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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 - 몽환의 협곡 - 58

레이븐울프 2018. 5. 14. 17:32

혼(魂) - 몽환의 협곡 - 58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고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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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이시죠?"


  다음날 점심쯤, 경호원들과 함께 켄지네 집에 직접 도착한 츠쿠요미에게 나마루 켄지가 문을 열어주었다. 다만 몽환술사의 추천인인 츠쿠요미를 그닥 달가운 표정으로 맞이하진 않았고 그것을 안다는 듯이 츠쿠요미도 반가움을 표하진 않았다.


  "나마루씨.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이군요. 아무래도 제가 직접 설명해드려야 할게 있는것 같아 왔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래도 '높으신 분'중에 한명인 츠쿠요미가 일방적인 통보를 하지않고 직접 왔다는 것은 그녀 나름의 성의라고 보였기에 켄지는 1층 거실의 탁자로 그녀를 안내했고 그곳에서 츠이시 요이를 만났다.


  "츠쿠요미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요이, 잘지냈어?"


  츠쿠요미에게 '님'이라는 존칭을 붙이는 요이나 그에 친근하게 화답하는 츠쿠요미를 켄지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그 둘은 진심으로 서로를 반가워 하고 있었다.

  경호원들은 집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켄지가 차를 내오는 동안 츠쿠요미가 요이에게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예뻐지는거 같구나 요이. 지금도 건강해보여서 다행이야."

  "저야 츠쿠요미님 덕분에 언제나 잘지내죠. 그간 여러가지로 일에 휘말리기도 했지만…지금은 몸이 점점 건강해지는거 같아요."

  "내가 생각한 대로인거 같아. 기분이 좋은걸."


  오직 켄지만이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차를 세잔 놔두고 요이의 옆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얼굴을 츠쿠요미가 망에 가려진 눈빛으로 슬쩍 보고는 말했다.


  "나마루씨. 아마…궁금한게 많으실겁니다. 특히 몽환술사에 관해서요."

  "네, 도대체 그 사람은 어떻게 된거죠? 정확히 뭐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확실한 처벌을 원합니다."

  "이정도면, 만족하시나요."


  츠쿠요미가 사진 필름 한장을 테이블 위에 손으로 스윽하며 올려놓았고 그 사진 안에는 목이 잘린채 머리채가 잡혀있는 몽환술사의 머리가 확대되어 있었다.


  "윽."


  켄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고 요이도 표정이 그닥 좋지는 않은 가운데 츠쿠요미가 말했다.


  "아무래도 제 지시를 어기고 엄한 짓을 하려고 한것 같은데…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자라면 그럴거라고 생각했죠. 나마루씨에겐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지만 모든게 제 의도대로 흘러갔다고 말해드리고 싶네요."

  "몽환술사가 요이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고 계셨다구요?"

  "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요이를 건강하게 만들 최단경로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요이의 내면에 있던 그것이 뭔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것은 이제 몽환술사의 내면으로 옮겨갔으니까요."


  츠쿠요미가 양손을 가슴앞으로 모으다가 꽃봉오리가 열리듯 손을 슬쩍 열자 켄지에게 뭔가 영사기가 돌아가는 듯한 느낌의 소리와 함께 녹화된 영상과 같은 것이 보였는데, 그앞에는 코우사카 안즈와 그 앞에서 좌절한채 무릎꿇고 앉아있는 몽환술사가 있었다.

  그들의 대화소리가 노이즈가 낀 잡음과 같이 들려왔다.


  『나에게 어째서 이러는거야! 너도…너도 츠이시씨를 괴롭히고 싶은거 아니야?! 어서 내 내면에서 나가!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츠이시씨를 어떻게든 할수있어. 정수까지 도착했단 말이야!』

  『너…뭔가 착각한거 같은데 말이지. 내가 왜 이러냐면…….』


  안즈가 비아냥 거리며 몽환술사를 흘겨보며 잠시 여운을 남기더니, 말을 이었다.


  『츠이시 요이를 괴롭힐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오직 나만이, 나니까 할수있는거라고. 네년 따위가 츠이시를 계속 괴롭히게 놔둘거 같아?』

  『그런…….』

  『그러니까. 잘가라구.』


  안즈가 뒤돌아서 검은 안개속으로 사라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요이 모습의 검은 형체이자 손톱이 칼날과 같이 길게 늘어져있는 것이 몽환술사에게 달려들었고 그녀의 비명소리가 들리며 영사기는 멈추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 원래의 시야로 돌아온 켄지가 깜짝 놀란듯 츠쿠요미를 바라보자 그녀가 웃으며 답했다.


  "방금 본걸로 어느정도 설명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오히려 이해가 안되는거 같은데요. 이상한것들만 잔뜩……."

  "네, 이해하기 힘들겠죠. 하지만 요이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더 이상 자세한건 모르는게 좋을지도."


  켄지와 츠쿠요미의 대화 사이에서 요이만 의문을 가득 표하는 표정이었고, 켄지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결국 저 검고 이상한걸 옮기기위한 미끼로 몽환술사를 던진거라는건가요. 처음부터 그게 의도였고?"

  "잘아시네요."

  "왜 처음부터 말 안해주셨죠?"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확실한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상당히 높은 가능성으로 성공할 수 있었기에 제가 슬쩍 제안해봤다고 하고 싶군요. 제가 왜 하필 불완전 면역자인 몽환술사를 보냈을까요? 나마루씨 당신과 같은 완전 면역자가 아니고요."


