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 - 몽환의 협곡 - 11
장르: 현대판타지, 퇴마
연령제한: 15세
글쓴이: 너구리햄스
<혼의 Ep5입니다. Ep1~4를 안보신 분들은 이해가 힘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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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불을 덮고 베개를 베고 잠들어있던 긴 생머리 상태인 이리 세이키가 어두운 방안에서 부스스하게 눈을 떴다.
잠시간의 침묵.
"……!?"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키곤 이불을 걷어내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휴…."
일단 몸에는 이상이 없다. 약간 구겨지고 주름진거 빼곤 교복을 입은 그대로 였고 그제야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어둡긴 하지만 암순응된 눈으로는 어느정도 사물이 살짝 보일 정도였다.
휠체어, 캐리어, 의자, 책상, 잡다한 상자들과 물건들.
몸에 이상이 없는 것은 다행이지만 도대체 자신이 어디에 있고 이 이불을 덮어준 사람은 누구인지를 알 수 없었다. 눈앞에 문 하나가 있긴하지만 열어보기도 망설여지고 핸드폰도 없어져버려서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그때 문 밖에서 뭔가 벌컥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어)담당관님!! 설마 보일러 끈거 아니죠!?"
세이키는 알아 들을 수 없는 말.
문밖에서 또 다른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좀 전에 껐는데?"
"에!? 어떻게 소녀가 씻고 있는데 보일러를 끌 수 있어요!!"
"다 씻은 줄 알고 껐었지."
"아직 덜 씻었거든요!?"
"발은 빠른 애가 씻는게 느릴줄은 몰랐지."
"아니 씻는건 좀 느긋하게 씻읍시다 네!? 보일러 좀 오래틀면 어디 큰일나요!?"
"나랏돈이라고 막 써도 되는게 아니란다. 예산을 아껴야지."
"아니! 아낄걸 아껴야지!! 감기라도 걸리면 우짤라고요!? 딴걸 아껴요 딴걸!!"
"그럼 오늘 점심은 간단하게 먹을까?"
"으아아아! 너무하시네!! 밥심으로 일하는거 아니에요!?"
한국어를 모르는 세이키가 듣기엔 뭔가 싸움이라도 날것 같은 분위기에 슬금슬금 물러나려는 상황에 자신의 방문이 벌컥 열리며 전등 스위치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어)어, 이 언니 일어났네."
"도, 도대체…누, 누구세요? 제가 왜 여기 있는거죠?"
세이키가 눈부심을 이겨내고 앞을 쳐다보았을때 얼마전 학교에 찾아와 켄지에게 말을 전하고 갔었던 미정의 모습이 보였다. 다만 샤워 타올로 몸을 가린채 자신의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고있는 상태였긴 하지만 아는 사람이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몰려오는 의문감. 그리고 곧이어 김이 나타났다.
"(한국어)에, 네가 데려온 여학생 일어났구나. 그럼 상황설명을……."
"(한국어)됐거든요. 그런건 옷 입으면서 제가 할게요. 그냥 이 언니꺼 까지 밥 좀 준비해줘요."
김은 상냥하게 상황설명 해주라고 슬쩍 말하며 세이키에겐 웃음을 한번 지어보이더니 방에서 나갔고 미정은 머리를 다 털어낸 수건을 자신의 목에 걸치곤 일본어로 말했다.
"많이 놀랬죠? 일어나보니 이상한 곳이라서."
"네…여긴 어디에요?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구요?"
"여긴 저랑 방금 본 어……그냥 여자분이 머무는 곳이에요. 뭐 건물자체가 워낙 낡고 으스스하다보니 어디 팔려온거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걱정마요. 그런건 아니니까."
뭐하는 사람이라고는 대답하지 않은 미정은 샤워타올을 벗었고 동시에 세이키는 기겁을 하며 깜짝 놀랐지만 미정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팔다리를 쭉쭉 피며 스트레이칭을 간단히 하며 말했다.
"여자끼리 왜 그래요. 씻고 나서 한번 쭉쭉이 해주는게 얼마나 기분 좋은데."
"하지만…너무 대놓고…."
"음, 그건 좀 그럴수도 있겠네요."
미정은 몸에 바디로션을 바르며 대답했고 세이키가 살짝 고개를 돌린채 물었다.
"저기…제 핸드폰은 어디에 있나요?"
"언니, 기억 안나요?"
"어떤……?"
"흠~ 하긴 상황이 상황이었으니. 정신 못차렸을 수도 있겠네요."
바디로션을 다 바른 미정이 나신인 상태로 구부려 앉아 캐리어에서 속옷을 뒤적거리며 찾으며 말했다.
"일단 이건 확실히 말해두겠는데요."
찾은 속옷을 강하게 움켜진 상태에서 미정이 흘깃 세이키를 노려보며 말했다.
"절대로. 잘모르는 사람 함부러 따라가지 마세요."
"……."
세이키는 미정의 노려보는 시선에 움찔하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미정이 속옷을 입으며 말했다.
