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 - 몽환의 협곡 - 12
장르: 현대판타지, 퇴마
연령제한: 15세
글쓴이: 너구리햄스
<혼의 Ep5입니다. Ep1~4를 안보신 분들은 이해가 힘들 수 있습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지금은 점심쯤 지나서 학교로 가는중. 요이에게 점심까지는 먹여주었고 혹시나 해서 저녁에 먹을 죽도 끓여다 놓았다. 어지간하면 동아리 활동을 하지않고 그냥 집으로 올테지만 아무래도 세이키에게 점점 면목이 없어진다고 해야하나…진지하게 동아리를 그만둬야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요이가 회복할때까지는 말이다.
그게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절대로 아픈 요이를 그대로 두진 않을 것이다.
거의 외동같이 자라며…더욱이 부모님도 없다싶이하며 혼자 지내왔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당연히 아플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아플때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서럽고 슬픈건지 누구보다 잘안다 생각한다. 물론 나보다 더 힘들었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난 최소한 아파도 누울 수 있는 자리가 있고 약을 혼자라도 사 먹을 수 있었으며 최소한 외부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적은 없었으니까.
츠이시 요이, 그녀가 정확히 어떻게 살아왔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나이의 여자애가 더럽혀진 성역에서 봤었던 수준의 인간병기가 되어있다는건 나는 상상도 못했을 고통과 시련들을 버텨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파도 안심하고 쉴수있는 곳도 없고 간호해줄 사람도 없으며 약을 사먹을 곳도 없다.
그녀는 나만큼이나 혼자서 고독함을 이겨내며 살아왔을 것이고 목숨마저 걸렸다는 점에서 나와는 비교도 안될정도의 생활을 해왔을 것이다. 항상 누군에게 목숨이 노려진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생활이다. 더욱이 사람도 아닌 요괴들이라니. 약간의 동정이나 자비도 없이 끔찍하게 살해될 것이 분명한 위협에 매 순간순간 노출되어 있었을 건데…그런 생활을 어떻게 버텨 왔는지 모르겠다. 옛 지도자들…왕이나 황제들중에 암살의 위협에 주변을 의심하는 정도가 심해지고 정신이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는걸 생각해본다면 요이의 정신력이 도대체 어느정도 수준일지 감도 안잡힌다. 특히 요이는……넘버 427선배가 하는 말을 통해 예상해보자면 츠이시 가문의 퇴마사들 중에선 꽤나 성격이 괜찮은 편이고 친밀함도 있는것 같다.
그러고보면 전학생인 녀석을 따라 처음나설때도 학교에서 길을 잃는 전학생이라는 이상한 코드가 있었고…뺨맞은거 말곤 크게 눈에 띄는 위화감은 없었던것 같다. 말을 제대로 못했다던지 딱 봐도 정신적으로 결함이 심각한 수준 같았으면 내 성격에 따라나섰을리도 없고.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만나본 츠이시 가문 사람들 중엔 그래도…그냥 일반 여고생과도 크게 위화감이 없었다. 몇명 안되긴 하지만…교복이 정말 잘어울려서 그랬나? 아니면 장미술식인가 뭔가 이상한 기술들보단 직접적인 전투를 위주로하니 위화감이 덜 들어서 그런가?
"아……."
그러고보면 그녀에겐 친구가 엄청 많았었다고 했던것 같다. 그렇다면 확실히 요이가 사회와 동떨어진거 치곤 이상할 만큼 친밀감을 가진 것도 납득이 된다. 어찌됐든 사회에서 살던 면역자를 데려와 함께 지냈을 것이니 처음 사귄 친구들하곤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을 거지만 조금씩 조금씩 평범한 여자애들과 비슷해지고 대인관계도 원만해졌을거라 생각된다.
요이와 이때동안 만나왔고 죽어간 친구들은 어떤 아이들이었을까……. 그리고 그 애들은 어쩌다가 요이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던 걸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요이의 일기장에 쓰여져 있을 이야기들…나를 제외하곤 모두가 죽어버린 그 이야기가 말이다.
하지만 요이에게 있어선 매우 슬픈 이야기일테니 듣기가 쉽진 않…….
천천히 생각을 하며 걷던중 어느덧 학교 교문 근처에 다달았을때 멀리 세이키가 보였다. 연락도 되지않던 세이키가 무슨 일로 늦게 등교하게 된걸까?
"세이키~!"
내가 손을 흔들며 외치자 움찔하며 놀란 세이키가 뒤돌아 보았고 내가 슬쩍 웃어보이자 그녀도 지긋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살짝 뛰어서 그녀에게 달려간 내가 물었다.
"세이키. 무슨 일로 지금 등교하는거야?"
