 든 음식을 삼키며 부끄럽다는 듯이 품안에 안고 있는 냄비를 숨기려 했으나, 켄지가 조금만 몸을 움직이자 냄비 안에 들어있는 밥과 야채들, 그리고 뭔지 모를 양념장들과 날계란같은 반찬들이 보였다.

  그것을 본 켄지가 말했다.


  "뭔가 얼핏보기엔 한국식 비빔밥 같네."

  "그, 한국인 친구한테 예전에 배운거야. 나…요리 같은거 잘못하니까. 그냥 따라해봤어."

  "그래? 근데 웬일이래 네가 죽말고도 다른 음식을 이 새벽에 먹구."


  그 말에 요이는 고개를 살짝 숙인채 더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갑자기…배가 너무 고파서 먹고 싶었어. 오늘 잠도 많이자서 잠도 안오는데 너무 배고픈거있지."

  "식탁에 앉아서 먹지."

  "네가 깰까봐…."


  그 말에 켄지는 피식 웃으며 숫가락 하나를 꺼내더니 요이 옆에 앉으며 말했다.


  "그럼 나도 한입 먹어볼까."

  "에에?! 맛 이상할지도!!"

  "앞으로 같이 살거면 어차피 서로 맛볼건데 뭘."

  "……."


  켄지가 한입을 먹어보고는 맨밥과 다른 반찬 몇개를 꺼내며 말했다.


  "조금 짜고 매운데. 밥 좀 더 넣고 반찬이랑 먹으면 맛있겠다. 나도 끼였으니 양껏 실컷 먹자구."

  "어, 더 먹어도 되는거야?"
 
  "옛부터 식욕있는 사람치고 아픈 사람 없다더라. 실컷 먹자구. 여기선 식량 아껴먹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먹고싶은 만큼 먹어."


  휠체어도 필요없는듯 요이가 두 다리로 일어났고, 켄지가 부엌불을 키곤 두사람이 마주 앉았다. 그는 무슨 강아지라도 되듯 열심히 밥을 먹는 요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랄까, 지금 너 좀 귀여울지도."

  "읍?"


  요이가 당황한듯이 얼굴을 다시 한번 붉혔고 켄지가 말을 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지만, 요즘따라 너의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보는거 같아."

  "그야 같이 지내니깐…."

  "그리고 나도 너에게 뭔가 해줄 수 있구나 싶기도 하구. 뭔가 츠이시 요이하면 날카롭고 예리하고 엄청난 느낌이 들었는데, 내 또래같은 면모도 보였어. 다르게 보면 내 또래 여자애들보다 더 순수한 모습도 보이고."

  "그거 칭찬이지?"

  "물론."


  켄지의 대답에 요이가 발그레 미소를 지었고 반쯤 비운 그릇을 앞에 놔두고 말했다.


  "켄지, 혹시 내 몸이 완전히 다 낫고 나서…같이 어디 좀 가줄 수 있어?"

  "어디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리고 네가 함께 가줬으면 해."

  "물론이야. 어디든 말하라구. 근데 중요한 일인가봐?"

  "친구를 만나러 갈거야. 그래서 예전에 못했던 일을 마무리 하고 싶어."


  아련한듯, 그리고 결심이 선듯한 표정의 요이를 보며 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