"그때 저 없었으면 언니는 지금쯤 남자친구분 다시는 못볼 이상한 곳…음~ 더러운 창고? 차 트렁크? 땅속? 하수구? 저승? 뭐~ 그런 영 가고싶지 않은 곳에 처박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뭐 여기도 낡은 건물이긴 하지만."
"무슨…그렇게 위험한 사람이었어요? 켄지군의 친척이?"
"……."
속옷을 다입고 교복을 입으려던 미정이 순간 멈칫하며 아차싶은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아~ 그건 말이죠. 음 그러니까 그 친척을 쫓아가서 그런 꼴을 당한다는게 아니라 밤길 흉흉하니까 그런짓 하지말라구요. 안무서워요? 어디 구석에서 요괴라던가 이상한 귀신 같은거 튀어나올수도 있잖아요. 나쁜 사람들이나? 그러니까 좀 겁줄려고 과장해서 말한거에요. 아하하하하~ 근데 잘모르는 사람 미행하는건 진심 하지마요. 범죄니까. 스토커도 아니고 지나친 관심은 언제나 결과가 안좋거든요."
"하지만 당신은 어떻게 제가 그곳에서 따라가는걸 알 수 있었죠? 저 그때 머리도 풀고 있었는데."
천천히 교복을 입으며 미정이 세이키를 슬쩍 쳐다보았다가 대답했다.
"일단 저보다 연상이시니까 말은 편하게 하셔도 되요. 제 이름은 미정이구요."
"하지만 역시…존댓말인게 편하니까……."
"어쩔수 없는 언니네. 뭐, 알아서 하세요. 말 놓으라고 강요하는건 아니니까."
"그래서, 그날 제게 무슨 짓을 한거에요…? 절 어떻게 알았구요?"
교복을 다 입은 미정이 캐리어를 닫고 그 위에 앉더니 껌 하나를 꺼내 물며 대답했다.
"밤운동을 좀 즐기는지라 살짝 살짝 조깅을 하고 있었는데 나마루 오빠의 여자친구분이 머리를 풀고 몸을 숨기고 계셨죠 근데 갑자기 털썩 기절을 하시는거에요. 오밤중에 여자를 길거리에 놔둘수도 없고 경찰에 신고하면 괜히 일이 커질거 같아서…그러니까 조서쓰고 그런건 솔직히 귀찮잖아요? 그래서 제가 데려왔죠. 제가 안데려왔으면 언니 진짜 나쁜 사람들이 데려갔을지도 몰라요? 뭐 핸드폰은 근처에 떨어졌겠죠? 그러니까 질문은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요."
"……."
세이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미정이 방문을 열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온 김이 손에든 봉투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오늘 점심은~ 맛나는 편의점 도시락~"
"에~ 뭐, 일본 편의점 도시락은 양질인 편이니……."
"아, 네껀 냉장고에 있어."
"에?"
미정의 삐져나온 더듬이가 천천히 돌아가더니 냉장고를 향했고 터덜터덜 걸어가서 냉장고를 열어 구석진 곳을 보자 몇번이나 가격이 내려간 스티커가 붙어있는 도시락이 하나 있었다.
"……."
미정이 도시락을 붙잡은채 부들부들 떨고 있을때 김이 세이키를 데려다가 의자에 앉히곤 방금 사온 고급도시락을 내놓으며 얘기했다.
"따뜻할때 먹어요 학생. 학교에 늦어서 어떡해…."
"아, 감사합니다. 그러게요…켄지군도 모두들 걱정할텐데……그래도 저를 위해 사오신 것이니 먹고 가도록 할게요."
미정이 부들부들 떨면서 뒤돌더니 김담당관을 향해 한국어로 외쳤다.
"담당관님!! 저는 어째서 어제 사온 떨이 도시락!?"
"뭐 하루정도는 괜찮으니깐."
"아니, 왜!! 저만!?"
"평소에 훈련해야지."
"아니, 지금 여긴 현장이거든요!? 훈련소가 아니라!?"
"아껴써야지. 그리고 내가 그거 사려고 어젯밤에 따로 다녀왔잖니 애국적인 마음으로 어쩔수 없어. 중학생 미정이~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환자지 무슨 놈의 청춘이요!? 그 눈물나는 절약정신, 애국적 행동에 왜 저만 참여합니까!"
"내가 죽으면 안되잖아 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니깐. 운명이니깐 받아들여야지. 왕관을 쓰려는자 그 무게를 견더라. 그래서 좋은걸 먹고 힘내야지."
"아나 진짜! 저는 죽어도 됩니까!? 저도 좋은거 먹고 힘 좀 씁시다!!"
자신은 알수없는 한국어의 대화속에서 세이키가 불안해하자 김이 웃으며 일본어로 말했다.
"아, 괜찮아요. 드시면 됩니다. 미정아~ 손님도 있는데 어서 데워와서 앉아."
"쳇! 체체체체체체쳇!!"
잠시후 전자렌지에 데워 온 도시락을 연 미정이 자리에 앉으며 한국어로 말했다.
"칫, 그래도 훈련소 밥보단 맛있으니까 그냥 먹는거에요."
"그래 국민여러분들도 우리의 이 헌신적인 절약을 기억해줄거야."