"응…그게……조금 일이 있어서 늦었어…. 켄지군은?"
"나, 나도 일이 좀 있었어…아하하."
뭔진 모르겠지만 서로 말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다는것 정도겠다. 그래도 핸드폰으로 연락도 안될정도 였던건가? 내가 연락하면 보통은 세이키에게서 늦더라도 꼭 연락이 왔었기에 무슨 일인지 조금 궁금해졌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핸드폰도 전화 안받던데?"
"아, 그게…폰을 잃어버렸어."
"에? 어쩌다가?"
"어딘가 떨어뜨린거 같아…바보같이……."
세이키가 기운없이 말했을때 나도 뭐라 위로 하기가 어려웠다. 뭐, 나도 처음 요이네 가문과 휘말리며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없지…만…….
"……."
설마.
교문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와중에 내가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세이키 집에는 잘 들어갔었어? 정말 아무일도 없었던거야?"
내 질문이 역시 부담스러웠는지 세이키는 날 바라보지 않고 조용히 대답했다.
"응…별일 없었어. 스쿠터 타다가 잃어버렸나봐…나중에 한번 찾아보려구."
"그래? 그럼 다행…아, 잃어버린게 다행이라는게 아니라 그러니까…어……."
내가 어버버 거리고 있을때쯤 세이키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난 정말 괜찮아 켄지군. 그래도 걱정해줘서 고마워."
"어, 응……."
사실 내가 이미 숨기는게 있는 시점에서 세이키에게만 이것저것 물어볼수도 없는 상황이다. 세이키도 나에게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고 우리는 조용히 교실까지 갔다.
아마 서로 각자의 말할 수 없는 근심을 속으로 생각하며 가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약간만 더 깊게 생각해 봤더라면,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쯤 교실에 들어갈때만은 둘이 따로 들어가는게 좋았을지도 몰랐다. 우리가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본 코토 미요의 표정은 뭐라 말하기 힘든 그런…복잡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기에…….
"너 잠깐 얘기좀 하자. 세이키는 잠깐 여기서 기다려."
기분 안좋다는 듯이 말하는 코토의 말을 거절할 순 없었고 나와 그녀는 층의 끝에 있는 자판기쪽을 향했다.
"어이, 나마루. 상황 좀 설명해봐."
자판기 옆의 작은 공간에 날 몰아넣은 코토의 말에 대답했다.
"전화로 얘기했잖아. 집에 아픈 사람이 있어서 늦었다구."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세이키랑 네가 같이 왔냐고."
"그냥 오다가 만났어."
"뭐? 그게 말이 된다고? 서로 연락도 안되는 두 사람이 우연히 같이 왔다는 거야?"
"안믿기겠지만 사실이야. 네 심정이 이해는 되는데…나도 어쩌다가 세이키를 만났는지는 모르겠어."
"네가 내 심정을 어떻게 아는데."
코토가 날 쏘아보며 말하는데…정말로 기분 상한거 같아 보여서 뭐라 말하기가 난감했다. 차라리 툭툭 때리거나 평소처럼 괴롭히는 투 였으면 그러려니 했을텐데 지금 그녀의 모습은 뭔가 진지보였다고 해야할까…자신이 이용 당했다고 생각하는거 같기도 하다.
"미, 미안…솔직히 내가 잘못한건 없는거 같지만 정황상 네가 오해할 만한게 사실이긴 하니까……."
"……."
코토는 아무말도 안하며 잠시 옆쪽을 흘깃하고 쳐다보았는데, 뭘보나 싶어 내가 고개를 돌리는 순…….
"악!?"
내 정강이!! 제대로 까였…뭐지 이거 진짜 아파!!
내가 다리를 감싸며 주저앉자 코토가 흥하고 돌아서며 말했다.
"이걸로 없던 일 칠게."
"나 좀 억울할지도!?"
고통에 사무쳐서 내가 외치자 코토가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수업 시작한다. 빨리 오기나해."
"쳇, 알았다고."
뭐, 정강이 맞을정도로 잘못한거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이걸로 저녀석 기분이 풀렸다면 다행인거 같달까. 세이키 말도 좀 들어보고 때리던가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나는 약간 절뚝이며 교실로 들어가 오후 수업을 들었고 나중엔 담임선생님께도 학교에 왔음을 보고했다. 그리고…동아리 활동을 아무래도 못할거 같다고 세이키에게 말하려 했었으나 다행인지 아닌건지 코토 미요가 오늘은 자기가 세이키 일을 도와줄테니 나보곤 가서 아픈 사람이나 봐주라고 얘기했다.
"어? 고, 고마워."
의외의 반응에 내가 동아리실 앞에서 고맙다고 말하자 코토가 째릿하고 날 노려보며 대답했다.
