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주얼 판타지 - 피로 물든 사제의 길 - 1
장르: 판타지, 엽기, 고어, 호러
등급: 15세 이상
글쓴이: 너구리햄스
<혹시 산뜻한 느낌의 캐주얼을 생각하고 오셨다면…….>
"……."
짐승의 귀와 꼬리를 달고 있는, 푸른 긴 생머리의 소녀가 있다. 남루해 보이는 치마에 귀를 가리기 위해 커다란 후드를 뒤집어 쓰고 꼬리를 최대한 말아 올리고 끈으로 허리에 고정시켜 놓은 그녀는 오래된 마을의 낡은 고아원의 구석진 나무 밑에 무릎을 감싸고 앉아있다.
낡은 공터에 남루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모두들 멀쩡한 인간이다. 자기처럼 귀와 꼬리를 가진 이는 없다.
외롭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좋게 생각해본다.
최소한 신체적으로 괴롭진 않으니까 괜찮다.
이 고아원에 오기 전엔 짐승, 괴물, 잡종이라며 사람들에게 괴롭힘 당했다. 꼬리와 귀를 잘릴 뻔 했었고 죽을 뻔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여긴 안전하다…괜찮다. 하지만 역시…….
외롭다.
그녀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던 언니와 오빠들도 몇명 있었지만 모두들 각자의 길로 가버렸다. 그뒤론 쭉 혼자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해한다.
비교적 전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곳에 괴물들의 출현으로 호화롭던 마을의 교역로가 차단되고 종종 아예 고립되기도 했으며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죽이고 납치하는 경우도 있어 마을은 점점 황폐해졌고 꽃을 팔던 가게엔 무기점이 들어섰고 꽃들로 장식되어있던 가게는 화살과 검이 진열되어 있는 곳이 되었다. 아름다웠던 공원은 질병이 퍼지지 않게 괴물과 인간의 사체를 태우고 파묻는 곳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반괴물……그것도 여자아이가 달갑게 받아들여 질리가 없다. 모두가 미워한다. 어릴적부터 미움받아왔다.
"언제까지 일까……언젠가 세상이 다시 평화로워지면 사람들이 날 받아줄까?"
생기없는 목소리로 혼잣말 해본다. 이젠 습관이 되어버린 말이다.
"……."
뭔가 고아원이 소란스러운 느낌에 그녀의 귀가 쫑긋해졌지만 후드로 눌러쓴 상태라 잘파악이 안되고 있었다. 그래도 느끼길 나쁜 의미에서 소란은 아니고 들뜬 느낌같았다. 하지만 뭐가 됐든 그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 신경을 안쓰기로 했다. 끽해봤자 특식이 나오는 수준일 뿐이리라…….
그녀는 아예 양팔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고 눈을 감았다. 신경을 안쓰기로했다. 인간들의 기쁨이지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녀의 주변으로 부스럭 거리며 풀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린 방향을 노려보았다. 누군가의 다리가 보인다. 갑옷신발……그리고 동시에 느낀 익숙한 냄새.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치켜들었고 동시에 큰손이 그녀의 얼굴을 폭닥하게 덮었다. 그리고 씨익하고 미소지으며 은발의 청년이 말했다.
"아르티, 넌 여전하구나."
"레이든!!"
아르티는 환하게 웃으며 팔짝팔짝 뛰다가 레이든에게 달려들듯이 안겼다. 그리고 그 청년의 옆에 하위 용병들이 입을 법한 간단한 갑옷을 입고 서있는 다른 아가씨가 말했다.
"아르티. 이런데 혼자 있으면 더 외롭다니깐 그렇네."
"줄리도 왔네!!"
아르티가 레이든의 품에서 얼굴만 내밀고 줄리에게 말했고 줄리는 뒤로 올려묶어둔 자신의 적갈색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항상 레이든 다음에야 날 인지하는 구나."
"헤헤, 미안해 언니."
생기있게 말하는 아르티의 후드를 레이든이 벗겨주며 말했다.
"우~ 우리 귀여운 늑대 아가씨 귀는 여전하네."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손질을 잘해주는데!"
"하하 이젠 숨겨둔 꼬리를 꺼내주지도 못하겠어. 아르티 너무 컸는걸."
컸다곤 하지만 그래도 13세 정도의 소녀의 모습인 아르티는 레이든의 품에서 나오며 물었다.
"레이든이라면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무슨 일이야? 무슨 일? 무슨 일인데 돌아왔어? 나 정말 언니, 오빠 없는 동안 너무 외로웠다구!"
"무슨 일이긴."
레이든이 웃으며 말했고 줄리가 이어서 아르티에게 종이 한장을 내밀며 말했다.
"널 데리러 왔지."
