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 - 몽환의 협곡 - 21
장르: 현대판타지
글쓴이: 너구리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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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담당관님? 보고합니다. 어제 왔다갔던 신원미상의 여성이 다시 나타났는데 정보있나요?"
석양이 거의 져가는 가운데 미정이 켄지네 집을 내려다보며 보고했고 김은 조용한 사무실에서 몇글자도 없는 흰종이를 들고 말했다.
"일본쪽 정보기관을 피해서 최대한 조사해봤는데, 별로 도움될만한건 없었어."
『뭐에요 그거. 조사 제대로 한거 맞아요?』
"일단 일본정부에 협조없이 단독으로 알아봤는데 이정도라는건 결국 저 금발에 초록옷 입은 여자는 일본측 정보부에 의해 신원관리를 받고 있다는 거겠지. 최소한 나마루씨의 학교친구는 아니니까."
『일본정부에 협조…요청 해볼순 없나요?』
"그랬다간 우리가 나마루씨 집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도, 츠이시 가문의 일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들켜버리는거지. 혹시 일본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더 문제가 커질수도 있고."
그 말을 들은 미정이 난간에 등을 대며 앉아 석양에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풍선껌을 씹다가 후욱하고 풍선을 만든 다음 터뜨리곤 말했다.
"혹시 모르잖아요. 그 이상한 종교? 라는데서 오는 인물일지도. 그 나마루 오빠랑 친하다던 카미코 미도리라는 인물도 초록색 후드 달린 옷입고 다닌다면서요."
『그럴수도 있겠지, 그래서 정보부를 대동해서 적극적으로 알아볼 생각이야. 만약 그 종교의 인물이면 미행과 신변확보를 부탁해.』
"저항하면 어쩌죠. 정말로 그 종교쪽 사람이면 순순히 신변확보는 힘들……."
『대화와 타협.』
"와나 지금 장난치세요?!"
미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외쳤을때 켄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몽환술사를 맞이했다.
"오늘도 오셨네요."
"네, 츠이시 요이씨의 몸은 좀 어떤가요? 어제 잠은 잘잤죠?"
켄지는 그녀를 2층으로 안내하며 대답했다.
"잠은 잘잤다고 해요. 이상하게 머리랑 목이 조금 아프다고 하긴 했는데."
"흠흠…그건 아마 지금 몸상태가 원래 안좋으셔서 그런거 같아요."
"……."
켄지가 여동생 방의 문을 열었을때 침대에서 요이가 살짝 미소 지으며 몽환술사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번 해보시니까 어때요? 괜찮나요?"
"네, 이상하게 두통이 좀 있지만 고통없이 오래 잠든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켄지는 조용히 방문을 닫으며 나갔고 그것을 본 요이가 작은 목소리로 몽환술사에게 물었다.
"저기 근데…어제 무슨 일 없었죠?"
"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게…그 잠든 이후로의 기억이 잘나지가 않아서요. 뭔가 부분적으로 기억이 날듯말듯도 한데…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명확하게 기억나는건 어떤거죠? 작은 파편이어도 상관없습니다."
"폭포…오두막……같은거랑 뭔가 학교 같은게 가물가물……."
몽환술사는 어느정도 익숙하다는 듯이, 그리고 자신이 약물로 재워버렸기에 꿈을 기억 못하는것도 어느정도 당연하다고 여겼다.
"굳이 설명 안해도 아시겠지만 꿈을 잊어버린다는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고통없이 편히 주무셨다는 것에 유념하세요."
"네, 오늘도 도와주시는거죠?"
몽환술사는 침대에 누워있는 요이를 의자에 앉은채 내려다보며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말했다.
"물론이죠. 어제보다 더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요이는 몽환의 협곡, 오두막 안의 침대 위에서 눈을 번쩍하고 떴고 그녀의 앞에는 몽환술사가 서 있었다. 몽환술사가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요이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에요?"
"예?"
"이번에도…그 정보의 부족이니 뭐니가 당신과 연결되서 해결됐는데도 악몽을 꿨어요."