"이왕이면 담당관님만 좋은거 먹는 부조리함도 기억해줬으면 하는군요."
"규정집에 의하면 담당관은 언제나 용모가 단정하며 올바르고 영양있는 식사를 통해 위엄과 건강을 유지해야한다고 적혀있어."
"헹! 그놈의 규정! 거기서 호위담당은 위엄과 건강을 유지 못해도 괜찮다고 되어있나요!?"
둘이서 아웅다웅하며 얘기를 이어가고 있을쯤에 먹는둥 마는둥 하던 세이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저기 실례합니다만 이제 가보겠습니다."
김은 상당히 남겨진 도시락을 보며 세이키에게 말했다.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괜찮아요?"
"예, 전 괜찮아요. 그럼 이만……."
세이키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 복도에서 왼쪽으로 걸어가려했고 미정이 입에 밥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언니! 나가는 길은 반대쪽이에요!"
"아, 네."
세이키는 고개를 꾸벅 숙이곤 빠르게 걸어가버렸고 미정이 밥 한숫가락을 퍼며 말했다.
"많이 불안했나보네요. 점심때쯤 일어나서 세수도 볼일도 안보고 밥도 대충 먹다가 급히 가버리는거 보면."
"납치 비슷하게 자신도 모르는 장소로 끌려와서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쓰는 사람들 곁에서 정상적으로 있을 수 있다면, 훈련받은 사람이겠지."
"하~ 근데 이렇게되면 저희 거처가 들통난거 아니에요?"
김은 잠시 아주 신중한 표정으로 식탁을 내려다보다가 대답했다.
"맞아. 하지만 네가 데려왔으니 어쩔수없지. 규정상 아무 상관없는 민간인을 여기로 데려온건 잘못이야. 하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사람을 구한건 잘했어."
"아슬아슬 했죠. 하마터면 진짜 사람한명 그냥 사라질뻔 했어요."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며? 핸드폰으로?"
김이 미정을 슬쩍보며 말하자 미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친…민간인이 츠이시 가문 협력자를 미행하는 것만해도 이미 반은 죽었다 봐야할걸 그와중에 핸드폰으로 몰래 사진까지 찍으려고 하더라구요."
"정말로 사진을 찍었었다면……."
"진짜로 사진까지 찍었다면 저희도 그 언니를 보호하기 힘들었을거에요. 일단 츠이시가문과 저희는 상당히 가까운 사이이니 오히려 잡아다 바쳐야했었겠죠."
"넘버 427 협력자분이 알고 있었으려나?"
"나마루 오빠같은 초보면 대놓고 따라가는 멍청이가 아닌 이상 미행 당하는 건지도 몰랐겠지만. 넘버 427급의 협력자면 민가에 돌아다닐때 아무생각없이 걷고 있던건 아니었겠죠. 일단 뭔가가 따라붙었다는건 알았을 거에요. 제가 저 언니를 급하게 여기로 끌고온것도 넘버 427이 뭔가 행동할것 같아서 였거든요."
"협력자분이 너의 존재를 알았을 가능성은?"
"일단 짐덩이 하나가 생긴 바람에 평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체력되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자리를 피했으니 없을거라 생각해요. 아마 그때 저 언니 핸드폰도 잃어버렸겠죠."
"흠…다행이긴 하지만 핸드폰이 변수네…."
미정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다먹은 도시락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그렇죠. 핸드폰엔 개인에 관한 정보가 엄청나게 담겨있으니, 그것만 확보되어도 신상을 확보한거랑 똑같으니까요. 자체보안 같은거 뚫는건 일도 아닐거고."
"문제가 복잡해졌네. 지금 츠이시 요이씨가 나마루군의 집에 간것만 해도 정말 당황스러운 상황인데."
"그러게요. 저도 깜짝 놀랬더랬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뭔가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건 분명한거 같아. 성역의 가옥이 공격당한 것도 그렇지만 뭔가 계속 조사해볼만한 이유는 충분하겠어."
"그.러.니.까. 담당관님하고 제가 여기 있는거 아니겠습니까아아아아~"
미정이 기지개를 키더니 외출준비를 하며 말했다.
"어쨌든 여기 분위기 보아하니 저 혼자로는 벅찰지도 모르겠어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인원보충 부탁해요. 제가 나마루오빠나 주변인들 감시로 따라붙는건 어렵지 않지만 그동안 담당관님은 누가 지켜요?"
"음~ 그건 크게 걱정마. 대화를 통해 해결하면 되니깐. 여긴 일본이잖니.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항상 얘기하지만 대화가 안통하는 것들이 올수도 있어요. 도시 한복판이라고 방심하지 마세요."
"문 잘잠그고 있을테니까 다녀와. 오늘 저녁은 고급 도시락으로 줄게."
"이이이야~ 갑자기 무슨무슨 바람이 부셨데? 알겠습니다. 그럼 잘다녀올게여~"
"응, 미정아 언제나 고생한다 파이팅."
미정이는 기분 좋은듯 전투화를 둘러메곤 문을 나섰고 김은 세이키가 남기고 간 고급 도시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저녁에 사러 안나가도 될거같네."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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