- - - - [며칠 후, 성채] - - - - - - - - - - - - - -
예전에 있던 마을과 그나마 가장 가까운 도시의 작은 성채에서 그들은 잠시 머물고 있었다. 마을 주변이 위험한 장소이긴했지만 소수의 훈련받은 인물들과 동물적 본능이 있는 아르티는 무난하게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레이든이 성채의 문지기와 하위 관리인들과 얘기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동안 줄리는 아르티를 데리고 시내로 나가 깔끔한 옷을 사줬다. 비록 후드를 뒤집어써 귀를 숨기긴 해야했지만 전에 입던 허름한 옷에 비하면 훨씬 예뻐졌고 줄리가 미안하다는 듯이 값을 치르며 말했다.
"미안해 아르티. 아직 골드가 별로 많지 못해서…더 예쁜건 무리겠어."
"아니야 언니, 난 이미 충분히 고마운걸."
아르티는 더 이상 외롭지도 않았고 지루했던 고아원을 나와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낡고 황폐한 마을의 변두리 고아원에서 주로 지내던 아르티에겐 시장터가 정말 신기했고 먹고 싶은것들도 보였지만 전에 있던 마을보다 나은 정도지 이곳도 그렇게 활기를 띄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는 괴물들의 공격으로 이 성채또한 그렇게 여유롭진 않았다.
이 성채로 오는 동안 아르티는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이가 되어 좋게 말하면 고아원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간 아이들, 나쁘게 말하면 쫓겨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얼마되지 않았다. 레이든과 줄리와 친구들은 마을을 떠나 다른 도시를 찾아갔으나 그 여행길에서 몇몇의 친구들이 괴물들에게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 용병도시에 들어간 레이든과 줄리는 그럭저럭 유지되는 용병단의 견습용병으로 들어갔고 지금은 정식으로 용병단원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높은 위치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아르티도 데리고 있을 정도의 골드를 모을 수 있게 되자마자 아르티를 찾아왔던 것이다. 마침 그 주변에 임무의뢰도 받은 상태기에 그들이 생각하기엔 잘된 일이었다.
물론 아르티는 목숨을 담보로 싸우는 용병의 입장이나 상황 같은건 잘모르고, 장검을 찬 줄리와 활을 든 레이든을 멋지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즐거워하는 아르티를 내려다보며 줄리가 아르티의 후드쪽 귀가 있을 법한 부분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이 다음에 크게 한건 올리면 그땐 맛있는거 사줄게, 옷도 이쁜걸루 제대로 말야."
"아, 아냐. 난 이대로도 좋아 언니!"
"아아, 역시 맛있는걸 하나는 사가야 겠어. 이 성채를 떠나면 언제 또 제대로 먹을지도 모르고…그러니까."
"난 괜찮은데!"
"아냐, 나도 먹고 싶어 사는거니까 신경쓰지마. 흠……."
주머니속의 남은 골드를 보던 줄리는 고민을 하더니 아르티에게 말했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아르티. 금방 올거니까 걱정말구."
"에? 어디가는데? 나도 같이가 언니."
"아, 아냐. 가격을 좀 흥정해야할거 같은데……넌 여기있는게 좋을거 같아. 가끔 야박한 주인장하고 흥정하다보면 싸움이 날때도 있어서 말야. 교육상 안좋아서."
팔짝 거리는 아르티를 보며 줄리가 그녀를 두고 시장골목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을때부터 아르티는 불안해 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힐끗힐끗 사람들이 쳐다보며 지나갈때마다 아르티는 긴장했고 맛있어 보이던 시장골목의 음식점에서 고기를 다지는 소리는 흥미롭고 맛있는 소리에서 공포로 변해버렸다. 아르티는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어 밝은 곳이 아닌 구석진 곳으로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고 길가에 두터운 갑옷을 입고 기사 문양이 박힌 망토를 걸친채 투구를 쓴 자가 그런 아르티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자네 잠시 이리와 보게."
"……!?"
아르티가 의문을 표하고 경계하자 갑옷을 입은 이는 투구를 벗었다. 짧지만 흰수염이 멋드러지게 있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래, 자네."
"……."
아르티는 쭈뼛거리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기사단원 앞에 온 아르티는 겁에 질린채 말했다.
"저, 저, 저, 저……전 아무 문제 없어요. 기사님…그냥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에요…저, 절대 나쁜 짓 하고 있던거 아니에요…."
너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하는 아르티를 보곤 기사단원은 살짝 앉으며 다시 말했다.
"하하, 너무 겁먹지 말게. 멀리서부터 봤는데 말인데, 자네는 뭔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느낌이어서 말이야. 그것 뿐이야."
"……!"
아르티의 눈이 긴장감에 떨리며 숨소리 마저 가빠지기 시작했을때 기사단원은 아르티의 손에 목걸이 하나를 들려주었다.