"……."
"안즈가…끔찍한 모습으로 다시 한번 나타났다구요."
"그런건가."
"무슨 말이죠? 그런거라니요?"
몽환술사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요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실속의 츠이시씨는 몽환의 협곡에서의 일이나 꿈속의 꿈에서 나타난 일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어요."
"네?! 저, 저는 다 기억해요. 그 끔찍한 악몽들을 어떻게 잊어버려요?"
"음…확신은 못하지만 아무래도 츠이시 요이씨의 내면 속인지라 여기선 기억을 떠올리는거 같네요."
"무슨…그럼 전 여기서 제가 무슨 짓을해도 현실에서 잠을 깨면 기억 못한다는 건가요?"
"일부는 할수도 있습니다. 다만 불명확하고 부분적인 파편수준 이겠죠."
"말도 안돼…."
요이는 허무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탄하더니 바닥을 보며 말했다.
"깨어났을때의 저와 지금의 저가 기억하는게 다르고 그로인해 생각하는게 다르다면, 그 둘은 한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건가요?"
"……."
"둘중에 하나는 가짜…일지도 몰라요. 어찌보면 지금의 저는 현실의 제가 내면 속에서 만들어낸 가짜 덩어리 인지도 모른다구요."
"글쎄요 꼭 그렇다고 볼수있을까요."
"네?"
몽환술사가 슬며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현실 속의 츠이시씨보다 지금의 당신이 그녀 스스로의 내면 속 더 깊은곳에 있어요. 당신이 '진짜'는 아니더라도 '진심'일수는 있다고 봅니다. 츠이시 요이라는 한 여자의 마음속에 있는…진심 말이죠."
"…그렇게 볼수도 있군요…."
"네, 현실을 살아가며 잊어가고 묻어놓고 차마 꺼내지못해 담아두기만 하던 그런 것들이요."
"맞아요…그럴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좀 더 감정적이게 되고 죽은 친구들도 나오고 하는 거겠죠."
"네, 그래서 이번엔 제가 함께 할겁니다."
"함께요?"
요이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을때 몽환술사가 답했다.
"네, 정보의 부족을 해결했음에도 안즈라는 친구가 등장했다는 것은 뭔가 살펴볼 필요가 있는거 같아요."
몽환술사의 경우 요이가 잠들어 있을때 요이의 내면속을 헤매다가 더욱 이상한 것들을 많이 봤기에, 안즈라는 인물을 직접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그게 진짜 안즈든 요이의 내면 속에서 기억하는 안즈든 무엇이든 간에 만나서 대면하면 이 복잡하고 미쳐돌아가는 츠이시 가문 여자의 내면이 어느정도 안정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자신의 목숨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안즈라는 인물을 해결하지 않고 요이의 내면 속 정수에 도달하는 것은 무리리라.
요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어차피 꿈이니까, 다양하게 시도해봐요."
"네, 그렇다면 자각몽으로……."
"는 하지 말아주세요."
"흠, 또 자각몽이 싫은건가요."
"이번에야 말로 켄지와 잘해볼거에요. 현실인거처럼, 실감나게."
"그럼 저는 티나지 않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주변에 있다가 그 안즈라는 인물과 대면해보겠습니다. 뭔가 알아낼 수 있겠죠."
"네. 그럼 시작해요."
잠시 후 교복 차림의 요이가 정신을 차렸을때 그녀는 북적이는 도심의 상가 근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걸어가고 있었고 그 중간에 있던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리 커다란 빌딩들이 보이는 가운데 2~3층 규모의 크고 작은 음식점들과 오락점들이 늘어서 있는 가운데 그녀의 시선이 고정된 곳에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나마루 켄지가 서있었다.
요이가 눈을 잠시 깜빡이다가 부드럽게 미소 짓더니 켄지의 손목을 붙잡아 당기며 외쳤다.
"우리 데이트하자!"