"하, 세이키랑 나랑도 둘만의 얘기 좀 하려고 그런거라고. 그리고 네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면 아픈 사람이 있는데도 학교에 있는건 신경쓰이는 거니까."
"어쨌든 배려해줘서 고마워."
"빨리 가기나 해. 문 밖에서 우리 얘기하는거 들으면 죽여버린다."
"……하…하…걱정마. 그러진 않으니까."
나는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고 코토는 부실 안으로 들어갔다. 둘이서 어떤 얘기가 오갈진 모르겠지만 오해가 어느정도 풀려줬으면 한다. 그리고 세이키가 나에게는 얘기 못할 사연을 같은 여자고 친한 친구인 코토에게는 얘기할 수도 있는거니까….
그외로는 나도 지금 상당히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는 상태라 여유가 없기도 하다.
"혹시 무슨 일은 없겠지……."
별일 없을거라 믿지만 요이의 몸상태가 워낙 안좋다보니 걱정되는 것도 별수없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집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때 요이는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요이, 몸은 좀 괜찮아?"
"켄지 왔네."
요이가 지긋이 미소지으며 몸을 일으키려는걸 손짓으로 멈추곤 침대 머리맡에 의자를 가져다 두고 앉았다.
"죽은 좀 먹었어?"
"응, 먹는게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다 먹었어."
"으휴 그래도 다행이다.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어서."
"헤헤…그래서 오늘 학교는 어땠어? 늦어도 괜찮았어?"
궁금하다는 듯이 날 바라보는 요이에게 피식 웃으며 얘기했다.
"응 별일 없었어. 그냥 평범한 하루."
"그랬구나. 별일 없었다니 다행이다."
다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굳이 요이에게 얘기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켄지군, 학교는 보통 평범한 날이란게 자주 있는거야?"
"음?"
"특별한 일 같은거 학교에선 별로 안일어나?"
아…그러고보니 요이는 학교에 대해 잘모르겠구나.
"그냥 평범하다는 말 그 자체 같은 거니까. 매일매일이 똑같진 않고 이런저런 일들이 바뀌긴 하지만 보통은 비슷비슷해. 학교가서 친구들 만나고 수업듣고 점심 먹고 부활동도 하고…뭐 그런?"
"재밌을거 같아."
"하하, 재밌다기 보단 그냥 지루한 일상이지. 특별한건 딱히 없어. 쳇바퀴 돌듯이 하루하루가 비슷함의 연속이지. 별로 재밌지도 않구 말이야. 아침에 일어날때 오늘은 휴교했으면 좋겠다 싶을때도 있고 시험기간땐 정말 책상 앞에만 앉아서 내가 뭐하고 있나 싶을때도 있고 뭐 그렇거든. 물론 이런 말 너에게 하는건 좀 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하루하루가 막 엄청 신나고 재밌고 꿈과 희망이 넘치고 그렇진 않아. 뭐, 지금은 이 지루함과 평범함이 감사하지만."
"응, 나도 그런 평범한 생활 해보고 싶어…."
단 며칠, 츠이시 가문의 끔찍한 가옥과 네크로맨서들의 죽음의 골목에 그 며칠 있는 것만으로도 난 수없이 많이 목숨의 위협을 받았고 그때마다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중 내게 가장 큰 도움을 줬던 사람이 바로 내앞에 있는 츠이시 요이.
"지금 내 집에 있다는건 반쯤 평범한 생활에 성공했다는거야. 이제 네 몸만 다 나으면 우리학교 정식으로 구경시켜줄게. 사람들 진짜 많다?"
"이거 빨리 나아야 겠는걸. 어서 나아서 켄지군 여자친구 얼굴 한번 봐야하는데."
"에? 나 그런거 없어! 여자인 친구는 있지만."
"그래~? 다행이네. 이제 켄지에게 동거녀가 생겼으니 정리하라고 말해줄까 했는데에~"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요이. 그것을 손사래치며 난감해 하는 나는 이 상황을 분명히 즐기고 있었다. 요괴들에게 포위된 것도 아니고 목숨을 위협할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사회 밖의 위험한 곳에서는 요이가 날 도와줬었지만 여기선 내가 요이를 도와줄 수 있다. 그래, 이거면 충분하다.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연재코너 > 혼 - 몽환의 협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魂) - 몽환의 협곡 - 14 (0) | 2016.11.21 |
---|---|
혼(魂) - 몽환의 협곡 - 13 (0) | 2016.11.14 |
혼(魂) - 몽환의 협곡 - 11 (0) | 2016.11.04 |
혼(魂) - 몽환의 협곡 - 10 (0) | 2016.04.01 |
혼(魂) - 몽환의 협곡 - 9 (0) | 2016.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