"아……."
기사단원의 손이 아르티와 닿아 있는 동안 아르티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매우 안정되고 공포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빤히 기사단원을 올려보았고 그는 미소 지어보였다.
"뭔가, 사제가 어울릴거 같아."
"…네?"
아르티가 손에 들린 금빛의 목걸이를 보며 어쩔줄 몰라하며 말했다.
"가, 갑자기 사제라니요? 기사님…저, 저는 그저……."
"사람들을 도와주다보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수도 있다고 난 생각하네. 비록 지금은 힘들고 그래도, 자네를 보니 사제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해."
"……."
그리고 기사단원은 마법진이 그려진 양피지를 하나 주며 말을 이었다.
"그 목걸이와 이 양피지를 항상 가지고 다니게. 양피지는 정말 위험한 순간에 쓰도록 하고. 분명 사제의 길은 만만치 않을테지만 다친 이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헤아려주고 치료해 준다는건 정말 좋은 일이니깐 말이야."
"저, 전 아직 결정을……."
"흠…그럼 이 반지도 받도록."
기사단원이 반지하나를 꺼내주더니 말했다.
"이것도 사제용 반지이니 다른 일보단 사제를 하는게 편할것이야."
"……."
거의 반강제로 사제로의 전직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다른 기사가 바쁘게 뛰어오더니 말했다.
"대사제님! 길드에서 지령이 왔습니다. 곧 파티가 모두 준비되니 출전준비를 서두르라 하십니다!"
"아, 그런가? 알겠네. 내 빨리 가도록 하지."
기사갑옷의 대사제는 급히 가려다가 뒤돌며 아르티에게 말했다.
"꼭 사제를 하게나! 그리고 꼬리는 잘숨기고 다니도록 하고!"
"……!?"
아르티가 깜짝놀라며 꼬리부분을 살펴보는 동안 기사들이 하는 이야기가 멀리서 들릴 뿐이었다.
"대사제님 또 사제하라고 강요하고 계셨습니까?"
"자네도 사제하게. 지금이라도 전직 변경하기 안늦……!"
"무슨……!"
[잠시 후, 여관]
방 한구석에서 아르티는 새근새근 자고있었고 촛불 아래에서 낡은 지도를 보는 레이든 옆에 갑옷을 벗은 줄리가 앉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세상에 잠깐 자리비운 사이에 우리 아르티가 기사한테 반지를 받았다니까?"
"세상에…벌써 남자에게 청혼을 받다니."
"……그런 반지말고. 사제용인데 등급이 엄청 높은거야, 구하기 힘든건데."
"우리 아르티도 뭔가 직업은 골라야하니까 사제도 괜찮잖아?"
"그야…검을 쓰는 내 입장에서도 사제가 있으면 든든하긴 하지만…아직은 너무 이르다구…지금 사제하고 싶다고 난리야."
"아르티가 하고싶다면 시켜줘야지."
"하지만 위험하잖아! 아직 너무 어려."
줄리의 말을 들은 레이든은 지도를 접으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 계획대로 준비하고 던전에 들어가도 지도가 너무 낡아서 정보가 확실치가 않은 상황이야. 더욱이 사제는 비전투 직종이니까 우리가 잘 보호해주면 문제없어. 사제 스킬도 우리가 스킬북을 사다주면 되니까 굳이 누군가에게 배울 필요도 없고 그럼 아르티의 정체가 들킬 일도 없잖아."
"하아~ 마음대로 해. 뭐, 그래도 아르티가 힐러역할을 해주면 나중에 보수를 받을때 우리쪽 비율이 더 커져서 좋긴하겠다."
"어쩔수없어. 우린 용병이고 안정적이게 살려면 한건 한건 의뢰를 해결해가면서 기반을 쌓고, 평화로운 곳에 가서 함께 사는거야. 괴물같은거 본적도 없는 마을에 가서 말이지."
"마음같아선 그냥 괴물 녀석들 뿌리를 뽑아버리고 싶은데 말이지! 내 검으로 괴물 두목을 슥삭!"
"중급 괴물도 잡기 버거우면서……."
"방패도 없이 잡는게 쉬운줄 알아? 내가 일선에서 싸울때 지는 멀리서 활만 쏴대면서."
"궁수도 장난 아니다 너……궁수 무시하지마."
이렇게 말하며 레이든은 줄리를 부드럽게 침대에 눕혔다.
"너가 안전한지 안한지 신경쓰며 싸우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잠깐, 레이든…! 야, 미쳤어…!? 아르티도 있는……."
"너도 알잖아. 아르티는 한번 잠들면 겨울잠 자듯이 깊게 자는거."
"미친…그걸 말이라고……!"
잠시 후 촛불은 꺼졌다.
[2화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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