그렇게 끌려가듯 가는 켄지와 요이를 보며 멀지 않은 곳에서 모델과 같은 몸매에 빼어난 미모를 가진 금발의 여성이 붉은 바지에 새하얗고 헐렁한 실크 상의를 걸친채 붉은 핸드백을 매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몽환술사는 켄지와 요이를 따라가는 동시에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젠장 하필이면 번잡한 상가라니. 누군가를 찾기엔 최악이잖아."
아무리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해도 이런 인파속에서 안즈를 찾긴 힘들거라 생각한 몽환술사는 자각몽이 아닌지라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닐 요이를 어느정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안즈라는 인물이 이때동안 그랬듯 반드시 나타난다면 적당한 곳에서 기다리다가 제압하면 간단하리라고 여긴 순간 그녀는 인파를 뚫고 달리기 시작했고 켄지와 요이를 추월한 다음 정신을 집중해 검은색과 흰색의 메이드복과 바구니를 든 복장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꾸며 자연스럽게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방긋 웃어보이며 몽환술사가 켄지와 요이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늘같이 화창한날 데이트하기엔 러브러브큥!이 제일 좋답니다."
"러브러브큥…?"
켄지가 당황하며 중얼거렸을때 요이가 물었다.
"켄지 어떤 곳인지 알아?"
"아니, 전혀 모르겠는데."
시큰둥하게 켄지가 대답했을때 몽환술사는 가식적인 미소를 한껏 품은채 말했다.
"이곳은 분위기가 완전 커플을 위한 커플에 의한……아, 어쨌든! 완전 러브러브큥한 곳이라구요. 맛있고 귀엽게 생긴 음식에 둘만을 위한 사적인 공간, 완벽해요!"
사적인 공간이라는 점을 의식한 요이가 켄지에게 말했다.
"우리 가보자!"
"에? 정말? 위험한거 아니야 저기? 미성년자…가 갈수있는 곳이죠?"
몽환술사는 걸려들었구나 싶어 기쁜 마음에 말했다. 애초에 요이의 내면이기에 그녀가 결정했다면 켄지 따위의 의사는 아무 상관도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학생분들도 갈수있어요! 아니면 제가 교복입은 분들에게 말을 걸 이유가 없지요~"
"켄지, 우리 가자~ 가자~"
요이가 켄지를 떠밀며 말했고 켄지는 마지못해 물었다.
"네, 그래서 거기가 어디죠?"
"바로 저기입니다."
몽환술사가 가리킨 곳에 핑크빛이 가득한 2층 건물이 있었고 켄지의 표정이 굳어있는 가운데 몽환술사가 바구니에서 정사각형 은박안에 든 동그란 비타민을 요이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좋은 시간 되세용."
"음~ 1개 더 주세요."
"아…1개론 부족한건가요."
몽환술사가 뻣뻣하게 말하자 요이가 해맑게 대답했다.
"2개는 되야 서로 나눠먹잖아요."
"아~ 그렇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언니~"
요이는 켄지를 끌고 가기 시작했고 몽환술사는 비타민이 가득 든 바구니를 바닥에 버리고 정신을 집중해 다시 흰 상의에 붉은 바지로 돌아와 어느정도 거리를 둔채 그들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가게의 입구에 도착했을때 점원이 몽환술사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1인 입장은 불가합니다 손님. 일행분이 계신가요?"
"네, 저 먼저 들어가 있으려구요."
몽환술사는 요이에게 준 비타민의 위치에 근거해 그들이 어디있는지 파악 한뒤에 말했다.
"2층, 복도끝에서 두방 떨어진 창가에 있는 곳으로 주세요."
"네. 하지만 일행분이 계셔야……."
몽환술사는 씨익하고 웃으며 점원에게 다가가 손을 붙잡았다 놓았고 잠시 정신이 멍해졌던 점원이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열쇠 여기있습니다.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
차갑게 말하며 2층으로 올라간 몽환술사는 요이와 켄지가 있는 1층 방을 바라보며 복도 난간에 기대어 서있었고 1층 로비와 입구쪽을 열심히 둘러보며 경계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바로 뒤에 있는 방문이 소리없이 천천히 열리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 뿐.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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