  어차피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거라는것을 잘아는 켄지는 입을 다물었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이 츠쿠요미의 손바닥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몽환술사도 버려지는 카드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도 모르게 몸에 소름이 돋았다. 몽환술사가 분명히 허튼 짓 할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알았기에 오히려 불완전 면역자로서 한 행동들은 피하기 힘든 파멸을 부를 것이고 그것이 곧 요이의 구원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까지 생각해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츠쿠요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뭐, 애초에 폐기될 인물이었다는걸 생각해보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폐기요?"

  "이런, 쓸데없는 말까지 해버렸군요.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츠쿠요미가 자신의 입을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가리며 말을 했고 요이가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전 몽환술사씨가 제게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목이 잘려서 죽을 정도로 죄를 지었다곤 생각안해요. 그녀 덕분에 전 한층 더 내면적으로 성숙해졌어요. 이때동안 숨겨왔고 피하기만 해온 저의 잘못들, 죄악, 죄책감들을 직접적으로 마주했다고 생각해요."

  "요이. 걱정마렴, 그녀는 아직 살아있으니까."

  "……네? 목이 잘렸잖아요."

  "그래도 살아있단다."


  츠쿠요미가 묘한 미소를 보였고 요이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감당하지 못하고 썩어버린 정신속에서 살아있는 감옥으로서 존재할 뿐이지만. 생물학적으론 살려놨다고 해야겠네."


  결국 몽환술사 스스로도 자신이 이때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온 것처럼 '일단 살아는 있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였지만 그런것을 잘모를 아이들에게 츠쿠요미는 더 이상의 말을 아끼기로 하며 차를 살짝 한모금 마신 다음에 말했다.


  "나마루씨, 그래도 저 혼자서 위험한 처방을 내린 셈이니 작은 보답으로 집수리 비용은 제 사비로 처리하도록 하죠."

  "아…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합니다."

  "앞으로 우리 요이가 지낼 집인데 깔끔하게 해줘야죠. 완전히 건강해지면 말해주세요. 모든 절차를 끝내서 함께 학교에도 다니게 해드릴테니."

  "아, 알겠습니다."


  켄지가 고개를 끄덕였을때 요이는 앞으로 자신도 켄지와 함께 학교에 다닐 생각에 신이라도 났는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츠쿠요미님! 저도 한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물론.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며칠 뒤,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하늘을 한대의 중형 헬리콥터가 날아가고 있었고 그 뒤의 좌석에는 전투복을 입은 츠이시 요이와 등산복이지만 안전 장구류를 착용하고 퇴마용 카메라를 든 켄지가 타고 있었다. 다르게는 2명의 남성 정부요원이 바디슈트 위에 완전무장을 한채로 같이 타고 있었다는것 정도.

  나름대로 깊은 산속의 숲위에서 멈춘 헬기는 아래로 로프 2개를 내렸고, 하나의 로프에서는 요이가 다른 로프에서는 켄지가 요원의 보조를 받으며 하강했다. 다른 요원은 헬기의 위에서 총기를 든채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고 무사히 착지한 요원이 요이와 켄지에게 말했다.


  "제가 이곳을 확보하고 있겠습니다. 두분은 다녀오시죠. 혹시 위험하면 바로 신호탄을 쏴주세요."

  "알겠어요."


  요이가 대답을 하며 보우건을 꺼내들었고 켄지와 요이는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낮의 태양이 내리쬐는 가을의 숲속을 걸어가며 사주경계를 하던 요이도 몇분 뒤에는 보우건을 편하게 어깨에 걸쳐메며 말했다.


  "역시…그때와는 다르게 요괴들은 없나봐."

  "원래는 요괴가 많았어?"

  "엄청나게…엄청나게라고 밖엔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몇년전, 목숨을 걸고 내달렸던 그 길을 요이가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그러던 중에 나무에 꽂혀있는 낡은 보우건 화살을 발견했다.


  "하하…아직도 남아있네."


  요이가 한손으로 슬쩍 그 화살을 스치듯 만지며 지나갔고 켄지가 그뒤를 따르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살기위한 발악…이었다고 해야할까. 내게 오랜시간 동안 트라우마였던 장소…그곳으로 걸어가고 있어 켄지."


  여전히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그 뒤를 따르는 켄지와 요이가 어느정도 걸었을때, 그들의 앞에 구일본군의 벙커 해치가 나타났고 요이는 떨리는 몸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해치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오래된 쇠붙이의 마찰음이 들리며 해치가 열렸고, 그 안으로 한낮의 태양빛이 쏟아져 내려가는 아래, 사다리를 바로 밑에는 인간의 해골이 있었다. 반쯤 깨져나간 두개골과 바랜 핏자국에 낡다못해 닳아버린듯한 블라우스에 검은 리본이 묶여있었고 하늘색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하게 아직도 주변에 흩어져있는, 그리고 액정에 금이 간채 바닥에 떨어져있는 스마트 폰. 그곳으로 요이는 사다리를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어두운 벙커안에서 유일하게 조명과 같이 들어오는 햇빛 아래, 츠이시 요이는 반쯤 깨져나가고 완전히 썩어버린 두개골을 잡아들어 자신의 품에 안으며 속삭였다.


  "안즈, 늦게와서 미안해."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